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잃어버린 자리에서 한 걸음 내딛는 용기.
임선우 작가가 세 번째 소설집 ≪지상의 밤≫에 펼쳐낸 상실 이후의 삶.

이별을 결심한 연인, 작고한 아버지, 떠나보낸 반려견. 소설가 임선우가 세 번째 소설집 ≪지상의 밤≫에서 주목한 화두는 ‘상실’이다. 그동안 능청스러운 환상과 따뜻한 위로가 담긴 이야기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는 이번 신간을 통해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정서를 특유의 상상력으로 펼쳐낸다. 이별의 고통을 귀여운 대상으로 바꿔버리고, 형용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을 실재적 감각으로 묘사하며 써 내려간 일곱 편의 단편은 슬픔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삶 속에서 ‘잘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 귀띔한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상실로 인한 빈자리를 다정한 용기로 채워준다.

≪지상의 밤≫을 세상에 내놓은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한마디로 ‘20대여, 안녕.’ 8년 전부터 만 서른 살이 된 지난해 생일 사이에 쓴 소설들을 엮었는데, 20대의 나를 관통하는 화두가 솔직하게 담긴 것 같다. 하나의 매듭을 잘 지은 듯해 의미 있게 느껴진다.
책에 담긴 20대 시절의 화두는 무엇인가?
20대 내내 ‘좋은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여러 단편을 발표하고 보니 확실히 상실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20대의 나는 ‘한 사람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가 사라지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존재는 사람뿐 아니라 반려견과 직업 등 다양한 대상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이 ≪지상의 밤≫에 담긴 단편들의 시작점이다.
소설 집필이 상실의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나?
확실히 그렇다. 헤어진 연인으로 슈톨렌을 만들어 먹는 <프랑스식 냄비 요리>나 연인과 신체 일부를 공유하는 <사랑 접인 병원>은 상실에 대한 광적인 두려움이 느껴지는데, 이런 감각이 지금의 내게는 없다. 내 안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 정리된 거다. 이렇듯 이번 책의 소설들을 써나가는 시간은 상실을 둘러싼 내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이었다. 뚜렷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변해왔으며 그 변화는 성장에 가깝다는 느낌은 늘 있었다.
책을 처음 봤을 때 표지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정말 예쁘지 않나?(웃음) 수면 아래로 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그린 표지를 보니, 내 사적인 감정이 담긴 이야기에 외부의 기운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유의 상상력이 이번 책에서도 돋보인다. 상상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실제로 마주했던 장면과 감정을 연결 짓는 작업을 좋아한다. 소설 이전에 시를 쓴 적이 있어서 이미지를 텍스트화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이미지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어디로 뻗어나갈지 더욱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롭다. 마음이 식은 연인이 식재료로 변한다는 설정도 일상에서 비롯됐다. ‘도토리’는 어느 가을 집에만 있던 내게 동생이 계절을 느끼라며 준 것이었고, ‘순무’는 셰프들이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
상상에서 비롯된 소재들이 무척 귀엽다.(웃음)
쓸 땐 몰랐는데, 소설들을 한 권으로 묶고 평론가의 해설을 읽으니 충분히 귀여운 것 같다.(웃음) 상실이 무거운 주제이다 보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와 형태로 무의식중에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소설을 쓸 때 어떤 방식을 따르나?
내 소설 속 환상은 거대한 세계관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현실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누군가 “가슴이 돌덩이를 얹은 듯 무겁다”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돌의 무게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감각에 가까울 수도 있지 않나. 돌의 모양이나 질감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 돌덩이 같은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내가 서사를 펼쳐가는 방식이다.
표제작 <지상의 밤>은 직장 내 괴롭힘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 해파리가 되기로 결심한 주인공 ‘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해파리는 전작 <빛이 나지 않아요>에도 등장한 소재인데, 해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열 살 때 해변에서 수영하다가 해파리에 쏘인 경험이 있다. 이후 해파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마치 바다의 아름다운 유령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가더라. 무엇보다 뇌와 심장이 없어 해류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듯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데 이끌렸다. 인간은 매 순간 선택하며 살아가는데, 해파리는 선택 없이도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 동경을 느끼기도 했다.
해파리에 어떤 설정을 부여했나?
