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

네 번째 정규 앨범을 준비하는 싱어송라이터. 2020년 에세이 <사랑하는 미움들>을 펴냈다. 잘 울고 잘 웃다가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

빛이 되어
내 마음을 말려줘
쓸모와 물음 없는
행복을 줘

 

2019년의 분위기를 떠올려본다. 음악 페스티벌과 공연, 파티의 규모가 더욱 크고 화려해졌다. 개인의 일상과 의견을 공유하던 소셜 미디어는 중요한 마케팅 채널이 되었고, 그 파급력이 넘실거리는 듯했다. 나는 정규 3집을 준비 중이었으나 이전 해에 발표한 앨범 활동으로 바빠 정신이 없었다. 바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면서도 기뻤지만, 내가 어떤 시절과 기회를 보내고 있는지 그때는 지금만큼 사무치게 감사하지는 못했다. 새벽에 노래를 만들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작업했다. 술과 음식을 함부로 먹고 몸과 마음을 방치했다. 스스로를 착취하는데 묘한 자부심을 느끼며 불면증 약을 먹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하다 보면 그 안에도 어떤 스승이 있다. 요즘은 생각한다. 그때의 내 마음속에도 지금과 같은 스승이 있었을까.

2020년 2월, 아는 감독님 두 분과 함께 촬영을 하기 위해 3주간 LA에 머물렀다. 무모했던 미국 일정이 지금은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무섭고 걱정되었다. 하지만 나를 담은 환경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찬란했다. 사치스럽게도 그 대비에 나는 내가 사라져야 할 것 같은 고독감을 느꼈다. 스스로 실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어둡고 근원적인 나의 기질을 어루만져야 했다. 당시의 연인과 통화하며 가사를 떠올렸다. 주변 연인들의 이야기도 빌렸다.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의 가사는 하루 일정이 끝나고 철창 달린 슈퍼에 들러 치토스와 잭콕 캔을 사서 숙소에서 몰래 부스럭거리며 먹던 밤에, 초안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단번에 써 내려갔다. 서울과 LA의 시차는 열여섯 시간이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과 일이 끝나고 잠들기 전에 연인과 통화하곤 했다. 아침 7시의 파랗고 맑은 LA 하늘 아래 숙소 테라스에 앉아 전화하며 더럽고 추운 서울을 상상했다. 그러면 불안이 잠시 잊히는 듯했다. 이곳은 밤이지만 상대가 있는 곳은 아침일 때, 그곳에 있을 햇볕의 따스함을 떠올렸다. 어둠 같은 시간이 지나 나에게도 아침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미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니 이 노래도 슬슬 잊혀갔다.

2021년의 연인과 대화하다 우연히 이 노래가 생각났다. 데모를 들은 그 애는 “사월이 가진 노래 중 정말 좋은 노래에 속하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연인들은 사라진다. 가장 소중한 기억도 별것 아닌 순간들과 동등하게 망각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고, 희미하고 음울한 경험도 기록될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의지라는 감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를 견디기 위해 노래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견딘 저항이 큰 만큼 노래가 가지는 힘도 강해지는 거라고 자신을 믿으며 계절을 견뎌간다. 나는 이 노래를 어떤 라이브 무대에서도 부르지 않고 촛불처럼 지켜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른 공연은 2022년의 ‘김사월 쇼’. 대극장에 붉은 커튼이 드리워 있다. 객석은 계단 형태로 쌓여 무대를 내려다본다. 나는 커튼 속 무대로 들어가 바닥에 앉아 스탠바이를 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커튼이 서서히 열린다. 바닥에 깔아둔 은색 아트지가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하다. 눈물 자국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컨셉트다. 눈물을 먹고 자라난 은빛 오브제들이 보인다. 풍성하게 늘어진 레이어드 스커트를 입고 무대 중앙에 철퍼덕 앉아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른다. 나는 얼굴에 눈물 같은 보석 파츠를 잔뜩 붙이고 있다. 이 쇼는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 적자가 난 단독 공연이다. 지금이라면 대극장을 이틀 잡아두고 미발표곡만 부르는 컨셉트는 시도하지 않았을 거다. 매일 예매 창을 ‘새로고침’하며 수척해졌다. 최선을 다했지만 도달하지 못했기에 나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자평하는 공연보다 더 아프고 아름답게 기억된다. 어쩌면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그걸 잃어버리겠다는 뜻과 같다. 가지지 못한 것은 언제나 완전하게 남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다른 2023년의 지금, 4집 앨범에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을 수록하기 위해 스튜디오 녹음을 하고 있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한 번에 녹음하는 원 테이크 형식으로 진행하며 그중 가장 좋은 테이크를 고르려 했다. 나의 시절들이 정갈하고 자연스럽게 담기기를 바라서 이런 형식을 택했는데, 막상 해보니 편집할 수 없는 녹음을 시도하는 일은 고난도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녹음 부스 안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에 울 것 같은 마음으로,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 좋아서 그 테이크를 음반에 싣게 되었다. 삶이 참 짓궂게도 이렇다. 잘하려고 하면 미끄러지고 힘을 빼면 어떤 순간이 만들어진다. 매번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삶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흔들린다. 당장은 단단한 삶의 자세를 취하기 어렵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스승은 알고 있다. 나는 수용하고 만족할 수 있었고, 보내주고 축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걸 가질 수 있기에 욕망하게 된다고 믿는다. 나에게 의심과 물음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빛을 주소서. 외로움을 지키는 인내와 같은 깊은 어둠을 주소서.

첫 정규 앨범의 수록곡 ‘접속’에는 “같은 곳에서 같은 속도로 심장이 뛴다면 당신의 꿈속으로 접속할 수도 있겠죠”라는 가사가 있다. 그 미약하고 끈질긴 마음을 이유 삼아 접속의 영어 제목을 ‘Signal’로 정했다.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의 영어 제목은 ‘Signals Across the Night’로 정했다. 나의 간절한 신호가 이제는 밤을 건너 아침으로 도착하는 것을 상상한다. 과거의 기도가 지금의 나에게 닿았기를, 지금 나의 기도가 미래의 나로서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언제나 자신은 없지만 항상 기다리고 있다. 광활한 우주 속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작은 신호를 무모하게 쏘아 올리며 내가 나의 삶을 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