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 하드, 필름, 휴대폰 앨범의 가장 첫 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라는 전시 인트로 문장이 <SOFT HARD>의 주요한 맥락으로 읽힌다. 지금 이 시점에 처음을 대면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포토그래퍼로서 현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포착하는 과정 에서 큰 희열을 느꼈지만, 그 순간들을 정리해 온전히 시간이 쌓이도록 정돈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혼재된 와중에도 지난 작업을 보면 그 당시 무엇을, 왜 찍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억난다.예를 들어 (작품 한 점을 가리키며) 저 콜라 캔을 찍을 당시 의 조명 세팅, 캔 표면에 떨어지던 찰나의 빛 같은 것이 내 머릿속에는 아카이빙돼 있지만 실제로 이미지를 분류하지는 않았던 거다. 전시를 제안받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고민하다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머릿속 아카이브와 실제 쌓아둔 이미지의 싱크를 맞추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을 발췌해 실제로 나열하고, 그 광경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전시를 통해 예술가는 최신 버전의 나, 최선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는 현재 상태를 보여주려 하지 않나.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 나와 대면하는 순간을 감내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나와 부끄러운 나 사이를 마구 오가야 하는.(웃음)
초반에만 해도 용감하게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막상 이미지를 꺼내 보면서 ‘이런 사진을 찍었던가’, ‘이렇게 10년이 흘렀나’ 하는 생각을 시작으로 당시 현장에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무수한 이미지 더미에서 주어진 시간에 사진을 골라내야 하는데 ‘아, 저 때 (송)혜교 배우가 참 잘했네’ 생각하다 한참 멍하니 있기도 하고, 진도가 안 나가는 거다. 한편으로는 내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작업을 하고 싶고,
매 순간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것을 만들고 싶었지만,
큰 틀에서 돌아보면
내 지난 10년은
이번 전시의 사진들처럼
로드 트립이었던 것 같다.
이쯤 되니 지난 10여 년이 어떻게 정리되는 것 같은가?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혼란스러웠다. 당시에는 순수예술과 상업 예술의 경계가 극명하게 나뉘었고, 순수예술 안에서도 암묵적으로 페어형 작가, 비엔날레형 작가를 구분할 정도로 예술계가 경직돼 있었다. 순수예술을 하고 싶어 런던에서 공부도 했지만, 나 자신이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웃음)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2011년 무렵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접어든 이 길이 너무 재미있는 거다. 패션 사진을 통해 구현하는 동시대 첨단의 팝한 이미지들, 빠른 속도와 전환 속에서 작업자로서 쾌감과 성취감을 느꼈고,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동력이 됐다. 그렇게 5~6년을 보냈다. 한데 비전과 목적을 명확히 하고 들어선 길이 아니다 보니 마음 한편에서는 이게 맞나 싶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싶어 막막한 순간도 많았다. 순수예술에 대한 미련, 패션 사진을 계속 하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충돌하는 거다.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시간이었고, 갈팡질팡하던 지난 흔적이 정돈되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이미지를 좋아하고, 이미지를 곧잘 만드는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어떻게 운용하고, 또 쓰일지 이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작업을 하고 싶고, 매 순간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것을 만들고 싶었지만, 큰 틀에서 돌아보면 내 지난 10년은 이번 전시의 사진들처럼 로드 트립이었던 것 같다. 목적지가 있다기보다 어디로 갈지, 심지어 가야 할지 말지도 모른 채 부유하는. 그런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요즘 이런 마음이 자주 든다.(웃음)
지난 작업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전시 타이틀 <소프트 하드>가 떠올랐나? 시각예술인 사진에 촉감을 부여하는 제목이 참 좋다.
전시를 준비하던 중간쯤에 타이틀을 정했다. 지난 작업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세계에 살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완벽한 현실 세계도, 가상 세계도 아닌 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던 것 같다. 주유소나 건축물처럼 인간이 개입한 정지된 이미지 속에 머물기도 했고, 하늘과 바다와 같이 흘러가는 추상 속에 있기도 했다. 극단적 콘트라스트의 세계, 그 양극을 오가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경계가 때로는 굉장히 ‘하드’하고, 반대로 ‘소프트’했던.
앞서 말한 대로 로드 트립, 하늘이나 주유소 등 길 위에의 삶이었다. 어떤 컷들은 촬영하다 이동하는 과정 중에 담은 결과물이라고 추측된다. 누군가는 주유하는 사이 찍은 사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알지 않나.(웃음) 부여받은 목적에 부합하는 작업을 해나가는 틈틈이 무목적의 이미지를 남기는 행위의 수고스러움을, 찰나의 순간에도 눈과 감각을 형형히 뜨고 깨어 있으려는 부지런함을.
돌이켜보면 산업 안에서 원치 않은 방향도 있었지만 그때마저도 내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작업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고, 찾고 있는지 잃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잃지 않은 건 아니지만. 현실은 휘청거려도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긴 했던 것 같다. 그게 대단한 노력이라기보다 그저 ‘어디로 가고 있지? 여긴 어디야, 여기 괜찮네’(웃음) 하는 정도의 깨어 있음이었을 테지만 애는 썼던 것 같다.
