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두지 않고 자신의 영역과 비전을 확장해나가는 아이콘.
작지만 원대하고 경이로운 아이유라는 세계.
최근 티저가 공개된 ‘Shh..’ 뮤직비디오에 탕웨이가 출연했어요. 감독은 황수아, 피처링은 조원선, 혜인이 참여했고요. 이 화려한 면면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황수아 감독님은 제가 10대 때부터 함께 작업해왔어요. 저를 깊이 이해하시죠. 30대가 되어 다시 작업하면서 서로 성장했다고 느꼈어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죠. ‘Shh..’는 각 세대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를 담았어요. 가사는 인생에서 중요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예를 들어 저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고, 혜인 씨는 첫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요.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 우정, 경쟁심 같은 감정을 처음 경험하죠. 50대인 조원선 선배님은 롤 모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이야기하세요. 롤 모델은 존경스럽고, 넘어야 할 산 같고,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잖아요. 사랑, 우정, 집착 뭐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알려준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에요.
‘Shh..’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에요?
여자 감독님과 남자 감독님, 저 이렇게 셋이 얘기하다가 여성들 사이엔 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엄마와 딸은 집착과 우정, 사랑 같은 것이 복잡하게 엉켜 있어요. 동시에 그 감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느끼고요. 엄마는 내게 세상을 가르쳐준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남자 감독님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감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고 하길래, 그렇다면 이 감정은 여자들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주제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황수아 감독님을 떠올렸어요. 황 감독님은 노래를 듣고 바로 공감하시더라고요. 뮤직비디오에는 탕웨이 선배님이 출연해주셨는데, 함께 작업한 건 처음이었어요. 너무 멋지고 아름다웠어요. 동경하는 마음이 들었고요. 제 마음속에 새로운 방이 생긴 것 같아요. 혜인 씨의 보컬도 놀라웠어요. 그의 해석을 듣고 싶어서 녹음에 앞서 별다른 코멘트도 하지 않았죠. 어릴 때부터 존경해온 조원선 선배님과 함께 한 작업은 꿈같았어요. 그분의 톤을 프로젝트에 담고 싶었죠. 선배님은 너그럽고 따뜻하셨어요.
거의 매년 앨범을 발표해왔는데 이번 앨범은 유난히 텀이 길었어요. 팬들은 아이유가 굉장한 앨범을 들고 나올 것이라 기대했고요. 작업하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부담감도 있었을 테고요.
팬들의 기대와 기다림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사실, 작년 한 해 동안 드라마 촬영으로 바빴지만, 팬들을 더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앨범 발표를 약간 서두르기도 했습니다. 기다리는 분이 많다는 걸 알아서 조금 더 엄격하게 만들기도 했고요. 뮤직비디오 제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때로는 텐션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함께 작업한 분들한테서 받는 에너지가 너무 컸어요.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시는데 제가 나태해서는 안되잖아요. 선공개한 ‘Love Wins All’ 곡을 만들며 엄태화 감독님과 BTS 뷔 씨의 도움을 크게 받았고, 그분들과 작업하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때도 많았어요. 그래서 정신 차리고 아파도 지금 아프면 안 된다, 후회하지 않도록 정신을 더 똑바로 차리자, 했어요. 그래서 성취감도 더 커요.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요.
이번 앨범 전곡에 단독 작사로 이름을 올렸어요. 이번 앨범의 가사들이 가진 큰 맥락은 무엇이라 할 수 있나요?
주제는 ‘위닝’, 즉 승리인데, 단순히 승부의 승리가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지만, 이 일을 하며 승리의 형태가 달라졌어요. 싸워야 할 상대는 저 자신이에요. ‘제 라이벌은 저뿐입니다’ 이런 말은 아니고, 제가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지나치게 욕심부리고 그걸 못 해냈을 때 오는 패배감이 진짜 커요. 그때 가장 슬퍼요. 난 이거밖에 안되는구나 느끼고, 그래서 누군가의 인정이 중요한 시기도 분명히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제 기준이 중요해졌어요. 내가 세운 목표나 욕심, 계획에 지지 않는 것. 이게 제 동력이에요. 그래서 나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앨범 제목도 <The Winning>이라고 지었어요. 모든 트랙에 ‘승리’, ‘이긴다’, ‘앞선다’ 라는 표현이 들어가요. 저는 그 동력이 없으면 일을 못 해요. 그래서 솔직히 제게 가장 큰 주제 의식은 ‘위닝’이에요.
