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 뒤에 숨겨진
2023년 8월 8일, 샤니 빵 공장 끼임 사고
SPC 계열사인 샤니 빵 공장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기에 끼여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는 병원에 옮겨져 수술까지 받았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지난해 10월에도 동일 계열사의 다른 빵 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빠져 숨진 일이 있었다. 조사 결과 사망에 이르지 않아 바깥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 계열사 공장에서는 비슷한 산업재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맛있는 빵, 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작업장이 이토록 위험한 곳인 줄 사람들은 미처 몰랐다. 동화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은 무사히 과자의 집을 탈출했지만, 이곳의 노동자들은 잔혹 동화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해야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다. 일하는 사람의 죽음이 사회적 의제가 되고, 느리지만 제도가 바뀌는 것은 시민과 노동자의 연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움직일 때가 아닐까. 김명희(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
미술계의 미투가
여전히 화두여야 하는 이유
2023년 8월 17일, 미술가 임옥상 강제 추행 혐의 유죄 판결
2017년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를 둘러싼 성 추문이 SNS의 해시태그를 통해 세상에 폭로되기 시작하면서 분야 구분 없이 그야말로 성역 없는 폭로가 이어졌다. 한국 예술계도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그간 거장으로 추앙받던 인물들의 추태가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투의 광풍이 잦아들 무렵인 올해 8월 17일, 임옥상이라는 소위 1세대 민중미술가의 성추행에 관한 재판에서 피고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이 났다. 그가 10년 전 조수에게 범한 성추행에 대한 처리는 법리의 영역에서 해결되겠지만, 미술계에는 새로운 윤리적 화두가 생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억의 터를 임옥상 작가의 작업으로 조성한 데 따른 시시비비다. ‘성추행범이 만든 작업의 존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작업 철거는 곧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록이 제거되는 일이라는 점과 얽혀 그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투 운동을 둘러싸고 새롭게 떠오른 미술계의 윤리적 화두를 우리는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새로운 가족의 탄생
2023년 8월 30일, 국내 첫 레즈비언 부부 출산
이날 JTBC <뉴스룸>에서는 두 가지 뉴스가 연이어 소개되었다. 대한민국 2분기 출생률 발표, 그리고 한 개인의 출산 소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가임 여성 한 명당 신생아 0.78명이 태어나며 역대 최저이자 세계 최저인 합계출생률을 기록했다. 올해 2분기 합계출생률은 그보다 낮은 0.70명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말처럼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했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앵커는 아이를 낳기 힘든 분위기를 지적하며 젊은 부부들의 인터뷰를 내보낸다.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아빠, 돌봄 지원이 부족해 고생하는 엄마의 사례를 소개하는 앵커의 목소리에 염려가 가득 차 있다. 그러다 갑자기 완전히 다른 소식이 송출된다. “국내에서 처음 임신 소식을 알린 여성과 여성, 동성 부부가 오늘 새벽 딸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렇다. 바로 내 얘기다.
연예인도 공인도 아닌 우리 부부는 그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방송 카메라가 분만실까지 따라 들어오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와이프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당일 저녁 유튜브 생방송으로 시청하며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보았는데, 다른 성소수자 관련 뉴스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애도 안 낳는데 동성이 무슨 결혼이냐”라든지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해체된다” 같은 멘트를 찾을 수 없었다. 최저출생률 다음에 배치된 덕에 급기야 “요즘 세상에 출산하면 애국자지” 같은 댓글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걸 바라보는 나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악플러들이 당황하는 모습은 유쾌했지만, 딱히 국가의 영달을 바라며 아이를 낳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출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시대에 동성 부부가 벨기에에서 인공수정까지 해가며 굳이 아이를 낳은 이유는 무엇일까. 평균보다 높은 가구 소득이 도움 됐을 수 있겠다. 요새는 아이 한 명 키우는 데도 큰돈이 들어가는 시대니까. 프랑스에서 근무하며 아이가 있는 게이, 레즈비언 부부를 본 것이 용기를 주기도 했다. 어렴풋이 아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왜 아이를 낳게 되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뱉은 대답은 바로 “행복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가족과의 삶은 행복했고,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역시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저출생률이 해결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나라일 것이며, 결국 더 많은 아이가 태어나는 나라일 것이다. 김규진(<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