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맨 리펠러(Man Repeller) 블로그를 통해 알레산드라 리치(Alessandra Rich)를 알게 된 후 어떤 브랜드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 중이다. 알레산드라 리치는 나의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이 깃든 쿠튀르적인 디자인에 런더너 특유의 유머러스한 요소를 가미한 아이템을 주로 선보인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형식의 컬렉션을 선보인다고 할 수 있다.
패션과 무관한 분야에 몸담았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패션 디자이너가 됐나? 어릴 때부터 패션에 막연한 환상과 열망이 있었다. 결혼 후 남편의 제안으로 디자인을 시작했는데,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보다 배경 지식이 현저히 부족하니 준비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패션 디자인부터 제작, 세일즈, 마케팅까지 직접 발로 뛰며 배웠고, 결국 알레산드라 리치를 론칭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제대로 된 ‘팀’을 꾸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남편을 비롯한 훌륭한 직원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이번 시즌(2015 F/W)부터 트렌디하고 위트 넘치는 디자인으로 변화를 준 점이 흥미롭다. 그 전엔 이브닝 파티와 웨딩에 어울릴 페미닌한 드레스를 주로 선보여오지 않았나? 이번 가을·겨울 시즌을 기점으로 하우스의 아이덴티티를 새로운 모습으로 재정비하고자 했다. 정교하고 우아한 쿠튀르 룩에 이른바 ‘싸구려’ 느낌이 충만한 디테일을 가미했더니,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결과물이 탄생했다.
레이스와 롱 앤 린 실루엣이 매 시즌 컬렉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수많은 패브릭 중 레이스 소재를 가장 사랑한다. 레이스는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 같은 존재니까. 나는 늘 레이스를 여성의 ‘컴포트 존(comfort zone)’이라 강조해왔다. 롱 앤 린 실루엣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컬렉션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번 시즌과 내년 S/S 컬렉션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 갱스터 무비, 터프하고 독립적인 여성, 1970년대와 80년대의 무드가 이번 시즌 컬렉션을 완성한 주요한 키워드로 작용했다. 반항아 기질이 다분한 70~80년대의 갱스터 걸이라 정의할 수 있다. 내년 봄·여름 컬렉션은 훨씬 재미있는 주제로 탄생했다. 바로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신부’. 레이스와 데님, 실크 셔츠로 유머러스한 로맨티시즘을 완성했다.
평소 어떤 스타일을 즐기는지 궁금하다. 검정 데님 팬츠, 검정 면 티셔츠와 검정 부티! 자타 공인 블랙 마니아다.
당신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패션 아이콘이 있다면? 린드라 메딘, 포피 델레바인, 베로니카 헤일부르너 등 나의 고객이자 친구인 이들에게서 아이디어와 조언을 얻는다. 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 디자인에 주요한 영감을 선사하는 진짜 뮤즈다. 내년 봄·여름 컬렉션 역시 결혼식장을 뛰쳐나온 돌로레스(Dolores)라는 가상의 여성을 테마로 탄생했으니까.
한국에서 알레산드라 리치의 옷은 어디서 만날 수 있나? 청담동 10 꼬르소 꼬모와 레어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