작사가로서 하는 고민도 궁금해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어떻게 가사를 쓰는지, 가사 를 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을 내기까지 공백이 조금 길었던 것 같아요. <라일락> 이후 어느 정도 고갈됐다고 느꼈고, 그 앨범은 짜내듯이 만들었죠. 그 후로 약간의 번아웃을 경험했어요. 예전에는 사이다 기포 터지듯이 퐁퐁퐁 생각났는데 안 그러는 거예요. 억지로 작업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The Winning>은 본래 더 따뜻한 톤과 위로에 중점을 두려 했지만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방향을 바꿨어요. 전환점은 주경기장 공연이었어요. 정말 힘들게 준비했어요. 저는 그렇게 큰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꿈은 없었어요. 무대 체질도 아니고요. 부담이 컸고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어요. 근데 공연 중에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게 필요한 게 관객의 사랑이었구나. 관객의 사랑은 무대에서만 충전된다는 것을, 다른 데서는 충전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느꼈어요. 공연 끝나고 준비한 앨범을 다 갈아엎었죠. 장르도 에너지 넘치는 곡으로 바꿨어요. 생각이 명료해지니까 뒤엎을 수 있더군요. ‘홀씨’는 원래 잔잔한 포크송이었어요. 과감하게 지우고, 드롭해서 앨범 수록곡 수가 줄었어요. 앨범의 마지막 트랙은 ‘관객이 될게’로 하고 싶었어요. 당시 공연장인 주경기장에서 느낀 감정이 가사에 많이 녹아 있어요. 제일 많이 녹아 있는 곡은 타이틀곡 ‘Shopper’예요. 그날의 감정들을 나열해놨어요.
30대가 되면 감성이 메마른다고 하는데, 사실은 감성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경험을 안 하기 때문이죠. 30대야말로 활발히 도전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30대가 되면서 이전처럼 쉽게 도전하기 어려워진 면도 있죠.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월드 투어를 계획하고 있어요. 평소에 해외 나가는 걸 힘들어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도전하려고 합니다.
해외 팬들이 아이유의 월드 투어를 아주 오래 기다렸을 거예요.
해외를 잘 안 나가서 해외 팬이 많은지 체감하지 못해요. 그래서 죄송한 마음도 크고, 공연하면 보러 와주실지 걱정도 돼요. 객석이 다 차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더 열광적이지 않아도 되니까 도전하고 싶어요. 2024년은 저에게 큰 분기점이 될 것 같아요.
언젠가 꼭 공연해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
브라질에 가보고 싶어요. 거리가 멀어서 이번 투어에는 포함하지 못했지만, 브라질 팬들이 제 노래를 좋아해주시는 게 정말 신기해요. 브라질 팬들이 댓글을 많이 달아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브라질 같은 열광적인 곳에서 공연하고 싶어요.
‘Love Wins All’이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는데, 아이유에게 이런 수치는 어떤 의미예 요?
‘Love Wins All’에 대한 반응은 예상치 못했어요. 작곡가 서동환 씨와 협업한 곡인데, 처음에 그가 보내준 짧은 테마를 듣자마자 바로 끌렸어요. 곡으로 디벨롭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그에게 선택하라고 했죠. 이 곡을 짧게 만들면 히트곡이 될 거고, 길게 만들면 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담은 곡이 될 거라고요. 동환 씨는 결국 길게 만들고 메시지도 담았어요. 선공개했는데, 반응이 좋았죠. 서동환 씨가 대단한 게 성적과 메시지 두 목표를 모두 이뤘어요. 요즘 짧은 노래가 많아요. 몇 분 몇 초로 만들어야 사람들이 많이 듣는지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곡을 만들 수도 있었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길이를 포기하지 않는 결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그런 결정을 함께할 수 있는 뮤지션이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고,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늘 좋은 선택을 내리긴 어려워요. 작업하면서 솔직해지기 어려운 순간이 올 때면 어떻게 하나요?
그런 순간을 자주 마주하죠. 그럴 때는 글이 써지지 않아요. 아주 짧게, 잠깐은 내 진심이 아닌 것들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걸 계속 이어나가면 결국 절 더 힘들게 할 거예요. 할 말이 없으면 쓰지 못해요. 그래서 2년 동안 뭐가 안 나왔나 싶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할 말이 있을 때만 작업할 것 같아요.
많은 아티스트가 아이유를 롤 모델로 삼고 있어요. 본인은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어요?
수많은 음악 중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남고 싶어요. 음원 1위를 하거나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아이유는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인식 되고 싶어요.
아이유의 30대, <The Winning>을 시작으로 달라질 것 같아요. 어떤 30대를 기대하나요?
30대에는 지금껏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것 같아요. 그런 기운이 느껴져요. 가장 자유로운 시기가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