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학교를 위해
2023년 1월 1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흥행
연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드라마 <더 글로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학교 폭력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대중은 피해자 관점에서 아픔에 공감했고, 피해자의 복수로 가해자들이 몰락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피해자는 가해자들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의 사적 복수는 사실 범죄로 얼룩져 있다. 피해자가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 복수를 했다가는 범죄자로 전락하고, 오히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뒤바뀔 것이다. 법과 제도에 따라 학교와 교육기관,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들을 대신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2월경 한 고위 공직자 후보의 아들이 과거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과 제도의 허점이 밝혀졌다. 가해자는 ‘강제 전학’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음에도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불복 소송을 끌며 전학을 지연시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학교와 교육기관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는 같은 공간에서 가해자와 계속 생활해야 하는 탓에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더 글로리>를 계기로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을 학습한 대중은 학교 폭력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이에 정부도 ‘가해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 피해자 보호 강화’를 목표로 한 ‘2023년 학교 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내년 3월 1일부터는 새롭게 마련된 제도가 교육기관과 가해자 및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개선된 학교 폭력 예방법은 ‘피해자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2023년 한국 사회가 ‘학교 폭력 피해 학생 보호’라는 화두를 던졌다면, 2024년은 피해 학생이 학교 현장과 사회 전반에서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노윤호(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
캔버스를 넘어, 더 넓게
2023년 1월 31일,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WE> 전시 개막
불과 5년 전에 비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확실히 늘어난 듯 보인다. 주로 공연계에서 사용하던 ‘피케팅(피가 튀길 만큼 치열한 티케팅)’이란 용어가 미술계로도 넘어왔으니 말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이미 잘 알려진 대가나 유명한 명화전에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6월에 시작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이다. 치열하게 새로고침해도 예매가 어려워 손이 빠른 지인에게 부탁해 티켓을 구해야 하는 전시였다.
하지만 올해 미술관 앞을 인파로 북적이게 한 전시 중에는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있었다. 리움미술관이 올해 1월 31일에 개최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WE>는 회화와 같이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익숙하게 관람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닌 설치와 퍼포먼스 등 낯선 매체들로 가득한 터라, 대중적 흥행은 생각하기 어려운 전시였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개막 초반부터 수많은 사람이 관람을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올해 초까지 황량함이 맴돌던 이태원에 다시 인파를 몰리게 한 전시였다는 기사까지 보도된 바 있다. 실제로 리움미술관 측은 약 4일간 전시에 다녀간 인파를 총 1만7천 명으로 추산했다.
명화전의 사례처럼 회화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 대한 관심도가 늘어난 점은 분명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한국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 보고서’에서도 작품 구매와 관련해 회화 이외 장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회화에 국한하지 않고 현대미술 자체에 대한 대중 및 컬렉터의 이해도와 포용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에 향후 더 다양한 미술 형태를 만나볼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이지현(문화 예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