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2017 S/S 시즌 발렌시아가 남성복 컬렉션의 비현실적으로 크고 각진 ‘어깨’들을 보면서 나는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바로 1970년대 후반,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포스트 펑크 밴드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 마르고 구부정한 몸집에 퀭한 눈을 부릅뜬 채 기타 하나를 메고 ‘Psycho Killer’를 부르던 데이비드 번은 마치 박스를 뒤집어쓴 듯한 커다란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수트의 모든 비율과 실루엣을 깨버린 듯한 그 전위적인 모습은 2017 S/S 시즌 발렌시아가 캣워크 위의 그것과 흡사했다. <가디언>조차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리포트하며 ‘토킹 헤즈 수트가 캣워크를 평정했다’는 표현을 썼을 정도이니 말이다.

사실 나는 발렌시아가 쇼를 접하기 전 데이비드 번의 전위적인 공연을 볼 때마다 마틴 마르지엘라를 떠올렸었다. 이미 1970년 후반에 저런 모습으로 등장했던 데이비드 번의 음악과 태도는 ‘펑크로 사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그 시절 청춘들에게 실로 거대한 영감이 되었다. 실제로 토킹 헤즈는 포스트 펑크와 뉴웨이브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펑크 키드’ 마틴 마르지엘라와 릭 오웬스가 가장 사랑하는 밴드이며, 앤 드뮐미스터와 라프 시몬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뮤지션이기도 하니까.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를 위해 1970년대 뉴욕 펑크를 끌어들였다면, 고샤 루브친스키는 1990년대 초반 유러피언 펑크를 참고했다. 모든 것이 굳게 닫혀 있던 1990년대 동유럽 청년들의 핏속에도 ‘펑크’는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고샤 컬렉션의 모델들은 그 시절 동유럽의 스킨헤드와 펑크 소년들을 연상시켰는데, 그건 고샤가 보여주고 싶은 ‘포스트 소비에트 유니온(Post-Soviet Union)’ 컬처의 한 단면이자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구찌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일구고 있는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끌고 가는 가장 큰 힘 역시 바로 이 ‘펑크’ 정신이다. 그는 톰포드 시절부터 일정하게 흐르는 구찌의 기름지고 매끈한 무드를 깰 수 있는 건 런던 식의 펑크라고 결정한 듯하다. 실제로 알레산드로는 클래식과 펑크를 넘나드는 영국 문화의 열렬한 신봉자다. 그는 런던 섀빌로의 완벽한 테일러드 수트부터 교복, 카너비 스트리트의 댄디와 빅토리안 스타일, 오리엔탈리즘을 모두 깨고 뒤섞어 펑크라는 틀 안에 쏟아붓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지난 2017 리조트 컬렉션이 끝나고 “이번 컬렉션은 펑크, 빅토리안, 그리고 약간의 기괴함을 더한 고딕의 바다에 다이빙한 듯한 옷들이죠”라고 설명했다.

섬세한 시폰 드레스에 너드 같은 안경, 컬러풀하고 화려한 보석이 달린 코트에 스케이터풍 스니커즈와 등산용 양말의 조합, 고급 가죽 백 위의 서브컬처풍 그래피티…. 그가 만든 구찌를 보면 마르지 않는 샘 같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느낌이 든다. 알레산드로는 구찌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깰 수 있는 모든 것을 깨버린다. 그런 ‘뉴 구찌’의 정신에 많은 저널리스트는 ‘포시 펑크(Posh Punk)’ 혹은 ‘로열 펑크(Royal Punk)’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다.

 

파니에(스커트를 더 풍성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속치마)와 무사들의 갑옷을 극단적으로 해석한 꼼데가르송은 어떤가? 레이 카와쿠보야말로 언제나 ‘펑크의, 펑크를 위한, 펑크에 의한’ 에너지와 상상력으로 패션을 대하는 디자이너다. 그녀의 삶과 태도,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의 기저는 모두 펑크다. 레이 카와쿠보는 이번 컬렉션을 아예 ‘18세기 펑크’로 명명했다. “많은 혁명의 시간이던 18세기의 펑크를 상상했습니다.” 언젠가부터 꼼데가르송의 컬렉션을 보면 그녀가 브랜드의 가장 에센셜한 미학만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문일까? 최근 꼼데가르송의 컬렉션은 점점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펑크로 좁혀지고 있다. 물론 그 농도와 밀도는 더 진하고 깊어졌다. 평생을 펑크로 살아온 거장이 보여주는 전위적이고 위대한 아름다움에 숭고한 느낌마저 든다. 홀로 펑크의 길을 일구고, 그 길을 걷는 구도자처럼 보일 정도다.

