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RIYA LEL

수프리야 렐레(SUPRIYA LELE)

2년 전 구찌는 시크교도의 상징인 터번을 액세서리로 사용했고, 그로부터 1년 후 꼼데가르송은 2020 F/W 옴므 플러스 컬렉션을 위해 백인 모델에게 콘로 머리 가발을 씌웠다. 두 사건은 즉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여성주의와 인종차별이라는 양대 난제에 허덕이던 패션계는 그제야 문화적 전유 현상에 대한 작고 조용한 논의를 시작했다.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는 주류 문화권에서 상대적으로 비주류에 해당하는 문화권의 문화 요소를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차용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저 쿨해 보인다는 이유로 땋아 내린 드레드 헤어와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머리 장식이 비난받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문화적 전유에 해당한다. 문화를 차용하려는 사람이 그 뒤에 어떤 차별의 역사가 존재하는지, 혹은 그 안에 얼마나 간절한 염원이 담겼는지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션 하우스들은 자정을 위해 다양성 위원회를 꾸리거나 제3세계 혹은 소수민족 출신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논란이라는 위험부담 때문에 포기하기엔 어떤 문화권 안에서 귀하게 다듬어진 전통과 문화가 너무나 매력적이었을 터다. 세계 곳곳에서 뉴욕으로, 파리로 옮겨온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고유성을 경의와 애정을 담아 패션으로 풀어냈고, 하우스의 명예를 되찾는 데 일조했다. 이런 서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권 출신 디자이너를 향한 주목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출신 디자이너 최초로 2019 LVMH 프라이스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테베 마구구나 가나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오직 실력만으로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자리를 거머쥔 버질 아블로의 일화가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각자의 문화적 유산을 알리는 테베 마구구와 버질 아블로 덕분에 하이패션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색채로, 아프리카의 스트리트 문화로 조금이나마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여기, 하이패션의 지평을 더욱 넓혀줄 신예 디자이너들이 있다. 트렌드보다는 문화를, 쿨한 것보다는 고유한 것을 좇는 이들은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가장 우아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ANDREA BROCCA

안드레아 브로카(ANDREA BROCCA)

이탈리아인과 스리랑카인 부모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나 두바이에서 자랐으며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기네스북>에 최연소 쿠튀리에로 기록됐다. 자신이 자라온 다문화 환경에서 받은 영감을 패션으로 풀어내고 있다. 중동에서 자라며 접한 피보나치 수열을 주제로 데뷔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산업용 장갑 공장에서 버려지기 직전의 섬유를 조달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주목받았다. 정체성을 확장하는 도구로 옷을 바라보며, 물려받은 풍부한 유산을 현대적으로 표현한다. www.andreabrocca.co.uk

 

수프리야 렐레 SUPRIYA LELE

수프리야 렐레(SUPRIYA LELE)

지난해 발표한 컬렉션에 개인적인 경험과 유산을 담기 위해 사진가 제이미 혹스워스와 함께 인도의 나르마다(Narmada)강 유역을 여행했다. 이때 발간한 사진집이 패션계에서 화제를 모아 스타덤에 올랐고, 수익금 전액은 여성 청소년의 교육을 돕는 자선단체 ‘걸 라이징(Girl Rising)’ 인도 지부에 기부했다. 주목할 젊은 디자이너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최신 룩은 인도의 전통 옷인 사리의 실루엣과 색감을 닮았다. www.supriyalele.com

 

테오필리오 THEOPHILIO

테오필리오 THEOPHILIO

테오필리오(THEOPHILIO)

자메이칸-아메리칸 디자이너 에드빈 톰슨(Edvin Thompson)이 전개하는 브랜드다. 현재는 뉴욕 브루클린에 기반을 두고 자메이카의 문화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반영한다. 테마를 ‘이민’으로 정하는 등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컬렉션을 선보이며, 자메이카 국기를 구성하는 노랑, 초록, 검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질 좋은 소재에 비해 가격이 적당해 레게로 대표되는 자메이칸 소울을 사랑하는 각국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theophilio.com

 

오렌지 컬처 ORANGE CULTURE

오렌지 컬처 ORANGE CULTURE

오렌지 컬처 ORANGE CULTURE

오렌지 컬처(ORANGE CULTURE)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아데바요 오케 라왈(Adebayo Oke-Lawal)은 열 살 때 디자인을 시작했다. 2011년 나이지리아의 항구도시 라고스섬에서 런웨이를 선보이며 공식 데뷔했다. 오케 라왈은 자신의 레이블을 단순한 패션 브랜드 이상으로 여긴다. 모든 소재는 현지의 직물 제조업체에서 윤리적으로 조달한뒤 라고스 내에서 생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브랜드명의 오렌지는 ‘남성의 색’이라 여겨온 전형적인 색의 반대 지점에 선 색을 의미한다. 그가 표현하는 여성복과 남성복은 전형성을 띠지 않는다. orangeculture.com.ng

 

로버트 운(ROBERT WUN)

런던에 기반을 두지만 홍콩에서 자랐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 때문에 패션계의 오랜 인종차별주의를 없애는 일에 몰두하게 됐다. 2019 S/S 컬렉션을 통해 뮬란과 그를 상징하는 난초를 다룬 이후로 작품에 꾸준히 난초를 녹여낸다. 최근에는 영감의 원천이자 뮤즈인 자신의 할머니가 좋아한 중국 하이난섬의 제비에서 모티프를 얻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www.robertw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