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MARGIELA
팬데믹 이후 컬렉션은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상을 매개체로 새롭게 다가온다.
메종 마르지엘라 역시 오트 쿠튀르인 아티즈널 컬렉션을 올리비에 다앙 감독과 함께 제작한 장편 영상 <A Folk Horror Tale>을 선보였다.
영상 속 룩을 처음 보면 그저 새로운 시도에 집중한 특이하고 독창적인 컬렉션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 어느 컬렉션보다도 과거에 집중한 모습이 역력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는 역사가 깃든 옛 물건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에 대한 동경을 반영하고 싶어 했다.
그 방법으로 원래보다 12배 크게 만든 의상을 ‘비틀어 짜다’라는 뜻을 지닌 에소라주(essorage) 기법으로 옷을 제작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변형된 느낌을 만들어냈다.
또한 안팎을 뒤집은 듯한 재킷과 마감하지 않은 밑단 등 미완성 디테일이 특징인 작품들이 영상을 가득 채웠으며,
버려진 유리병에 효소와 스톤 워싱으로 거친 질감을 더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드레스가 등장하는 부분은 영상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꼽힌다.
익숙한 옷의 형태와 질감에 과학적인 변성을 가해 본연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각인하고자 한 디자이너의 의도는
영상을 통해 효과적이고 참신하게 전달되었다.
JEAN PAUL GAULTIER × SCAI
은퇴 후 매번 새로운 디자이너와 함께 컬렉션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한 장 폴 고티에.
그가 떠난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첫 번째 객원 디자이너로 선정된 주인공은 바로 사카이의 치토세 아베다.
각자 특징이 매우 뚜렷한 두 디자이너가 협업한 결과는?
장 폴 고티에의 대표작인 콘브라 디자인을 접목한 룩,
드레스로 변형한 트렌치코트, 해체주의적 실루엣이 돋보이는 항공 점퍼 등
두 브랜드의 특징을 정확하게 반반 섞은 듯 조화로운 결과물이 탄생했다.
컬렉션을 보면서 어떤 디테일이 어떤 디자이너의 룩과 닮았는지 찾아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ARMANI Privé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벅차오르는 황홀감을 선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가 선택한 컬렉션의 주제는 바로 ‘빛’. 마치 액체처럼 보이는 패브릭의 광휘,
은은한 새틴과 실크의 부드러운 광택을 동원해 컬렉션을 빛으로 가득 채웠다.
우아하게 워킹하는 모델들의 모습은 마치 바람결에 살랑이는 꽃송이처럼 우아하기 그지없었고,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유려한 광택과 빛깔은 후광이 드리운 듯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막 피어난 꽃송이처럼 풍성한 러플과 비즈 장식 등 온갖 디테일을 더해 오트 쿠튀르 요소로 가득 채웠음에도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부분에서 아르마니만의 정통성을 느낄 수 있었다.
패션계의 거장이 선보인 독보적인 우아함과 기술력을 느껴보길.
빛으로 가득한 룩들을 보는 순간만큼은 우울한 현실을 잠시 잊은 채 밝고 따스한 기운이 샘솟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