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5월 2일 개인의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규제를 완화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 3개월 만의 일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앞섰지만 길게 가지는 않았다.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금세 당연해졌고, 백신이나 방역 수칙과 같은 비일상적 용어는 다시 낯섦의 영역으로 이적했다. 다른 나라의 상황도 비슷하다. 최근 원숭이두창의 유행으로 국제 정세가 잠시 경직된 걸 제외하면 세상은 대체로 같은 곳을, 정확히는 팬데믹 이전의 삶을 바라보는 중이다.
패션계도 이런 흐름을 따르기로 했다. 이전까지 엄격하게 지키던 가치를 되찾기로 한 거다. 봄여름과 가을겨울 1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정규 컬렉션은 당연한 듯 피지컬 쇼로 전환됐고, 여행과 휴식이라는 일견 사치스러워 보이는 테마 때문에 축소됐던 크루즈 컬렉션도 미감과 영감을 전할 본연의 의무를 지고 바다로, 산으로 떠났다. 해외 컬렉션에 이어 서울패션위크도 지난 2022 F/W 시즌 3년 만에 오프라인 패션쇼를 진행했는데, 그간 충분한 재정비를 마친 덕에 관습적으로 이어오던 라인업을 타파하고 이미지를 쇄신했다.
패션계 내·외부의 시선도 밖으로 향한다. 프레스나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행사와 마케팅은 대부분 체험과 경험, 아웃도어에 방점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표적으로 생 로랑과 다미아니, 예거 르쿨트르는 서울 곳곳에 전시를 열고 관객을 초대해 문화생활에 목말랐던 20~30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반면 액티브 웨어를 근간으로 하는 브랜드는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일례로 국내 브랜드인 클로브와 데이즈데이즈가 각각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테니스장과 L7 홍대 바이 롯데의 수영장에 행사장을 마련했고, 룰루레몬은 서울웨이브 아트센터에서 요가, 러닝, 트레이닝, 크로스핏, 복싱 등 다양한 운동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큰 호응을 얻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한동안 주춤했던 팝업스토어의 오픈 소식도 이어졌다. 발렌티노는 ‘락스터드 펫’ 팝업 이벤트를 통해 반려견과 함께 방문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를, 로에베는 밀라노 가구 박람회인 ‘2022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공개한 예술적인 바구니와 핸드백을 포함해 한국 지승 공예 장인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는 팝업스토어를 꾸렸다. 게임이나 버추얼 세계에 탐닉했던 지난 2년간과는 확연히 다른 장면이다.
트렌드 역시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그동안 실용성에 천착하던 디자이너들은 새 시즌을 레이스와 스팽글, 드레스, 화려한 컬러와 같은 키워드로 장식했다. 이어 유수의 브랜드는 본격화되는 페스티벌 시즌에 발맞춰 다양한 페스티벌 룩을 선보였고, 잠시간 영광을 누리던 라운지웨어는 아웃도어 웨어와 스포츠웨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사회 공헌에 집중하던 하우스들 역시 다시 판타지와 아름다움이라는 하이패션의 문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요소로 흔히 의식주를 꼽는다. 공교롭게도 옷을 뜻하는 의(衣)는 첫자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팬데믹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오면 무력해지고 만다. 생사의 문제 앞에서 패션은 사치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패션은 이런 순간을 종종 마주한다. 2012년과 2020년에 대두한 흑인 인권운동이 그러했고, 얼마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이 그랬다. 그때마다 패션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이미지와 글로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수익금의 일부를 떼어 필요한 곳에 손을 보탬으로써, 그리고 럭셔리가 아닌 보편적 무언가로 존재함으로써.
과거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또 예기치 못한 일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러나 패션은 계속해서 태도와 모습을 바꾸며 적자생존의 법칙에 순응할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일상적 삶이 주어졌을 때, 다시 모두에게 예술적 자극을 주는 상업 예술의 총체로 돌아올 것이다. 언제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