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진가 래티샤 드 라 빌위셰는
눈과 빙하가 이뤄낸 풍경을 마주하며
느낀 감상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현실과 허구 사이에 놓인 듯,
아름답고도 낯선 자연이
우리 삶에 전하는 풍요와 평안.

눈과 빙하가 이뤄낸 풍경을 사진에 담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이 프로젝트의 사진 속 풍경은 내가 어느 날 꾼 꿈 속 장면과 유사하다. 내가 그 장면 속에 실제로 있었다고 느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꿈이었다. “우리가 한때 존재했던 장소는 우리의 일부가 된다”라는 소설가 짐 해리슨의 말이 떠올랐다. 그 이후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꿈속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신기루(mirage)’라는 프로젝트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인간은 잠이 들면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깼을 때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대부분은 꿈속에서 마주한 것의 잔상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꿈은 실제 삶과 동떨어져 있는 동시에 우리의 영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현실과 허구 사이에 있는 환상이자 일종의 신기루라고 느낀 거다.

신기루 같은 풍경을 찾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먼저 안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실재와 그 너머의 경계를 지우며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환기하기 위한 풍경으로 빙하를 선택했다. 안개가 짙게 끼었는지 살피기 위해 빙하에서 하이킹을 자주 했고, 인적이 전혀 없는 지역을 탐험했다. 그러다 보면 가끔씩 선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드넓은 하늘과 옅은 분홍빛을 띤 땅 사이의 경계가 흐릿한 새하얀 경관은 신비로움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 풍경을 포착할 때 유의한 점이 있다면?

풍경은 전제일 뿐이라는 것. 사진가라면 본인이 대면한 풍경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나는 집중을 넘어 반응하고 싶었다. 내가 중점을 둔 건 풍경 자체가 아니라 풍경이 불러일으키는감정이다. 이를 사진에 오롯이 실어 나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많은 것이 이미지를 통해 소비되는 오늘날, 사진가의 미덕은 사각 프레임에 담아낸 장면을 통해 사람들을 명상의 시간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다룬 한 기사에 있던 문장이 떠오른다. ‘눈 내린 풍경은 인식의 주관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준다.’

우리는 눈 하면 주로 긍정적인 단어를 연상한다. 이를테면 크리스마스, 순수, 환희. 그런데 어떤 때는 눈이 쓸쓸하고 사라지기 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눈 덮인 풍경을 보며 자주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같은 현실일지라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현실보다 중요한 건 각자의 주관적 인식이 아닐까 싶다.

눈 내린 풍경뿐 아니라 산과 바다 등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해왔다. 자연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인가?

자연을 눈앞에 두고 그 누가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웅장한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한편 자연은 인간이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 왜 인간의 가치를 상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끊임없이 일깨워주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삶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셈이다.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 마냥 절망스러운 것만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삶을 충실히 살아가게 할 것 같다.

동의한다.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해내지 못하거나, 감정을 충만하게 누릴 수 없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인간은 아주 작으면서도 무한히 큰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를 인지한다면 삶을 보다 풍요롭고 평온하게 가꿀 수 있지 않을까.

이 프로젝트를 마주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프로젝트는 당신의 일상을 잠깐 멈춰보라는 메시지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자연과 잠시나마 연결되는 건 의미 있는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주변의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고, 그 감각을 만끽하기를 권한다. 그러면 당신의 삶이 한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읽힐 거라고 믿는다. 그 감상이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오래 공명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