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하이패션 월드에서 친근한 무언가를 찾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옷장에 잠들어 있던 꽃무늬 바지와 1990년대 필수품이던 마마 메이드 손뜨개 니트 같은 것들 말이다. 비록 플로럴 트라우저, 크로셰 니트처럼 어려운 영어 이름을 가진 데다 가격표에 0이 3개쯤 더 붙었다는 차이는 있지만, 이런 아이템은 결국 멀게만 느껴지던 하이패션과 보편적 삶 사이에도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새 시즌 트렌드인 패치워크 기법 역시 그렇다. 청바지의 무릎이 찢어지도록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 해진 애착 인형의 뒤통수를 고사리 손으로 기우던 순간을 소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패치워크의 맛을 가장 잘 살린 예로 끌로에의 쇼피스를 들 수 있다. 규칙성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작은 천 조각은 끌로에의 지난 시즌 컬렉션에 사용했던 것들이다. 가브리엘라 허스트가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재고의 업사이클링을 시도한 결과 탄생한 이 옷은 다소 허름해 보이는(?) 디자인이나 생산과정, 버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한 제작 의도 측면에서 우리가 익히 경험해온 패치워크와 맥을 같이한다. 코치 1941과 디스퀘어드2, 에트로도 주목할 만하다. 코치 1941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빈티지 체크 패턴을 이어 붙였고, 디스퀘어드2는 낡은 듯한 청바지에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작은 패브릭을 덧대 포인트를 주었으며, 에트로는 퀼팅 천을 패치워크해 레트로 분위기를 가미했다. 공개된 룩들은 모두 낙낙한 빈티지 니트 풀오버와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며 스타일링 아이디어까지 제공한다. 우아함만이 하이패션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겠지만, 패치워크는 이런 이유로 꽤 오래 사랑받을 전망이다. 이번 시즌만큼은 새 옷을 사는 대신 버릴 옷을 고르고, 대충 잘라 좋아하는 옷에 덧대보길. ‘다시 씀’과 ‘고쳐 씀’, ‘원하는 대로’야말로 패치워크 기법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