<빛이 나지 않아요>처럼 <지상의 밤>에도 ‘변종 해파리’가 등장한다. 변종 해파리의 촉수에 몸이 닿은 생명체는 해파리로 변하게 된다. <지상의 밤>에서는 해파리가 빛을 낸다는 설정에 특히 주목했다. 해파리의 푸른빛이 사람들을 홀리는데, 이는 과학적 사실이나 불가항력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 점이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수록작들을 읽으면서 ‘상실로부터의 회복은 삶의 감각을 되찾는 데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삶은 어떻게든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면서 계속될 테니 말이다.
맞다. 채움과 비움이 거듭되는 게 삶의 속성 같기도 하다. 그런데 비워지는 게 불안해서 무언가를 급히 채워 넣으면 충족되기보다 오히려 탈이 나더라. 그래서 채워나갈 것과 비워낼 것을 분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채움과 비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삶에서 상실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한 존재와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 않나. 이별 직후에는 그 흔적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마저 내 고유한 일부가 되더라. 그러니까 상실의 경험은 한 사람을 이루어가는 삶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받아들이면 상실이 남기는 영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같다. 긍정적 영향이라면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했음에 고마워하고, 나 자신이 변형되거나 훼손되었더라도 그 사실을 깨달을 만큼 성장했다는 데서 위안을 얻는 거다.
상실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내 삶’을 살아가겠다는 마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본인의 상태를 분명히 자각하고, 상실 이후의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판단한 다음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어보는 거다. 비록 그게 미약한 걸음일지라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조금씩 나아가려는 태도가 결국 더 좋은 삶으로 이끌어주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회복되기도 한다. 회복 과정에서 유대감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 소설을 쓸 때부터 이어져온 생각이 있다. ‘타인을 내 삶의 구원자로 여기면 안 되고, 이와 동시에 혼자 고립되어서도 안 된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는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주인공 곁에 조력자를 두지 않으려고 했는데, 실제 삶을 통해 관계가 지닌 힘을 깨달으면서 소설 속에서도 타인의 중요성이 조금씩 강조되어왔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한 <유령 개 산책하기>의 주인공 역시 이웃과 친구 없이는 지금의 결말에 이를 수 없었을 거다.
띠지에 적힌 ‘반려 슬픔‘이란 표현이 인상 깊다. 슬픔과 더불어 살아가는 건강한 방식은 무엇일까?
슬픈데도 그 감정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슬픔을 인지하지 못해 화를 내고, 냉담해지고, 날 선 행동을 하기도 하지 않나. 그보다는 ‘내가 지금 슬프구나’, ‘저 사람은 슬픈 상태구나’라고 알아봐주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슬픔이 건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게 슬픔과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작가의 말에 “너를 가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을 썼다. 이 질문에 대한 현재의 답이 궁금하다.
가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그와 가장 유사한 것 같긴 한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웃음) 하지만 그런 사랑이 존재할 거란 생각만은 확고하다.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언젠가 누군가를 가없이 사랑하고 싶다는 바람과 의지를 품고, 그 가능성을 믿어보려고 한다.
3년 전 단편 <낙타와 고래>로 김유정작가상을 수상하며 이런 소감을 남겼다. “오래전부터 소설을 무언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당도한 생각이었나?
감정을 일컫는 단어들이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복잡한 내면을 슬픔, 기쁨, 분노 같은 단어로 말해야 할 때마다 나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표현의 한계를 벗어나 내면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내 안의 감정을 전부 글로 옮겨봤다. 그랬더니 그 감정들이 읽는 사람에게 더 선명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더라. 사실 난 독자까지 깊이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던 감정들이 독자의 내면에도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그들이 내 소설을 통해 마음속 감정을 마주하고, 반가워하며 위로받기를 바라게 되었다.
소설을 쓸수록 소설로부터 얻는 것이 있다면?
소설을 쓰는 일은 끊임없이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연습과 같다. 내가 만들어냈지만, 내가 아닌 인물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야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나 자신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작업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감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더라. 그렇게 천천히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임선우 작가가 펼쳐갈 새로운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첫 장편소설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긴 호흡의 작품은 처음이라 오랫동안 겁먹고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재미있더라.(웃음) 개인의 내면을 바라보던 기존의 시야를 조금 더 넓혀두고 써나가는 중이다. 전작과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