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
궁중 행사에 쓰이는 향악정재(鄕樂呈才) 중 하나인 학무(鶴舞). 왕가의 경사를 송축하기 위해 학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 고려부터 궁중 의례로 행해왔으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궁중무용이다. 맥이 끊겼다가 1935년 한성준의 창작무용발표회에서 창작무로 선보인 후 1971년 1월 8일 처용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학무도 개별 지정되었다. 이후 1995년에 다시 학무에 학연화대무(鶴蓮花臺舞)를 더해 학연화대합설무가 되었다. 학연화대합설무는 학탈을 쓰고 추는 학무와 연꽃에서 동기가 태어나는 연화대무로 구성되며,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담은 독특한 춤이다.
“봉산탈춤은 늘 새로움과 기분 좋은 긴장감을
안기는 예술입니다. 제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 없이 전통을 이어갈 수 있죠.
생동감 넘치는 탈의 생김새와 좋은 스승님들의
정돈된 춤사위를 보면 봉산탈춤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멋이 느껴집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의
봉산탈춤보존회 전수자 윤원중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鳳山탈춤)
봉산탈춤은 황해도 봉산 지방에서 이어져온 가면극이다. 다른 탈춤에 비해 춤사위가 활발하며 경쾌하고 화려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1967년 6월 17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봉산탈춤보존회가 그 맥을 잇고 있다. 봉산탈춤놀이는 4상좌춤, 8목중춤, 사당춤, 노장춤, 사자춤, 양반춤, 미얄춤 이렇게 총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일부다처제로 인한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지만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궁궐의
웅장한 자태는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고 고유한 멋을 간직한 봉산탈춤이
제게는 그런 존재입니다.
사자춤은 동작이 크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춤입니다.
동작이 크다고 해서 섬세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죠.
놀이를 보는 내내 여러 가지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봉산탈춤의 매력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의
봉산탈춤보존회 전수자 최민기
“갓을 만드는 일은 옛 선조의 기품과
정신을 전달하는 작업입니다.
담백하고 정갈한 미의식을 담은 갓은
겉모양은 단순하지만 섬세한 조직과
드러나지 않는 장식에서 정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선조들의 품격과 전통을 계승하는
사명감으로 작업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박창영
갓을 만드는 박창영 장인은 고향 경북 예천에서 증조부 때부터 1백20년간 4대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60년 넘게 입자장으로 갓일을 해온 그는 현재는 챙을 만드는 양태 작업, 대나무로 모자를 만드는 총모자 작업, 양태와 총모자를 모아 하나로 합치는 과정인 입자 작업을 모두 혼자 하고 있다. 장인의 아들 박형박 또한 아버지가 해온 일을 이어받아 갓일 이수자로 갓 유물 연구 및 복원과 함께 현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완성하고 나면 북에서 나는 소리가 듣기 좋았어요.
준히 만들다 보니 일에 대한 애정과 고집이 생겼고요.
북 만드는 일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삶이 끝나는 날까지 만들어보려 합니다.
작품에 대해 감히 뭐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정성을 다할 뿐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북 메우기) 이정기
북을 만드는 이정기 장인은 1974년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박균석악기연구원에서 처음 북을 만들기 시작했다. 묵묵하게 한길을 걸어온 그는 2012년 11월 20일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북 메우기)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장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들과 함께 더 견고하고 완성도 높은 북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제 조부이자 최초의 국가무형문화재
화장 기능보유자인 황한갑 장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화혜장은 우리 가문의 가업으로 5대째 이어오고 있고,
제 아들이 후계자로 배우는 중입니다.
가문의 숙명 같은 일이죠.
본디 우리 전통 신은 좌우 구분이 없어요.
신을 신으면 자연스럽게 발에 맞춰 발집이 잡힙니다.
발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멋을 낼 수 있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죠.”
국가무형문화재 제116호 화혜장(靴鞋匠) 황해봉
5대에 걸친 화장 가문인 황해봉 장인은 수요가 많이 줄어든 지금도 꾸준히 우리 전통 신을 만들고 있다. 제24회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갖추고 있는 황해봉 장인은 영세한 작업 환경과 불확실한 미래로 생계유지가 힘든 시기에도 전통을 계승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일을 계속해왔다. 황해봉 장인은 신목이 없는 고무신 형태인 혜(鞋)는 물론, 흑목화와 백목화까지 제작해 모든 전통 신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능보유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Ganggangsullae)
강강술래는 1966년 2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전남 해안 지방의 부녀자들이 집단으로 노래하며 춤추는 민속놀이다. 주로 음력 8월 한가위에 행하며 밝은 보름달이 뜬 밤에 마을 여인들이 모여 손을 맞잡고 원을 만들어 돌며 노래한다. 한가위를 제외하고 농촌의 젊은 여성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밤에 외출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 여인들은 이 놀이를 통해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2009년 9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彩箱匠) 서신정
채상장 명예보유자인 부친 서한규 장인의 대를 이어 채상을 만드는 서신정 장인. 채상(彩箱)이란 대나무를 실처럼 얇고 가늘게 쪼갠 뒤 색을 입혀 짠 상자다. 섬세한 기술과 힘이 모두 필요한 채상 작업은 서신정 장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장인은 뛰어난 손재주와 열정으로 50여 가지 옛 문양을 복원하고 개발했다. 근대 이후 색의 종류를 다섯 가지로 늘려 전통 색인 오방색을 사용했으며 베개, 소쿠리, 부채 등으로 한정적이던 제품도 핸드백, 브로치, 피크닉 바구니, 도시락 등 시대를 반영해 종류를 늘렸다. 현재 서신정 장인은 남편 김영관 장인, 아들 김승우 이수자와 함께 채상 만드는 길을 걷고 있다.
“일회성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전통음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국악기는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도구입니다.
전통음악을 위해 노력하는 음악가들의
동반자이자 소통의 창구죠.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을 위해
악기를 만드는 일은 제 사명입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최고의 재료를 구하고
전통악기를 만드는 일에
모든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어요.
이와 동시에 과거의 유물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연구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작업하죠.”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고흥곤
고흥곤 장인은 가야금, 거문고, 해금, 박 등 국악기를 만든다. 1985년 사라져가는 정악가야금 복원에 성공한 고흥곤 장인은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7년 46세의 이른 나이에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기능보유자가 되었으며, 자연에서 나는 재료만을 고집해 우리 국악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扇子匠) 김동식
부채의 쓰임이 줄어든 시대지만 선자장 김동식 장인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합죽선을 만든다. 현재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선자장인 김동식 장인은 수려하고 견고한 공예품인 전통 부채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2년에는 <발베니 메이커스 전시>에서 위스키 브랜드 발베니와 함께 오크 향을 담은 합죽선을 선보이며 한국적 아름다움과 전통을 계승하는 장인정신의 가치를 알렸다.
가야금은 가야 시대부터 유래되어 양반들이 사용하던 악기다. 조선 말기부터는 평민들이 연주하던 악기로 기존에 사용하던 것보다 작게 만들어졌다. 가야금은 한자화된 명칭이고, 옛 문헌의 한글 표기는 언제나 ‘가얏고’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