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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고슬링이 ‘순정 마초’로 열연한 영화 <드라이브>는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 촘촘한 스토리를 자랑하는 탁월한 작품이다. 에디터 역시 ‘인생 영화’로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인데, 직업병 탓인지 가장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라이언 고슬링이 러닝타임 내내 입고 나온 전갈 자수 장식 스카잔(Sukajan)이다. 서늘하고 잔혹한 그의 캐릭터와 완벽하게 어울린 스카잔 재킷이 최근 들어 다시 생각난 이유는 한층 근사하게 변모한 스카잔이 올봄 런웨이를 뜨겁게 달구었기 때문. 아직 스카잔의 존재가 생소한 이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요코스카 지방에 주둔했던 미군들을 위해 판매한 ‘기념품 재킷’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요코스카의 ‘스카’와 ‘점퍼’의 합성어인 스카잔은 부들부들한 레이온과 실크 소재에 동양적인 자수를 장식한 것이 특징인데, 좋든 나쁘든 일본에서의 기억을 되살리는 기념품으로 이만한 제품도 없었을 것 같다.

존재감 넘치는 스카잔 스타일을 보여준 영화 의 라이언 고슬링.

존재감 넘치는 스카잔 스타일을 보여준 영화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호화로운 자수 재킷은 전통적인 브랜드를 통해 꾸준히 선보였지만, 야쿠자를 비롯한 조직 폭력배들이 입는 무시무시한 옷으로 여겨지며 일반인은 범접하기 어려운 이미지로 남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웬걸, 올 초부터 스카잔의 신분 상승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고상하고 까다로운 파리의 전설적인 패션 하우스를 통해서 말이다. 새로운 움직임은 남성 컬렉션 런웨이에서 일기 시작했는데 루이 비통과 생 로랑, 드리스 반 노튼, 구찌, 돌체 앤 가바나 등 유서 깊은 브랜드가 재킷을 대거 선보이며 스카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막말로 천박해 보이기까지 했던 스카잔이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거쳐 선보이니 이 재킷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건 당연지사. 이러한 흐름에 맞춰 스텔라 매카트니, 클로에, 발렌티노, 토즈 등 여성 컬렉션 역시 스카잔의 매력을 집중 탐구했는데, 우아하고 로맨틱한 스타일은 물론 캐주얼한 룩과 매혹적인 엇박자를 이루는 모습이 가히 놀라울 정도다.

그렇다면 스카잔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 패션계에도 뚜렷하게 적용되는 요즘, 통속적이고 진부한 소재를 새롭게 재조합하는 디자이너들의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스카잔의 근간을 이루는 ‘오리엔탈리즘’ 역시 마찬가지. 미니멀리즘, 1990년대 스트리트 무드, 극적이고 화려한 이탤리언 스타일이 혼재하는 요즘 동서양의 매력이 오묘하게 맞물린 스카잔은 디자이너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명민한 해답이다. 좀 더 쉽게 요약하자면, 스카잔의 매력 포인트는 특유의 이질적인 분위기가 다양한 스타일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는 것. 혜인서와 참스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제안하는 스트리트 캐주얼부터,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의 우아한 룩을 관통하는 스카잔은 요즘 세대가 원하는 매력을 모두 갖춘 ‘쿨함’ 그 자체다.

스트리트 무드가 돋보이는 혜인서의 오버사이즈 재킷.

스트리트 무드가 돋보이는 혜인서의 오버사이즈 재킷.

핑크색 스카잔 재킷을 입은 모델 수주.

핑크색 스카잔 재킷을 입은 모델 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