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남긴 명언 ‘Less is more’의 미학을 옷에 빗대어본다면 니트 터틀넥 한 벌엔 그가 말한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평소 간결하고 정제된 스타일을 좋아하는 에디터의 옷장에도 이 말끔한 니트 터틀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유난히 눈에 띄는 목주름을 가리기 위한 역할도 한몫하지만,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터틀넥 디자인이 지닌 중성성과 담백한 멋을 참 좋아한다. 심지어 한 달 전 올린 결혼식 때조차 화이트 터틀넥이 목을 감싸는 극도로(?) 미니멀한 발렌시아가 드레스를 입었으니 터틀넥 마니아를 자처할 만하다.

봄과 여름에 목을 반쯤 덮는 단정한 반니트 터틀넥을 즐겨 입는다면, 가을엔 본격적으로 니트 터틀넥을 유니폼 삼아 매일같이 입는다. 세탁하기 편하고 저렴한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의 무채색 워셔블 니트 터틀넥을 여러 벌 구비하는 것으로 월동 준비를 시작하는 셈. 여기에 사계절 내내 줄기차게 입는 넉넉한 화이트 셔츠를 레이어드하거나, 짙은 생지 데님과 블랙 슬랙스, 발목을 스치는 울 플레어 팬츠, 라이더 재킷과 오버사이즈 모직 코트를 번갈아 입으면 세상에서(?) 제일 간편한 데일리 룩이 완성된다.

 

니트 터틀넥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떤 컬러와 핏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애정을 갖는 건,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블랙 니트 터틀넥이다. 이지적이고 우아한 매력에, 때론 섹시한 분위기까지 동시에 풍기는 팔색조 같은 매력을 지녔으니까. 낡은 리바이스 데님과 뉴발란스 스니커즈에 이세이 미야케의 블랙 니트 터틀넥을 고집했던 스티브 잡스, 시가렛 팬츠에 발레리나 슈즈를 더한 오드리 헵번, 미니스커트와 블랙 타이츠를 세트처럼 입던 에디 세즈윅의 스타일을 떠올려보시라. 때론 모던한 이어링이나 붉은 립스틱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세련된 드레스업이 가능한 기특하고 요긴한 옷이 틀림없다.

오드리 헵번

블랙 니트 터틀넥을 즐겨 입었던 오드리 헵번.

올겨울엔 런웨이에 쏟아진 다채로운 니트 터틀넥이 크게 유행 중이다. 특히 기본형에 디테일을 약간씩 비틀고 꼰 스타일이 눈에 띄는데, 베이식 아이템을 쿨하게 리믹스하는 재주를 지닌 베트멍과 자크뮈스는 소매를 의도적으로 길게 늘어뜨리는가 하면, 세린느는 둥근 종 모양의 소매 장식, 스텔라 매카트니는 얼굴을 감쌀 정도로 벌키한 하이넥, 그리고 알렉산더 왕은 스터드 장식을 추가해 인기몰이에 나섰다. 문득 학창 시절 어머니께서 겨울이면 항상 목이 따뜻해야 몸도 따뜻하다며 교복에도 니트 터틀넥을 챙겨주시던 게 생각난다. 굳이 유행을 언급하지 않아도 목을 포근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니트 터틀넥이 간절히 필요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