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은 2001년부터 조 카사베츠, 아녜스 바르다 등 저명한 여성 감독들이 참여한 단편영화 시리즈다.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 소감이 어땠나? 오래전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미우미우의 단편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쓴 적도 있는데, 그로부터 2년 뒤 실제로 함께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여성 감독들과 나란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은 여성 감독들의 독창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21세기의 여성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 해당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좁혀갔나? 나는 언제나 정치나 사회적 문제보다 인물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특정 인물에 닻을 내리고 계속 파고들며 질문하다 보면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이 발 붙이고 사는 현실에서부터 스토리를 발전시키다 보니 해당 주제가 자연스럽게 다뤄진 것 같다.
당신의 작품 <스테인>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냈나? 주인공 ‘스테인’은 크로아티아 이민자로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건설사를 설립한 아버지에게 가업을 물려받아 뉴욕의 한 공사 현장을 책임지게 된다. 영화는 취임식 당일에 그녀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믿었던 가족의 배신을 목도한 스테인은 분노와 절망으로 괴로워하지만 끝내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작품의 출발점이 된 아이디어가 있나? ‘권력’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요즘 들어 “여성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어야 한다(We need to put women in power)”는 말을 자주 하지 않나. 하지만 그 말은 권력 을 부여하는 존재가 따로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 굉장히 모순적이라 느낀다. 누군가에 의해 힘이 주어진다는 건 그만큼 쉽게 빼앗길 수 있음을 의미하고, <스테인>에서 그 지점을 다뤄보려 했다.
<스테인>의 스토리를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여성 인물의 특성과 줄거리에 대해 설명해주기 바란다. 남성 중심적 환경에서 살아가는 강인한 성격의 여성 캐릭터를 먼저 떠올렸다. 여기에는 내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는데, 나 역시 뉴욕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을 설정했다.
작품에 영감을 준 인물이 있나? 늘 주변의 실존 인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이다. 스테인이라는 인물은 동명의 현조할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놀라울 만큼 강한 여성이었던 그분의 삶이 이 캐릭터를 떠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우미우의 2023 F/W 컬렉션을 영화 의상으로 활용했다. 플롯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미우미우의 컬렉션을 어떤 방식으로 도입했나? 작품 구상에 앞서 미우미우의 해당 시즌 컬렉션 쇼를 감상했는데, 소재가 주는 느낌이 스테인의 강하고 거침없는 면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느꼈다. 마치 갑옷 같은 묵직함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시어한 소재가 주는 연약하고 관능적인 분위기가 공존하기에 더욱 그랬다. 취임식 당일 스테인이 입은 미우미우의 노란색 드레스는 언뜻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그녀의 연약한 상태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후반부에서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큰 액션이 더해지자 스테인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강력한 도구로 단숨에 변했다.
여성 인물을 영화에 그려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강하거나 세심하거나 창의적인 캐릭터를 담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연약하거나 폭력적이거나 관능적인 여성의 면을 그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최근 들어 여성의 관능에 대해 다루는 영화가 줄고 있다고 느끼는데, 내가 생각하는 여성이란 존재는 관능적인 동시에 강한 존재이기에 이를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다.
극 중 스테인의 아들로 등장하는 아역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톰 루시아닷은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인간의 감정이 지닌 역동성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감정이입에 특히 뛰어났다.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태도와 더불어 순간적으로 내뿜는 힘도 함께 가진 배우였다.
영화는 스테인이 아들과 함께 크레인을 조종하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스테인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이 장면에 아들을 함께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 극 중 아들은 유일하게 스테인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존재다. 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흐름에는 여성과 남성, 모든 세대가 기꺼이 초대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미우미우라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은 어땠나? 미우미우의 대담한 행보에 동참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그들은 감독으로서 내가 이야기의 방향성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싶은지 경청했고, 여러 관점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