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분에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려 한다.

이 신념에 부합하는 결과물만 세상에 내놓는다.

그런 외골수 같은 면이 사람들을

지용킴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인 것 같다.”

 

<마리끌레르> 코리아와 두 번째 만남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첫 번째 인터뷰를 진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6개월이 지났더라. 꽤 바쁘게 지냈다. 두 번의 전시를 진행하고 2024 S/S 컬렉션을 발표했다. 2024 S/S 맨즈 패션위크 기간에는 파리에서 수주회도 열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 커렌트부터 킨포크 도산,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 이어 최근 스페이스 이수에서 네 번째 전시를 열었다. 오프라인 쇼는 열지 않고 지속적인 전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은 디테일들,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말로 직접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용킴은 대부분의 옷을 태양 빛을 활용해 염색한 선 블리치 원단으로 제작한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뿐인 옷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 이런 특징 덕분에 한 바이어는 우리 옷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옷’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옷은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 팔기도, 좋아하게 만들기도 쉽다더라.(웃음)

자세한 설명 때문일까, 지용킴의 전시장에 방문할 때마다 굉장히 친절한 브랜드라는 느낌이 들었다. 알아주니 고맙다. 재밌는 점은 예술 관계자나 순수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우리 전시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지용킴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방문하지만, 의류 브랜드 전시에 옷을 보기보다 그저 전시를 즐기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나.

전시마다 매번 선보이는 패브릭 아트워크를 보며 감탄한다. 이 아트워크를 활용하면 대단한 컬렉션 베뉴가 완성될 듯한데, 앞으로도 오프라인 쇼를 진행할 예정은 없나? 좋은 기회가 있으면 물론 진행하고 싶다. 전시회보다 우리 브랜드를 잘 대변하는 형태가 없다고 생각할 뿐, 오프라인 쇼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은 아니다. 옷은 어쩔 수 없이 상업성을 띠는 물건이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이 가능한 아트워크에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것 같다.

전 세계의 소위 힙한 편집숍에는 전부 입점했다. 그중 도쿄의 편집숍 GR8의 프로젝트 매니저 요시와 각별한 관계인 듯 보인다. 그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현재 지용킴은 전 세계 스무 곳이 넘는 편집숍에 입점해 있다. 이 중 가장 특별한 편집숍을 꼽으라면 단연 GR8이다. 요시와 이어온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학창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코로나19가 만연한 시기에 졸업 작품을 발표했다. 원단 시장도 문을 열지 않아서 그동안 모아둔 빈티지 원단과 단추를 활용해 옷을 제작했다. 그런데 요시가 그 작품을 주문하고 싶다며 내게 연락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옷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인가 싶어 무엇이 사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전부 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웃음) GR8에 내 졸업 작품을 전부 바잉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열심히 소재를 찾고, 빈티지 패브릭 딜러들에게 수소문해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해 납품했다. 귀한 원단인 만큼 가격도 상당했는데 놀랍게도 발매한 날 70%가량이 품절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이 브랜드 지용킴의 시작이었다. 원래 브랜드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GR8은 우리 역사를 함께 썼다.

스페이스 이수에서 선보인 아트워크.

김지용의 인스피레이션 보드 이미지.

 

매 시즌 밝히는 영감의 원천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래된 가게에서 구한, 자연스럽게 선 블리치 된 마네킹이 인상적이다. 언제나 확실한 영감의 대상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졸업한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학교다. 그 점이 참 좋았다. 예를 들어 베이식한 화이트 셔츠라도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이 완벽하고 재밌으면 완전히 다른 옷이 된다. 사실 앞서 ‘친절한 브랜드’라는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내 포트폴리오에 대해 항상 ‘친절한 포트폴리오’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절한 포트폴리오란 확실한 주제가 있고, 결과가 도출되는 일련의 과정이 명확히 담겨 있는 것이다. 글씨 하나 없어도 이미지만으로 어떤 주제를 추구하는지 명징하게 드러나는 포트폴리오. 친절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항상 나의 지향점이다. 지용킴 전시의 설명을 들을 때 느껴지는 ‘친절함’도 같은 맥락이다. 이 과정에서 진정성과 독창성(originality)이 생성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선보인 2024 S/S 컬렉션의 컨셉트는 무엇인가? 매 시즌 별도의 컨셉트를 발표하지는 않는다. 전시 제목도 진행한 날짜로 정한다. 한 시즌의 컬렉션은 그저 나와 팀원들의 영감과 취향으로 도출한 결과물일 뿐, 단어 하나로 주제를 국한하고 싶진 않다.

