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욱 표현하고 최대한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누리는 방법에 대한 영감을 주는 것이 목표다.”
2024 S/S 파리 맨즈 패션위크의 마지막 순서로 쇼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에디터도 현장에서 당신의 컬렉션을 직관했다. 올해 파리의 6월이 유독 더웠는데, 고풍스러운 야외 쇼장에서 불던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국립 고문서 박물관을 쇼 베뉴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몇 년 전 여름 생 폴 드 방스(Saint-Paul-de-Vence)의 라 콜롱브 도르(La Colombe d’Or)라는 호텔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이번 컬렉션의 주제인 ‘한여름의 사랑’을 표현하는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했기에 파리에서 비슷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자연과 조화로운 베이지 톤의 건축물, 하늘의 푸른색이 어우러진 쇼를 보여주고 싶었다. 국립 고문서 박물관 야외에서 컬렉션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마법 같은 장소라 생각했다. 또 최대한 많은 인원을 쇼에 초대하고 싶었다. 컬렉션 쇼는 보통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관람이 허용되는데, 공개된 장소에서 쇼를 진행해 나와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다. 쇼 시작 한 시간 전쯤 SNS에 베뉴를 공개해 관람을 원하는 누구든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
당신을 직접 목도한 순간 검게 칠한 손톱 모양이 가장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당신처럼 세로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손톱을 가진 사람이 재주가 많다고 여기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당신은 재주가 많은 사람이지 않은가.(웃음) 고맙다.(웃음) 누구나 각자 가진 재주가 있다. 그 재능은 본인이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재능을 발견했다면 그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패션에 대한 열정과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학 입학시험까지는 일반적인 교육을 받기를 원했지만 나는 공부 이외의 좋아하는 것들을 고집했다. 패션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미술과 봉제 수업을 받았고,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블랙 드레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패션은 언제나 나의 꿈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재능 있는 디자이너라는 건 아니지만(웃음),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자아를 표현하는 이를 보고 누군가는 그들만의 꿈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관능미는 당신의 브랜드를 관통하는 주된 미학이다. 이번 컬렉션의 메인 테마는 욕망을 뜻하는 ‘Lust’였다. 쇼를 준비하며 특히 영감을 얻은 것이 있나? 한 여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마치 꿈같은 사랑. 여름 해변가에서 이루어지는 찰나의 만남, 낯선 이에게 느끼는 끌림과 열망 같은 것들…. 일시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프랑스 영화들이 이번 컬렉션에 큰 영감을 주었다. 쇼가 시작할 때 나온 음악도 영화 <영 앤 뷰티풀(Jeune et Jolie)>의 삽입곡이다.
컬렉션을 보며 구속구가 연상되는 액세서리가 특히 눈에 띄었다. 뉴욕의 아티스트 디에고 비야레알 바구헬리(Diego Villarreal Vagujhelyi)와 협업해 제작했다고 들었는데, 이 오브제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여름 해변가에서 만난 낯선 이에 대한 이끌림, 그 후 이루어진 서로의 터치와 흔적을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남은 지문 등의 디테일도 볼 수 있다. 디에고는 몇 년 전 알게 되었는데 우리는 서로의 팬이었고, 그가 우리 브랜드의 캠페인 모델이 되거나 직접 사진을 찍어주는 등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해왔다. 그는 바구헬리(Vagujhelyi)라는 매우 독창적인 디자인의 스포츠 기구를 선보이는 브랜드를 운영하는데, 그 제품을 쇼에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던 중 문득 그가 나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고 아이디어가 있다고 제안해 운명처럼 이번 협업이 성사됐다.