지난여름, 이배 작가 인터뷰 촬영을 함께할 때 화가의 붓질은 지난 수행의 과정이 신체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나. 이는 사진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피사체와의 거리, 빛의 방향이나 조도 등 무수히 계산하고 선택해야 하는 와중에 셔터를 누르는 순간만큼은 찍는 이의 무의식이 발현될 수밖에 없겠지.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 무의식을 단련하는 건 포토그래퍼에게도 중요한 덕목일 것 같다.
맞다. 이배 작가님은 이를 ‘신체성’이라고 표현했다. 권부문 작가님의 작업도 좋아하는데, 그분은 ‘보고 싶은 풍경이 자신에게 다가온다’라고 표현한다. 찍는 이가 이미지를 부른다는 말에 일견 동의하는데, 사진이라는 2D 프레임 안에 영혼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피사체와 나의 신호가 합쳐져 들어오는 게 사진인데, 이 시그널을 잘 담으려면 깨끗해야 한다. 내 에너지가 좋고, 상태가 좋으면 더 나은 것이 나온다. 한 사람의 격이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대로 반영되기에 사진으로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잠깐은 잔재주로 속일 수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우리 일은 주기가 짧지 않나. 월간 매거진 작업을 해도 그 작업물이 한 달도 채 지속되지 않는다. 순간을 다루고, 휘발성이 강한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계속 갈고닦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이 일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환경이 산업적으로 가공할 정도로 변화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나는 때로 가늠할 수 없는 속도 안에서 자주 막막하고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한다. 한데 목정욱 포토그래퍼는 그 가운데 누구보다 유연하고 단단하게 자리한다는 인상을 준다.
결코 아니다. 매 순간 휘청이고, 혼돈 속에 있는 순간도 많다. 지금은 뭐랄까. 모든 것을 숫자로 파악하는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팔로어가 몇 명이고, 광고를 얼마나 했을 때 바이럴이 얼마가 도출되는 프로그램 속 말이다. 한데 그게 실제 작동하는 유효한 수치인지 의문이 든다. 수십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고 했을 때, 그 숫자가 해당 브랜드를 인식하는 데 실제로 얼마나 작동했는지, ‘좋아요’ 수에 비례하는지에 대해 회의가 든다. 팔로어 수는 그 사람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참고 사항일 순 있지만, 팔로어 50만 명의 배우가 1천만 명의 배우에 비해 그 가치가 20분의 1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캘빈 클라인 하면 자동 반사에 가깝게 케이트 모스, 마크 월버그 같은 상징적 인물이 떠올랐다. 상호 보완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가 배우 코어의 큰 축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게 이미지가 무의식적으로 대중을 잠식한 건 그 배경에 빌보드 한자리에 최소 6개월, 1년씩 동일한 이미지가 걸려 있던 환경의 영향이 크다. 이는 이미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연결된다고 본다. 빠르게 교체되는 무수한 채널, 초 단위로 재구성되는 타임라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자극적으로 포장해 눈에 띌지, 좋아요를 부를지에만 골몰하지 않나. 작업자가 흔들리기 쉽고, 신념을 갖고 자신을 지키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연연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가능한 일일까?
소모적 환경에서 다음 동력은 무엇일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닳아 없어지기 전에 멋있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한데 최근 1~2년 사이 정리된 생각은 이 일 자체는 오래 하고 싶다는 거다. 그러려면 방식을 바꿔야 할 거다. 이 일이 재미있고 좋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나를 싫다고 할까 봐 지레 내가 먼저 네가 싫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나를 조금 지겨워해도 이 자리에서 가만히 내 일을 하면서 너를 계속해서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게 더 성숙한 태도이지 않을까. 이 일은 늘 업다운이 있고,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위로 올라간다는 것에는 실체가 없다. 누가 더 잘 찍고, 못 찍고는 기호의 차이일 뿐이고, 좋은 작업을 했다는 것은 그 순간 서로 클릭이 잘돼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니까. 이제 함께하는 후배들이 많이 생겼다. 소모되지 않고 이곳에 속함으로써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 지금 이 시점의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일이 참 사람을 단련시키고 성숙하게 한다.
지나고 보니 행복한 일이 너무 많았고, 내가 이 행복을 즐긴 것도 분명하다. 기득권으로서 현장을 놓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락을 작업자로서 험블하게 오래 누리고 싶다. 건강한 방식으로. 내가 지금의 나의 일을 더 존중하고, 협업하고 싶은 작업자들과 여지를 더 열어두면서 보다 새로운 시간과 장소에 나를 보내고 싶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일을 했기에 가능했던 경험들에 깊이 감사했다. 길 위에서 느끼는 혼돈도 있었지만 그랬기에, 그 위에 서 있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컸다는 걸 알았다.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이 전시가, 이 시점이 목정욱 작가의 중요한 기점으로 느껴졌다. 지금 인터뷰를 할 수 있어 큰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보다는 우리가 협업하고 연속성이 생기는 과정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다. 내 삶이 어떻게 나아갈지 나도 궁금한데 5년, 10년 뒤에도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은 나를 비우고,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만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나머지 모든 일은 함께여야 가능하다. 스튜디오를 함께 꾸려가는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열심히 해야지 싶고, 좋은 울타리가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지금처럼 동료들과 더 좋은 경험을 하려면 나도 더 잘해야겠지. 그래서 5년 뒤에 또 어떤 전시를 해서 우리가 오늘처럼 이렇게 다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진다면 그 또한 몇 배 더 큰 행복이 생기는 일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