제이클레프
Jclef

정규 1집 <flaw, flaw>로 평단과 대중을 한 번에
사로잡은 음악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음악 안에 담아낸다.
최근 ‘가지가 잘려 나가듯 단절된’, ‘상처받은’
친구들, 하지만 서로에게 오롯이 사랑만을 전해준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며 작업한 EP <O, Pruned!>를 발매했다.

 

jonny’s sofa

 

내게 두고간
네 기타를 꺼내
함께 만들던 노래의
다음을 생각해
난 너의 모든
버전이 궁금해
가장 낮을 때마저

 

친한 음악가들을 만나면 종종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고, 그럴 때마다 가사를 쓰는 일이라고 토로하곤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더는 없는 듯한 나날도 문제지만, 막상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여러 어려움을 맞닥뜨리기 일쑤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할지, 또는 허공을 보며 혼잣말하는 형식을 취할지 같은 작은 고민부터 가사가 너무 개인적이지는 않은지, 일상적이어서 상투적이진 않은지. 또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 또는 내 감정을 해소해주는지, 만들고 있는 음악의 쓸모에 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것이 내가 가사를 쓰는 작업방의 주된 풍경이다.

2023년 3월에 발매한 ‘jonny’s sofa’는 EP <o, pruned!>의 시작점이 된 노래다. 갑자기 사라졌거나 더 이상 연락해도 닿지 않는 친구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는 습관이 있다. 이 때문인지 ‘jonny’s sofa’는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편지 어투를 띠게 되었다. 사라진 친구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것이 그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잘 표현해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조니와 작업을 함께 하던 장면들도 자연스레 가사에 담겼다. 내게만 선명하게 남아 있을 그때의 풍경, 작업을 할 때 있었던 일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jonny’s sofa’를 만들 당시, 어느 순간 갑작스레 사라졌던 조니라는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닿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고 조니를 걱정하던 친구들(낸시보이 (Nancyboy), 김아일)은 우리 집에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조니와 친구들은 자연스레 다시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마땅한 장비도 없이 마이크로 기타 연주를 녹음한 소리에 매료되어 있었다. 내 오래된 노트북이 워낙 요란한 소리를 내서 아일이가 노트북을 신발장에 두고 녹음을 받아주기도 했다. 난 부스 안에서 조니의 마이크 스탠드 역할을 자청했다.워낙 무더운 여름이라 녹음을 마치고 나니 다 같이 땀범벅이 되었던 일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조니가 사라졌을 때 나는 전화를 걸다가 통화 연결음이 뚝 끊어지고 조니가 전화를 받는 상상을 종종 했다. (“계속되는 패턴을 모두 어지르는 네 목소리를 기다려-”) 노래의 제목이기도 한 ‘jonny’s sofa’는 ‘조니가 앉아 있던 소파’라는 뜻인데, 그 소파는 내 방과 문 하나로 연결된 거실에 있었다. 방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거실에 있는 조니가 기타 연습을 하는 걸 들을 때면 연주하는 음이나 코드보다는 끼익끼익 하는 프렛 넘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곤 했는데, 조니는 더 깔끔하게 치고 싶었는지, 같은 구간을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다. (“살짝 열린 문 너머로 프렛 넘기는 소리가 들어와”) 어쩔 수 없는 그 소릴 듣는 게 참 좋았다. 그때 우린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이라는 앨범에 빠져 있었다. 고된 작업을 마친 후면 각자 편한 자리를 차지한 채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지쳐 잠들기도 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던 음울하고 끝맺지 못한 노래를 실컷 따라 부르곤 사실은 마치 내 얘기와 다를 바가 없댔지”) 너무나도 서글프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그의 연주와 노래를 듣다 보면, 우리는 서로 살아 있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서러워하는 일에 공감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라져야 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이런(조니와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전달해야 좋을까’라는 고민으로 바뀌어갔다. 우리는 이후로도 우울한 노래를 관성적으로 만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한 마음을 해소하기만 하는 앨범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팬데믹을 겪으며 격리된 생활을 할 때, 푹 빠졌던 두 작품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나는 김아일의 두 번째 정규 앨범 이고, 다른 하나는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나인 <테드 래소(Ted Lasso)>다. 전자는 지난한 삶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네가 너무 힘들어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사랑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건네는 앨범이고, 후자는 어떤 사람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한 축구 감독과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다. 두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에 비슷한 점이 하나 있다. 커다란 역경에 빠진 사람이 있어도 그를 포기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주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 그들이 주고받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엄청난 크기로 나를 압도하곤 한다. 말로는 쉽게 옮길 수 있지만, 어떤 상황이건 묵묵하게 사랑을 전하는 일은 실제로 매 순간 많은 노력과 연습을 요하니까. 가끔 이렇게 큰 사랑을 베푸는 일은, 내가 나인 것이 고통스럽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신경을 쓸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결코 내가 그렇게 될 순 없을 것 같다는 말로 미뤄왔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나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마저 품게 했다.

듣는 것, 보는 것만으로 경험이 되던 음악과 TV 시리즈 덕분인지는 몰라도, 혼자 마음속으로만 전하던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얘기들을 앨범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 앨범에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친구가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 (‘o, pruned’), 사라졌던 친구가 다시 누군가를 찾게 될 정도로 여유를 찾았을 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jonny’s sofa’), 힘들고 슬플 때 나와 함께 눈물 지어주는 친구들에게 받았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같은 것(‘무언가’)들이 있다. ‘jonny’s sofa’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싶어 하기 전에 그들에게 아주 원초적이고 단순한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네가 어떤 행복한 모습이건, 어떤 엉망인 모습이건 개의치 않고 그저 네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옆을 지킬게” 같은 말을. 건방진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jonny’s sofa’가 누군가의 힘든 시기를 무사히 지날 때까지 옆을 지키는, 좋은 친구와 같은 곡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