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사 김정희를 주제로 한 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와 연계 특별강연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마련했습니다.
- 전시와 특별강연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은 물론, 그와 함께 학문과 예술을 나눴던 벗들과 시대적 관계까지 함께 살피며 한 사람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봅니다.
- 한국의 전통문화가 전시와 공연, 콘텐츠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며,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감각으로 즐기려는 흐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벼루 열 개를 뚫고 붓 천 자루를 닳도록 써 내려간 한 사람의 예술혼.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 최고의 지성, 추사(秋史) 김정희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와 특별강연을 선보입니다.

유배를 예술로 완성한 사람, 추사 김정희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벗이 있으면 우리 인생은 자연스레 살아가집니다. 조선 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예술가, 추사 김정희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몰두할 학문이 있고, 이야기를 논할 지식인과 예술가가 있었죠. 이것은 그를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명문가 경주 김씨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여온 그의 학문적 시야는 24세, 청나라로 사행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크게 트였습니다.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 등 당대 청나라 학계의 거두들과 교류하며 익힌 고증학과 금석학은 조선 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무기가 되었는데요. 실제로 그가 오랫동안 무학대사의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북한산 비석이 실은 신라 진흥왕이 세운 순수비임을 최초로 밝혀낸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학자로서 순탄하게 이름을 알려가던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적 풍파는 그의 삶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병조참판까지 올랐던 그는 당파 싸움에 휩쓸려 제주도에서 8년, 이후 함경도 북청에서 다시 1년, 도합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죠. 흔히 이 시기는 좌절과 상실의 시간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그의 예술은 바로 이 고독 속에서 완성됐습니다. 온갖 서체의 장점을 융합한 독창적인 ‘추사체’가 탄생한 것도, 권력을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제자 이상적의 의리를 기리며 국보 ‘세한도’를 그려낸 것도 모두 유배지에서의 일이었거든요. “70 평생에 열 개의 벼루를 뚫고 천 자루의 붓을 망가뜨렸다”는 그의 말은, 시련이 오히려 예술을 완성시킨 그의 삶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
이렇듯 예술과 벗이 함께한 추사 김정희의 생애를 다룬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가 오는 8월 11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펼쳐집니다. 시(詩)·서(書)·화(畫)와 선(禪) 사상이 하나로 어우러진 명작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지정문화재를 포함한 총 33건 41점의 유물이 전시되는데요. 대개 추사를 다룬 전시가 그의 학문적 성취나 예술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돌립니다. 조선과 청나라의 지인, 학식 높은 승려, 신분을 뛰어넘어 교류했던 중인 지식인과 예술가들. 그의 편지와 글, 그림 속에는 이 이름들이 유독 자주 등장하죠. 정3품 관직에 오르기까지의 삶은 물론 10여 년의 귀양살이와 과천에서의 마지막 시간까지, 학문과 예술만큼이나 그 관계들이 그의 인생을 지탱해왔다는 것을 이 유물들이 보여줍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는데요. 유배지에서도 그의 붓을 놓지 않게 한 힘이 결국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관람객들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홍준 관장이 직접 전하는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
이번 전시와 연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강연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함께 마련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을 가장 쉬운 언어로 풀어내 온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직접 강연에 나서는데요. 유물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인물의 결을, 그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의 육성으로 듣는다는 점에서 이번 강연은 더욱 특별해집니다. 전시장에서 유물로 마주했던 추사 김정희의 세계가, 이번에는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찾아갈 예정이죠.



우리 일상에서 이어지는 한국 전통 열풍!
추사 김정희의 생애에 대한 이번 조명이 유독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최근 한국의 서예와 고미술이 곳곳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박물관 상품 브랜드 ‘뮷즈’는 지난해 매출 413억 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올해 상반기에만 218억 원을 돌파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비롯해 단청과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굿즈들이 2030 세대의 오픈런과 SNS 인증샷을 이끌어내며, 문화유산은 이제 유리 진열장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소장하고 사용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전시 현장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지난 7월 7일 부산박물관에서 개막한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에 전하노니’는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을 역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으며 조선의 기록 정신을 조명했죠. 수백 년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고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이 장면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회자되며, 개막 이후 꾸준히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굿즈로 일상 속에 스며든 전통과, 전시장에서 역사적인 순간으로 새롭게 되살아나는 전통. 그 두 가지 방식이 동시에 사랑받고 있는 지금, 추사 김정희를 향한 이번 조명 역시 그 흐름 안에서 펼쳐내는 새로운 페이지가 될 예정입니다.

유배지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한 사람의 집념이 20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우리 앞에 놓입니다. 벼루 열 개를 뚫고서야 완성됐다는 그 예술이, 이제는 전시실과 강연장이라는 두 개의 문을 통해 동시에 열리는 셈이죠. 유물로 남은 글씨와 그림 곁에 있었던 벗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시 풀어낼 유홍준 관장의 목소리까지. 시련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만의 서체를 벼려낸 한 사람의 생애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