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 브랜드가 컨슈머들에게 바치는 가장 열렬한 구애의 형태는 다름 아닌 ‘협업’이 아닐까. 브랜드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매력적으로 가꾸기 위해 더 신선한 자극을 안겨줄 협업 상대를 물색한다. 이 과정은 마치 흥미로운 마리아주를 보는 듯하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또 다른 것임을 알려주는 특별한 관계의 성립처럼 말이다. K-콘텐츠와 K-아티스트가 가장 뜨거운 흐름이 된 최근 몇 년간 몇몇 브랜드는 스타일리스트 정윤기를 발견하고 러브콜을 보냈다. 협업 세계에서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은, 준비된 이름이다. 그 발견의 진가는 이미 앞서 이어진 협업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다만 현대 패션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협업 러시’는 낯익은 동시에 낯선 새로움을 안겨주는 것, 다시 말해 익히 알고 있는 브랜드의 시그니처 코드를 어떻게 신선한 미감으로 재해석해낼지에 대해 매번 되묻는다. 그런 면에서 그가 브랜드와 나, 그 두 개의 방을 오가며 이룬 협업의 결과물은 서로를 존중하는 동시에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는 약속을 시현한다. 수많은 협업 프로젝트를 이미 진행 중이라고 귀띔하는 그가 앞으로 선보일 편안한 트위스트를 기대하게 하면서.
INTERVIEW WITH
YK JEONG
글로벌 브랜드와 지속적으로 협업 컬렉션을 선보이는 점이 놀랍다. 팬데믹 직전인 지난 2020년 초에 지미추와의 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때가 떠오른다. 엔데믹 시대를 맞이한 2023년, 이번 협업 대상은 발렉스트라다. 디자인에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 다시 협업 이슈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매우 기쁘다.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인 발렉스트라 고유의 미니멀하고 우아한 매력에 나의 아이디어를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발렉스트라 아이코닉 라인에 내가 좋아하는 색감과 ‘YK JEONG’을 떠올리게 하는 곰돌이 캐릭터를 입혔다. 물론 브랜드의 미감을 보여주는 디자인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했다. 지미추와 함께한 지난 협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애시드한 네온 컬러를 더해 영하고 스트리트적인 무드를 드러냈다. 그 반면 발렉스트라와 협업한 이번 제품에는 톤 다운된 차분한 분위기의 컬러군을 적용해 보다 우아하고 모던한 동시에 남녀 모두를 겨냥한 백을 선보인다.
지난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직접 발렉스트라 팀과 미팅을 했다고 들었다. 그 준비 과정은 어떠했나? 그렇다. 약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번 협업을 준비했고, 지난가을 패션위크 기간에 밀라노에 가서 발렉스트라 디자인 팀과 만났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 협업이 확정된 이후 올해 2월까지 지속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수차례에 걸친 논의를 통해 미니멀하고 클래식한 발렉스트라의 아이코닉 라인을 신선하게 재해석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곰돌이 캐릭터를 더해 마침내 콜라보레이션 캡슐 라인을 완성했다.
브랜드와 협업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스타일리스트 정윤기가 추구하는 온전한 협업의 조건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기 바란다. 협업은 나만 마음에 든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협업 상대는 물론이고 소비자까지, 모두가 인정하는 디자인이어야 협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선적으로 브랜드의 ‘아이코닉 디자인’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즐겨 하는 ‘컬러 믹스’를 통해 모노톤에 컬러풀한 요소를 더한다. 해당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고려해 컬러 팔레트를 구상하는 것은 기본이다. 마지막으로 ‘젠더 플루이드’를 들 수 있는데, 오늘날 특히 패션에서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링이 중요한 만큼 남녀 모두 즐길 수 있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가 늘 집중해온 ‘컬러 팔레트’를 이번 협업에 활용한 방식이 궁금하다. 늘 집중하는 컬러군은 오렌지와 그린, 블루와 옐로 등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미추와 협업할 때는 이러한 컬러군을 짜릿하게 채도를 높인 선명한 네온 컬러로 재해석해 지미추의 힐과 스니커즈에 적용했다. 그 반면 이번 발렉스트라와의 협업 아이템은 오렌지와 그린 계열이라는 두 가지 색감에 집중했다. 그리고 채도를 낮춘 차분한 색감으로 브랜드 고유의 클래식한 품격을 더하려 했다. 전주나 경주처럼 전통이 깃든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미감을 담아 무채색의 캐주얼 혹은 포멀 스타일에 두루 어울리며 룩에 악센트를 줄 수 있는 색감을 고려한 것. 특히 이번에 사용한 카키 그린은 차분하게 생기를 더해주는 매력적인 색감인데, 발렉스트라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살린 지갑과 백 등에 고루 적용했다.
색감에 대한 탐구에서 협업 컬렉션의 아름다움을 찾아낸다고 했는데, 평소 색감을 익히는 방식이 흥미롭다. 색감에 대한 아이디어나 영감은 어떻게 얻나? 모두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다. 샐러드 재료를 예로 든다면, 비트와 당근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연보라색 셔츠와 오렌지색 에르메스 트윌리 스카프의 조합을 떠올리는 식이다. 또 일상에서 아름답고 흥미로운 대상을 보면 사진을 많이 찍어두는 편이다. 특히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익숙하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상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모아둔 방대한 사진들을 살펴보며 실제 스타일링에 참고하는 것이다.
앞으로 진행할 협업 프로젝트가 많은 것으로 안다. 또 다른 새로운 브랜드와 어떠한 매력적인 협업을 선보일 예정인지, <마리끌레르> 독자들에게 특별히 소개해주기 바란다. 아쉽게도 엠바고 때문에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지만, 그중 하나는 내가 가장 애정을 기울이는 온라인 커머스와의 협업이다. 그동안 협업해온 브랜드들… 이를테면 발렉스트라를 비롯해 토즈, 리바이스, 지미추, 젠틀몬스터 등과 다시금 새로운 큐레이션을 보여줄 수도 있는 기회다. 또 새로운 컬렉션을 전에 없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설렌다. 그때도 마리끌레르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K-브랜드와의 협업도 기꺼이 즐겁게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협업했거나 협업 중인 K-브랜드와 탄생시킨 스페셜 아이템은 무엇이었나? 분더샵 론칭을 기념해 진행한 백 컬렉션과 젠틀몬스터와 함께한 아이웨어 컬렉션, 그리고 SK텔레콤과 함께한 스타 컬렉션 폰 케이스 등이 있다. 언젠가 잉크의 이혜미 디자이너와도 협업해보고 싶다.
쟁쟁한 국내외 브랜드와 ‘협업’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며 어떤 영감과 즐거움을 얻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협업 프로젝트는 가슴 뛰게 하는 일이자 열정적으로 일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오늘날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K-패션을 대표한다는 자부심도 들고, 무엇보다 나만의 컬렉션을 선보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향후 5년간 계획된 협업 프로젝트의 청사진이 궁금하다.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연이어 시도할 계획이다. 의류나 가방, 슈즈뿐 아니라 앞으로 주얼리나 뷰티 영역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또 어떤 재밌는 프로젝트가 펼쳐질지 벌써 기대된다. 이 밖에도 스타일리스트로서 많은 셀러브리티와 협업한 작품도 공개할 예정이니 기대해주기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YK JEONG’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발한 협업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당신이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타이틀은 무엇인가? 언제나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일 뿐이다. 크리에이티브나 비주얼 디렉터 등 매력적인 타이틀이 많이 생겨난 시대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다. ‘스타일리스트’는 패션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내 생애 커리어의 첫 타이틀이자 영원한 타이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