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옷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풀이가 나온다. [옷: 몸을 싸서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하여 피륙 따위로 만들어 입는 물건]. 태초에 이토록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태어난 옷은 시간의 흐름과 필요에 따라 여러 갈래로 해석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계급 사회에서는 신분을 구분 짓는 도구로서, 장인 정신에 기반하는 오트쿠튀르가 각광 받을 때는 예술품으로서, 또 오랜 시간 개성을 표현하는 주된 방식으로서 존재하며. 이렇듯 바쁜(?) 일생을 보내온 패션이 최근 여러 하우스에서 부여 받은 직위는 ‘매개’다. 비유하자면 꽃이 꽃말(flowerlanguage)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 손짓 또는 발짓이 몸짓언어 (bodylanguage)를 통해 의사 표현 기능을 하는 것처럼 디자인철학을 알리는 수단의 의무를 띠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비슷한 사례를 경험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남성의 전유물이던 바지 정장을 여성의 옷으로 해석하며 사회적 제약과 움직임의 제한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일이나, 무정부주의와 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불거진 1970년대 펑크 룩의 유행은 패션에 문외한이라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디자이너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어난 결과론적 예시라면, 요즘의 패션은 패션 랭귀지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언어로 작용한다. 다루는 주제는 대체로 사회문제를 반영하는데, LGBTQ+나 성차별 반대에 관한 테마가 긴 주기를 두고 반복되는 사이사이 흑인 인권 제고나 전쟁 반대, 기아 대책 촉구처럼 시의성 있는 안건이 대두하는 식이다. 지난 시즌 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면, 이번 시즌에는 조금 더 보편적인 삶에서 포착되는 불편과 불합리에 대한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대표적으로 페노엘(FeNoel)은 뉴욕에서 진행된 2023 S/S 쇼 말미에 지폐를 엮어 제작한 드레스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이는 미국 교직원퇴직연금기금(TIAA)과 협력한 것으로, 여성과 남성 간의 퇴직소득(퇴직을 원인으로 일시에 지급받는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retireinequality 캠페인의 일환이다. 이 드레스에 관한 게시물을 해당 해시태그와 함께 포스팅하면 일정 금액이 여성의 재정적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 드레스 포 석세스 (Dress for Success)에 기부된다. TIAA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30% 적은 퇴직소득을 얻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국가 1위 자리를 무려 10년간 지켜온 한국도 쉽게 웃어 넘길 수 없는 문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요한나 파르브(Johanna Parv)는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출퇴근 옷차림이 도시의 생활 패턴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자전거 라이딩과 직장 생활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상황을 모두 수용하는 옷을 만든다. 사이클링 쇼츠와 드레스를 결합한 형태의 룩, 쇼츠의 허리 장식을 펼치면 순식간에 스커트로 변신하는 룩 등은 의미와 기능, 디자인 측면에서 이미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요한나 파르브를 가장 주목할 신예 디자이너라는 스타덤에 올려두었다. 지난 2월 슈프림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트레메인 에모리(Tremaine Emory)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평소 흑인의 역사나 인권을 조명하고, 흑인 유권자의 투표를 독려하며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한 그는 자신의 레이블 노 베이컨시 인(No Vacancy Inn)을 통해 ‘본 캔슬드(Born Cancelled)’ 컬렉션을 론칭했다. 이는 미국에서 발발한 온라인 왕따 행태를 일컫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유저가 물의를 빚었을 때 팔로를 취소하고 모든 지지를 철회하는 행동 양식)를 비판한 것으로, 한 번의 실수로 청소년이 ‘캔슬드’ 될 경우에 생기는 위험성을 시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물론 모든 패션이 대의를 말할 필요는 없다. 매 시즌 풍자와 비판의 메시지를 전해온 뎀나 바잘리아조차 더 이상 쇼 노트라는 형태로 컬렉션을 설명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며, 모든 창작물에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바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고 그게 바로 패션이 해야 할 일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럼에도 군복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 피난길에서처럼 아기를 담요에 싸 안고 불안히 걷는 듯한 연출, 황무지처럼 꾸민 쇼장을 보며 모두가 떠올린 테마는 한 가지로 귀결됐지만) 상품으로서 패션이 지닌 본질적 가치에 힘을 실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지닌 컬렉션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인지하고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누군가 패션이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난할 때 담대한 어조로 공익을 전하는 매개가 된다. 앞서 언급한 사전적 정의(定義)와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정의(正義)가 패션이라는 세계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셈이다. 패션에 무얼 기대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하이패션이 비난의 대상이 필요할 때마다 걷어차도 되는, 한낱 허영심을 채울 무언가에 불과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 끝났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