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온유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서정과 낭만을 담은 단어로
표현하는 밴드 신인류의 보컬. 신인류는 그를 포함해
베이스 문정환, 키보드 하형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8년 싱글 앨범 <너의 한마디>로 데뷔했다.
2019년 방영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로
삽입된 ‘작가 미정’으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작가 미정

 

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 남는 단어는
몇 개일까요

 

 

신인류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 팀 계정으로 DM이 하나 왔다. 드라마 제작사인데, 미팅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단번에 눈에 띈 ‘OST’라는 단어에 무척 떨리고 설레었다. 흥분을 겨우 가라앉힐 즈음 이 메시지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처를 남겼다. 통화를 마치고 멤버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대박! 우리 OST 들어왔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대.” 멤버들도 모두 실감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팅에서는 곧 방영하는 드라마에 우리가 만든 음악을 삽입하고 싶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당시 EP 앨범을 위해 제작하던 곡 중 ‘그런 하늘’, ‘한여름 방정식’, ‘작가미정’ 세 곡을 추려 데모곡을 전달했고, ‘작가미정’이 최종 삽입곡으로 결정되었다. 뒤이어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작가라는 사실을 접하고 우리는 이 모든 순간이 마치 운명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멜로디와 가사가 만들어져 있었고 제목까지 정해둔 상태였기에 드라마에 활용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어느 정도는 수정을 거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원곡 그대로 사용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신기하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 기억이 있다.

이후 ‘작가미정’의 가사에 위로받았다는 소감을 많이 보고 들었다. 그럼에도 가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사실 기회가 없었다기보다 기회를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전에는 듣는 사람마다 가사에 대해 자유롭게 해석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나조차도 내 마음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가사로 쓰는 편이라 가사의 의미를 정의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지면을 빌려 가사를 쓰던 그때의 마음을 다시 회상해보기로 했다. 다만 작사가의 관점이 아니라 이 곡의 청자로서 가사를 접하며 느낀 감정에 대해 적고자 한다. 그만큼 이 곡과 가사가 모두에게 다양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기에.

첫 도입부에 나오는 “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 남는 단어는 몇 개일까요”라는 문장은 이 곡의 청자들과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숨소리마저 대화가 될 수 있는 나에게 과연 ‘하루의 끝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가 몇 개나 될까?’라고 질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자꾸 나는 말, 나에게 상처를 주는 무례한 말, 귀감이 되는 말까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뒤에 내게 다정한 단어가 많이 남은 날은 특히 기억하고 싶어진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던 상대에게 미처 모든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날이면, 내가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듯 말은 사람의 감정에 날개를 달아주는 존재다.

한편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가사를 쓰던 당시 글쓰기 모임에서 한 작가를 만났다.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가 자리도 아니고, 인테리어가 화려해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위치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카페의 구석 자리에 앉아 나눈 대화 속 단어들이 여전히 선명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말은 뜨거운 커피처럼 식을 줄 모르고 내내 나의 마음을 떠돌다 어느새 가라앉는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밤을 지새우며 대화를 나누지만 그마저도 아쉬울 때가 있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신나고 행복한 마음에 마구 떠들곤 했다. 행여 나의 서두른 표현이 상처가 됐을까 싶어 물어보기도 하고,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땐 그저 꼭 안아주기도 했다.

밝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너무 소중해 해치지 않고 온전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들 말이다. 그때 너는 나를 사랑해서 더욱 슬펐을까? 혹은 당시의 그 말이 내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이렇게 되뇌다 보면 세상에는 사랑하는 방식이 너무 많고 다양하기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해진다. 어느 날 다시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속마음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가까운 것을 바라볼 때, 그리고 먼 허공을 바라볼 때 떠오르는 기억이 다르다. 대부분 허공을 바라볼 때 희망적이라는 기분이 든다. 알고 보면 ‘작가미정’의 가사는 결코 슬프지 않다. 눈물을 삼킨 듯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나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고, 해가 쨍쨍하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하늘은 굳은 다짐을 한 사람처럼 초연해 보였다. 하늘 끝에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결승 지점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서서히 지나간 구름들이 만나는 곳. 그곳에 결국 끝은 있으니 너무 슬퍼 말라고.

이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향한 위로가 필요하다. 마음에서 가지를 치는 말도, 흔들리는 바람에도 의연하게 웃을 수 있는 나를 꿈꾼다. 마음이 아픈 모든 사람에게 이 곡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인생의 결말은 각자가 써나가는 것이고, 지금도 써나가는 과정이기에. 삶이 늘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 안에 사랑이 존재한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 전환의 힘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믿었으면 한다. 이 곡과 글이 위로가 된 이들에게는 신인류의 다른 곡인 ‘날씨의 요정’과 ‘안식처’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