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잘 말린 화이트 티셔츠 한 장. 그 안으로 머리를 쓱 집어 넣을 때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촉과 냄새, 그리고 그 청결한 기 운을 좋아한다. 새로 산 것이든 오래 입은 것이든 정갈하고 깨끗한 화이트 티셔츠 한 장을 단출하게 즐길 수 있는 건, 이 여름이 주는 특권이자 기쁨! 세 개가 한 세트인 헤인즈와 유니클로의 남성용 티셔츠 중에 제일 작은 사이즈를 골라 싼값에 한 팩을 구입해두면 여름 맞을 채비를 꽤 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

바쁜 아침엔 손에 잡히는 대로 즐겨 입는 데님이나 쇼츠에 더하고, 플립플롭이나 버겐스탁을 신으면 현관을 나서는 발걸음부터 가볍고 상쾌하다. 그런가 하면, 깐깐하게 고른 값비싼 화이트 티셔츠는 멋내기 용으로 그만이다. 순간 지갑을 열기가 꽤 망설여져도 막상 입고 나면, 사르르 떨어지는 남다른 핏과 예민한 디테일에 반하고 마니 이 또한 여름이면 포기할 수 없는 소비임이 분명하다. 또 잘빠진 블랙 슬랙스에 스틸레토 힐을 골라 신고 때론 붉은 립스틱까지 바르면 그간 너무도 필수적이고 평범해서 몰랐던 화이트 티셔츠의 또 다른 진가를 맛본다.

 

화이트 티셔츠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그려지는가? 공식처럼 청바지와 함께 매력적인 청춘의 얼굴들이 연상된다면 이 수수한 티셔츠 한 장이 지닌 멋을 결코 모르지 않는다는 얘기. 매끈하게 빚어 올린 머리에 꼭 맞는 화이트 티셔츠와 리 바이스 데님을 즐겨 입었던 제임스 딘, 크롭트 톱처럼 밑단을 묶어 입곤 했던 제인 버킨의 자유로운 옷차림을 떠올려봐도 좋다. 장식을 배제한 화이트 티셔츠가 어떤 스타일에도 매끄럽게 융화되는 도화지 같은 매력을 지녔다면, 그림이나 슬로건이 더해진 화이트 티셔츠는 자신이 어떤 개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대변한다. 게다가 모처럼 젊은 기분을 내고 싶다면, 짓궂은 레터링이나 화려한 그래픽만 한 것도 없으니까.

 

최근엔 브랜드 로고를 재치 있게 변형한 스트리트풍의 그래픽이나 과감한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한 아방가르드 터치도 여럿 눈에 띄니 스타일에 따라 고르는 묘미도 한껏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에디터는 무얼 골랐느냐고? 네크라인 밴드가 짱짱한 헤인즈의 담백한 ‘베티’ 티셔츠, 양옆이 절개된 자크뮈스 의 비대칭 하이넥 티셔츠, 그리고 <젠틀우먼> 매거진과 선 스펠이 함께 만든 30수 면 소재의 말끔한 화이트 셔츠를 점 찍어뒀다.

누군가에겐 모두 다 비슷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 멋은 한 끗 차이라고 저마다 다 다른 소유와 소비의 이유를 지녔음은 물론이다. 그러니 옷장에 채우고 채워도 모자란 게 있다면 바로 이 화이트 티셔츠 아닐까. 화이트 티셔츠 한 장 입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