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쓸모
2023년 2월 1일, 챗GPT 유료 서비스 시작
2022년, 엄청난 위상으로 등장한 챗GPT와 함께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냈다. 일감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일감을 빼앗아갈 것이라는 우려와 일맥상통했다. 챗GPT의 알고리즘을 지배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은 기계로 하여금 ‘사람처럼’ 소통하고 답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챗GPT의 론칭 전후로 기고 및 편집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프리랜서의 일자리 수와 소득이 급감하고 있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값싸고 효과적인 업무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지금, 인간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나는 주변에서 일자리의 미래를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그 향방을 미리 엿보고 싶다면 중증 장애인 일자리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비장애인 근로자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구직 시장에서 외면받는 중증 장애인들이 일하는 현장 말이다. ‘사회적 쓸모없음’의 위기를 뒤늦게 인식하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그 위기를 먼저 겪고 있는 이들을 마주해보라는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눈동자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중증 장애인 노동자도 기꺼이 참여하는 ‘권리 중심형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 상품 생산을 목표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 생산을 위해 일한다는 논리 아래 탄생한 장애인 일자리 사업이다. 무형의 지식을 생산하고, 동료와 소통하고, 사회적 고립을 막고, 공동체와 연대하는 일자리. 기계보다 생산적이지 못한 모든 인간이 참조해야 할 일자리의 미래는 지금 장애인 일자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변재원(소수자 정책 연구자)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위해
2023년 2월 28일,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사망
지난 2월, 전세 사기 사건 피해 당사자들이 모여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국회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고 건의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사건으로 전세 보증금 7천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채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간 피해자였다. 당장 거리에 나앉는 사람이 많으니 경매라도 유예해달라는 그의 요구에 정부 측이 건넨 답변은 “현 제도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공허한 말뿐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2월 28일, 그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를 시작으로 미추홀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세 사기 피해자 수만 4명이 넘는다.
그 후 6월 1일, 경공매 우선매수권 행사 권한을 골자로 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시행됐다. 경공매 유예가 포함된 최초의 법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변화이긴 하지만, 한국도시연구소가 전세 사기·깡통 전세 피해 1천5백79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특별법을 시행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대책을 이용했다고 응답한 피해자는 약 18%에 불과하다. 현 특별법이 다가구 전세 피해자들에게는 소용이 없어 뚜렷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데다, 피해자들이 요구해온 핵심적 구제 대책인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제외돼 사실상 실효성 없는 반쪽자리 법안인 셈이다. 전세 사기 유형부터 개개인의 경제적 처지까지 당사자들이 놓인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부재할 뿐 아니라 피해 인정 조건이 까다롭고 모호한 점 또한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에 의한 직접적 구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특별법 개정안에서 중요한 쟁점이던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보증금 채권 매입을 정부 차원에서 실행하지 않으면 피해 회복이 불가능한 피해자가 여전히 존재한다. 특별법으로 인해 구제되기보다 오히려 배제됐다고 느끼는 당사자가 많은 지금, 정부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명확히 바라보고 작동 가능한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