런웨이를 마치고 꼿꼿이 서 있는 모델들 사이에서 등장한 당신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웅장함이 느껴졌달까.(웃음) 당시 입고 있던 홀터넥 톱과 팬츠도 이번 시즌 컬렉션의 일부일 듯한데, 언제나 스스로를 모델로 활용하는 것 같다. 컬렉션을 준비하는 동안 아름다운 모델들과 궁극의 미를 좇는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건 쿨하지 않지 않나.(웃음) 피날레에 등장하는 옷은 그 시즌의 메인 룩이기 마련이다. 나는 그 순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즐긴다. 디자이너가 쇼의 마지막에 전혀 상관없는 옷을 입고 나타나면 모델들, 그리고 전반적인 쇼 구성과 간극이 생기는 것 같다. 나도 이 집단에 다른 이들과 함께 속해 있다는 것, 디자이너도 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이 발망에 근무하던 시절 상사이던 올리비에 루스탱은 물론, 릭 오웬스와 그의 뮤즈 타이론 딜런 서스맨, 그리고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니얼 로즈베리까지. 모두 이번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목격한 인물이다. 이 어마어마한 패션계의 거물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 올리비에는 항상 나를 지지해 주는 인물이다. 릭, 타이론과 맺은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몇 년 전 타이론이 우리 쇼에 오고 싶어 릭에게 이야기했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 후 팔레 루아얄에서 콜라보레이션 전시를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타이런을 위한 패션쇼 작업도 했다. 릭은 내 롤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레이블을 독립적으로 성공시키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방식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대니얼은 파티에서 만났는데, 그는 별자리가 나와 같은 처녀자리고 완벽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어 빠르게 가까워졌다. 대니얼은 동시대 가장 뛰어난 쿠튀리에 중 한 명이며 나는 그의 작업에 항상 감탄한다. 여담이지만 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처녀자리다. 우리는 완벽에 미쳐 있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올리비에도 처녀자리다! 릭의 별자리는 잘 모르겠다.(웃음)
이번 컬렉션을 마친 소감에 유독 ‘꿈같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벌써 6년째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데 여전히 모든 것에 감사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물론이다. 컬렉션 현장은 준비 기간인 6개월간의 감정이 클라이맥스에 달하는 지점이다. 내가 어릴 적부터 키워온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사한다. 이번 쇼는 나에게 유독 특별했다. 6년밖에 안 된 작은 브랜드라는 한계를 딛고 1백 년 이상 된 하우스 브랜드 수준의 성공적인 쇼를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뒤에는 여러 해 동안 같이 일해온 팀원들이 있다. 무언가를 구상할 때 나를 믿어주고 같이 꿈꿔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매우 감동적인 일이다. 이번 시즌은 나에게 또 다른 시작이었는데 관중이 무엇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중점적으로 지켜봤다. 브랜드를 넓은 범위의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해 웨어러블한 아이템도 전보다 많이 선보였다.
당신의 인스피레이션 보드에는 어떤 이미지들이 있나? 앞서 말했지만 이번 컬렉션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현재는 <서머 드레스(une robed’éte)>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스위밍 풀(Swimming Pool)>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영 앤 뷰티풀(Jeune et Jolie)> <호수의 이방인(L’inconnu du Lac)> 등 영화 관련 이미지가 많다. 내 휴대폰에는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나 직접 찍은 스크린 숏 등 수만 장의 사진이 있다. 항상 방대한 양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매 시즌 디자인을 시작할 때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그것이 다시 영감을 줄 수 있는지 사진첩부터 확인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신의 일상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이번 휴가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LGBTQ 퍼레이드를 위해 베를린에 가는 것 외에 별다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한국에 방문할 예정은 없나? 너무 가보고 싶다. 무척 흥미로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가게 되면 연락하겠다.(웃음)
당신이 처음 패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만 해도 대중에게 젠더 플루이드는 낯선 개념이었다. 현재는 다수의 디자이너가 젠더 플루이드 패션을 지향하고 있다. 그 시발점이 된 인물로서 어떤 소명감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알아주니 기쁘다.(웃음) 내가 처음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 젠더 플루이드는 흔한 개념이 아니었다. 이 트렌드를 이끄는 인물로 나를 주목하는 것은 기쁘지만, 이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에게 젠더 플루이드는 트렌드가 아니라 나 자신이며 자연스러운 태도다. 하지만 더 많은 물결(fluid)이 생기는 건 중요하다 생각한다. 젠더 플루이드가 누군가에게는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이 물결에 참여해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그로 인해 젠더 플루이드가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루도빅 드 생 세르넹에서 가장 중점적인 관념은 ‘자유’다. 세상은 표현에서 자유의 문을 열어주는 것 같다가 동시에 굳건히 닫기도 한다. ‘어떻게 스스로를 내보이고 자유를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답을 주고 싶다. 나를 더욱 표현하고 최대한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누리는 방법에 대한 영감을 주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