 

197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지속된 ‘펑크와 포스트 펑크’의 시대는 오늘날의 젊은 패션 피플에게도 유효하다. 뎀나 바잘리아와 고샤 루브친스키의 뮤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로타 볼코바를 보자. 그녀가 만드는 이미지와 스타일을 보면, 대부분 포스트 펑크와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 심지어 그녀가 어떤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지 눈앞에 그려질 정도다. 로타가 함께한 베트멍과 고샤 루브친스키, 그리고 최근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떠올려보라. 그 안엔 언제나 펑크,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약간의 스트리트 웨어 스타일이 존재한다. 그것은 곧 로타 볼코바의 레퍼런스와 일맥상통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든 감각이 펑크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내겐 언제나 언더그라운드와 비주류(fringe) 감각이 있어요. 그건 늘 펑크의 정신에서 오는 그 무엇이죠.” 로타에게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존의 패션 스타일리스트들과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그녀의 스타일링엔 늘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동경해온 날것의(raw) 펑크 문화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다고 할까?

 

펑크의 시초는 뉴욕이지만, 펑크를 문화로 발전시킨 건 런던 이스트의 아이들이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로 넘어갈 무렵, 런던은 심각한 경제 대공황을 겪었다. 회색 도시 런던의 젊은이들은 속수무책이던 기존 체제와 무력한 제도권에 분노하며 펑크라는 거칠고 순수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 펑크의 밑바탕은 ‘분노(anger)’다. 모든 젊은이가 펑크에 공감했고 전복과 혁명을 원했다. 자연스럽게 이것은 곧 영국 사회에 엄청난 문화적 파장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그건 끝없는 절망 속에 핀 꽃 같은 것이었다. 전설적인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스는 ‘우리는 당신의 쓰레기통 속의 꽃들이다(We are the flowers in your dustbin)’이라는 시적인 노래를 ‘외쳤고’, 비비안 웨스트우드, 말콤 맥라렌, 클래시, 존 새비지, 돈 레츠 같은 당대의 ‘펑크’들이 등장해 패션, 음악, 영화, 사진, 저널 등에 뿌리내리며 엄청난 영감처로 군림했다.

 

얼마 전엔 펑크 음악의 대부 돈 레츠가 최근 BBC에서 펑크와 스킨 헤드, 레게 등에 뿌리를 둔 런던의 서브컬처를 알리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그는 이미 10년 전 <Punk: Attitude>라는 펑크의 끝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는 “펑크를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려고 합니다. 펑크 음악은 단순히 한 장르가 아니에요. 나는 지금까지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왔습니다. ‘펑크 애티튜드’는 절대 돈을 주고 살 수 없어요”라며 펑크의 역할을 설파했다.

그뿐인가? 1978년부터 1987년까지 약 10년간 런던 이스트의 펑크와 스킨헤드들을 기록한 포토그래퍼 데릭 리저스(Derek Ridgers)가 얼마 전 <Punk London 1977>이라는 사진집을 출간하는 등 문화 예술계에도 펑크를 되돌아보는 작업이 한창이다. 펑크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데릭은 펑크는 단순히 패션이나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고 규정한다. “펑크는 기성세대가 만든 기존 체제와 지루한 대중문화에 일침을 가하며 등장했습니다. 엄청난 스킬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펑크의 사고방식이죠. 나는 그것이 매우 훌륭한 태도라고 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사고방식은 아니지만, 사실 그러한 점이 또 펑크답죠.”

 

고샤 루브친스키의 포스트 펑크 무드.

고샤 루브친스키의 포스트 펑크 무드.

펑크를 단순히 모히칸 헤어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식의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는 시대는 지났다. 영민한 디자이너들은 각기 다른 자신의 미학을 바탕으로 펑크의 정신을 승계하는 지적인 방식을 택했다. 토킹 헤즈 수트를 선택하며 포스트 펑크의 태도로 서막을 연 발렌시아가, 1990년대 동유럽 청춘들의 펑크를 리바이벌한 고샤 루브친스키, 브리티시 펑크에 경도되어 ‘로열 펑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구찌, 삶 자체가 펑크인, 이젠 어떤 구도자의 경지에 다다른 레이 카와쿠보가 꼼데가르송의 철학을 다듬어내는 방식…. 나는 디자이너들의 이 모든 시도가 셀러브리티와 대중문화, 상업주의와 소비에 혈안이 된 오늘날의 패션계에 가하는 일침으로 느껴진다. 마치 펑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트렌드가 아니라 ‘태도’이며 ‘정신’인 것이다. 자기 방식대로 해나가겠다는 신념, 하고 싶은 말은 얼마든지 하겠다는 자신감, 현재의 지루한 상태를 깨부수고 싶은 분노. 펑크는 여전히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