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누리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생각은 1인 가구 증가라는 사회현상과 맞물려 오늘날 의식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그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혼자서 즐기는 소소한 행복을 겨냥한 TV 프로그램이나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때는 다자녀 가정이 행복의 필요조건이었지만 현재는 핵가족에서 나아가 1인 가구, 성소수자 부부 등 가족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겼다. 앞으로 또 어떤 형태의 가족이 생겨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다양하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패션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늘 기발한 발상으로 대중을 놀라게 하는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근래엔 1인 가구와 더불어 성소수자 부부를 자연스러운 가족의 형태로 인정하는 추세다. 티파니의 광고 캠페인에 등장한 남성 커플의 웨딩 화보는 동성 간의 결혼이 보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또 전위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지난 시즌부터 광고 캠페인 모델로 성소수자들을 거리낌 없이 기용해 컬렉션만큼이나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한편 이번 시즌 또 다른 흥미로운 쇼로 주목받은 토즈 컬렉션에선 모델들이 반려견을 품에 안은 채 런웨이를 걸었다. 디자이너는 강아지를 모티프로 한 액세서리를 강조하기 위해 모델과 반려견을 함께 등장시켰지만 이는 반려동물이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만큼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낯설지 않은 것이다.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미래의 가족을 상상한 디자이너들도 있다. ‘미래의 어느 날(One Day of the Future)’이란 주제로 열린 잰더 주의 2019 S/S 컬렉션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임신부로 분한 남자 모델들이 런웨이에 올랐기 때문. 잰더 주는 이 파격적인 런웨이로 미래에는 성별의 경계가 더 많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발렌시아가의 지난 시즌 남성 컬렉션의 광고 캠페인은 좀 더 우회적인 방법으로 가족의 형태에 대해 말한다. 단란하고 평범한 가정의 모습을 담은 캠페인 화보는 언뜻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 구성원에 빠져서는 안 될 존재로 여겨온 ‘엄마’가 부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진 속 인물 중 누구도 불행하거나 슬퍼 보이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엄마와 아빠, 아이로 이루어져야 완벽한 가족이라는 사고 자체가 비논리적인 건 아닐까 되짚어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영민한 디자이너들은 이 같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자신의 컬렉션에 녹여내 가정의 변화를 시사하지만 아무런 말도 더하지 않았다. 오로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느끼게 할 뿐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의 형태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역할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패션계의 시선은 정해진 틀을 깨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고, 그만큼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