태양 빛을 활용해 옷감을 염색하는 선 블리치 기법을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선보이고 있다. 그만큼 볕의 질이 중요할 듯한데 작업은 어디에서 진행하나? 작업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영업 비밀이다.(웃음)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안전한 곳에서 진행한다. 한국이라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언급했듯이 볕의 질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름에 최대한 많이 작업해두려 한다. 원단을 선 블리치 한 후 옷을 만들기도 하고, 옷을 만들고 선 블리치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선 블리치를 거치지 않은 피스도 늘리려 하고 있다.

선 블리치를 거친 지용킴의 옷은 말 그대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이다. 팔기 아쉬운 옷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학창 시절에 꿈을 말할 때면 늘 내 브랜드를 만들거나 빈티지 숍 사장님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근데 빈티지 숍을 운영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았다. 어렵게 구한 아이템을 과연 팔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옷 욕심이 장난 아니다.(웃음) GR8에 졸업 작품을 납품할 때 어렵게 원단을 구해 다시 제작한 이유도 내 첫 아카이브를 간직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지용킴의 제품은 당연히 내 취향이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에 대부분 팔기 어렵다. 최근에는 팀원들이 내 것을 맨 마지막에 챙겨준다. 좋은 옷은 숍에 먼저 보낸다.(웃음)

한 벌밖에 없는 옷이니 편집숍에 보내는 지용킴만의 기준이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온라인 숍은 교환이나 환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사진과 비슷한 옷을, 오프라인 숍은 행어에 걸었을 때 같은 제품군이라도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다양한 피스를 보낸다. 숍의 특성도 고려한다. 미스터 포터에는 정적이거나 무난한 스타일을, 도버 스트리트 마켓이나 GR8에는 재미있고 특이한 스타일을 선별해 보낸다. 꽤 즐거운 작업이다.

지용킴의 2024 S/S 컬렉션.

지용킴의 2024 S/S 컬렉션.

지용킴의 2024 S/S 컬렉션.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하는 시기에 르메르, 루이 비통,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등 거대 하우스 브랜드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때 쌓은 경험이 브랜드를 경영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대형 브랜드여서 무언가 배웠다기보다는 패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하나의 볼트처럼 속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줄곧 디자인만 배웠기 때문에 막연히 디자인을 잘하면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좋은 디자이너가 되면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브랜드를 론칭한 후 나는 디자이너로만 존재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디렉터가 된 셈이어서 팀원들을 대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는데, 브랜드에 소속돼보니 내가 직원으로 일할 때 느낀 불만 등을 고려하게 되고, 그때 모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야를 키운 것 같다.

하우스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나? 될 수만 있다면 물론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으니 된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환기가 필요할 때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다. 자연에 누워 햇볕을 쬐면서 커피를 마신다.

요즘 가장 흥미를 느끼는 건 무엇인가? 재미없는 답변이지만(웃음) 역사가 있는 물건, 옷과 가구 같은 것이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조금만 힌트를 줄 수 있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브랜드와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 철학은 무엇인가?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는 강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앞에서도 말했듯 진정성과 독창성이다. 모든 부분에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려 한다. 이 신념에 부합하는 결과물만 세상에 내놓는다.

그런 외골수 같은 면이 사람들을 지용킴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인 것 같다.(웃음)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지용킴은 무엇이 될까? 새로운 장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