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경

아스피린 오버도즈

그대 내게 다가와
우리 함께 있을래?
아주 어두워진 이 밤에
서롤 비춰줘요

 

‘아스피린 오버도즈’는 2022년 말에 발매한 <최저낙원>이라는 EP의타이틀곡이다. 이 곡은 내가 몇 년 전 꾼 꿈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내 노래 중 꿈의 의미를 담은 제목을 가졌거나 꿈속 상황을 묘사한 곡이 꽤 되지만 실제로 꾼 꿈을 옮기려 한, 그러니까 나의 경험을 그대로 옮기려 한 곡은 ‘아스피린 오버도즈’가 유일하다.

이 곡을 처음 만든 2019년은 정규 1집 <속꿈, 속꿈> 작업으로 한창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늦게까지 앨범 작업을 하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꿈을 하나 꿨다. 꿈속에서 본 내 방에는 벌레들과 진흙이 가득했다. 그 장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난장판인 방에서 나오려 했지만, 방문이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방문이 열리지 않자 방법을 바꿔 창문으로 탈출하기로 했다. 힘겹게 창문을 없애고 몸을 밖으로 던졌는데, 떨어진 곳이 해변이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휴양지 같은 해변 말이다. 꿈속에서 느껴지는 해변의 바람이 더없이 시원해 직전의 급박한 상황은 완전히 잊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해변을 천천히 거닐면서 혼잣말로 “시원한 주스가 먹고 싶다…”라며 여유를 부릴 때쯤 꿈에서 깼다

꿈이 워낙 생생해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러고는 기타를 집어 들어 방금 꾼 꿈을 기반으로 ‘아스피린 오버도즈’를 만들었다. 되돌아보면 꿈을 꾼 2019년 말은 개인적으로 최악이라 여길 만큼 힘든 시절이었다. 당시의 나는 귀에도 잠시 문제가 생기고 개인적인 악재가 여럿 겹쳤는데, 이런 상황과 어떤 염원이 투영되어 그런 꿈을 꾸었을 거라 추측한다. 곡으로 돌아와 제목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꿈에 등장한 나의 방과 해변이라는 두 공간을 양극단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성격을 지닌 모티프를 모색하던 중에 이상의 소설 <날개>를 차용하기로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스피린과 아달린은 마치 O와 X처럼 극과 극을 의미하는데 아스피린은 화자의 이상(理想)이자 믿음, 그리고 아달린은 현실과 불신을 뜻한다. 내 식대로 해석한 거지만. 결과적으로 이 곡은 ‘아스피린 오버도즈’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게 됐다.

꿈속에 등장한 나의 방을 의미하는 벌스에서는 당시에 느낀 감정을 가사에 녹여 담았다. 노랫말을 구상할 때 거치는 나름의 필터링 없이 당시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데 집중했다. 가사를 쓸 때 노래 안에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도록 하는 편이라 2절은 꿈을 꾸던 당시라고 생각하며 작사했다. 그 때문인지 2절에 부정적인 감정이 잘 묻어나 보컬을 녹음할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와 반대로 코러스에서는 내가 생각한 염원을 담으려고 했다. “그대 내게 다가와”라는 가사가 코러스에서 주를 이룬다. 나의 다른 노래에도 ‘그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이 곡에서 ‘그대’는 그간 사용한 뜻과 조금 다르다. 작사할 때 보통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어두는 편이지만, 이 곡에서는 ‘그대’를 연인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보다 절대자 혹은 구원이라 생각하며 사용했다.

보통 뮤직비디오는 감독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기는 편인데, ‘아스피린 오버도즈’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보고 내 의도에 매우 가까운 영상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자 나의 친동생인 우용 감독에게 곡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동생은 내게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이라 말해줬는데, 이 표현이 가사 속 ‘그대’라는 표현과 가장 가까울 터다. 꿈속에서 걸었던 해변을 떠올리며 써나간 코러스 부분에 이런 동경을 담으려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아마도 ‘아스피린 오버도즈’는 그간 해온 작업 중에서 편곡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한 곡이 아닐까 싶다. 곡이 곡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여럿 있지만, 이 곡은 이런 것을 과감히 버려가며 만들었다. 그저 꿈을 옮긴다는 목적 하나로 작업에 임했던 것 같다. ‘아스피린 오버도즈’는 2019년 말에 이미 곡의 얼개가 잡혀 있었지만, 정규 1집과 화자가 달라 수록하지 않고 오랫동안 컴퓨터 속에 저장돼 있었다. 평소 마스터링을 제외하고 전부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틈날 때마다 곡의 구조를 마음껏 바꿨는데, 웃긴 건 아무리 수정을 거듭해도 항상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아마 당시 잠에서 깨어나 바로 쓴 곡이 꿈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렇게 수정을 거듭하던 중 시간이 흘러 <최저낙원> EP 발매일이 가까워졌다. 다른 곡은 회사 측에 음원을 전부 보냈지만 ‘아스피린 오버도즈’만은 납기 마지막 날까지 끝내 보내지 않았다. 이 곡은 그저 계속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꿈이란 경험에 빠져 모난 작업물을 내보내는 건 아닌지. 결론은 처음 느낀 경험과 기분을 믿고 음원을 전달했다. 수정한들 어차피 처음으로 돌아오니 이 곡을 세상에 내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아스피린 오버도즈’는 여전히 여러 의문이 남는 곡이지만, 언젠가 곡을 소개할 기회가 오면 꼭 소개하고 싶었다. 철저히 나의 경험을 담는 데 집중한 곡이기 때문이다. 물론 창작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지만, 나는 그런 것에 겁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그래서 그간 나와 닮은 누군가를 화자로 설정해 곡을 쓰곤 했다. 하지만 이 곡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저 당시에 꾼 꿈과 겪은 감정이 전부라 그대로 쓰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내게 꽤 강렬한 경험이었는지 이후 새로운 곡을 작업할 때도 작사하는 방식이나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솔직해졌다고 느낀다. ‘아스피린 오버도즈’는 아마도 내게 어떤 분기점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