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로셔츠가 세상의 빛을 본 건 1926년의 일이다. 당시 르네 라코스테가 고안한 셔츠에 달린 단추 두세 개는 답답한 느낌을 덜어냈고, 빳빳하게 선 칼라는 목을 햇빛에 타지 않게 보호하기에 제격이었다. 테니스 코트나 폴로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능성 의복이었던 것! 게다가 누가 입어도 멋스러워 보이는 클래식한 매력을 지녀 지금껏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폴로셔츠가 브룩스 브라더스의 피케 코튼 셔츠 같은 전통적인 모습만으로 긴 역사를 이어온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이면의 진가가 이번 시즌 제대로 빛을 발했다. 상징적인 칼라와 단추는 그대로 유지하되 신선한 감각을 주입한 폴로셔츠를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 것. 돌체 앤 가바나와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엔 꽤 전형적인 폴로셔츠가 등장했는데, 그 밑에 자카드 미니스커트나 카무플라주 패턴 마이크로 쇼츠를 매치하는 재치가 돋보다.
그런가 하면 프린 바이 손턴 브레가치와 펜티 푸마 바이 리한나 컬렉션은 폴로셔츠에 주름을 잡거나 러플을 장식하는 식으로 스트리트 무드를 가미하는 데 성공했다. 마르코 드 빈센조는 디자이너 특유의 라메니트를 사용한 폴로 드레스를 제안했다. 발목을 덮을 듯한 레인보 컬러 폴로 드레스를 선보인 로지 애술린이나 입체적인 구슬을 장식한 톱을 내세운 메종 마르지엘라 역시 폴로셔츠의 환골탈태에 기꺼이 동참했다.
여기에 지난 5월 공개한 구찌의 2018 년 크루즈 컬렉션까지 생각해보면 폴로셔츠의 활약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풍성한 밍크코트, 화려한 패턴의 스커트에 고급스러운 시폰 블라우스도, 하늘하늘한 실크 셔츠도 아닌 코튼 폴로셔츠를 매치했으니까. 약 90년 전 탄생한 새하얀 폴로셔츠가 오늘날의 훌륭한 패션 캔버스로 거듭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