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M의 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케이티 정(Katie Chung).
그가 패션 디자인을 하며 이어온 어제와 오늘,
나아가 새로운 자리에서 지켜나갈 내일에 대한 이야기.

MCM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케이티 정

2024 S/S MCM 컬렉션의 주제는 ‘Back to Heritage’다. 첫 컬렉션의 주제로 잡을 만큼 당신을 사로잡은 특별한 헤리티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비세토스 모노그램 패턴과 코냑 컬러에 특히 주목했다. MCM은 역사가 깊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브랜드다. 그 근간이 되는 헤리티지를 재해석하면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MCM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오랜 기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은 요소에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나? MCM은 해외 본사 건물 한 층을 아카이브 보관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는 브랜드다. 그 공간에 과거에 선보인 모든 아이템이 담긴 카탈로그가 있는데, 그걸 거의 바이블처럼 여기며 구석구석 탐구했다. 외부에 있을 때는 몰랐던 MCM의 역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래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3층에 브랜드 헤리티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페이스도 설치했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당신의 손에서 재탄생한 헤리티지 중 특히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면 뭔가? MCM의 시그니처인 ‘비세토스’ 패턴을 재해석한 ‘로레토스’ 패턴이다. 젊은 사람들이 MCM의 헤리티지를 모던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존 패턴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 미니멀한 무드로 완성했다. 가방은 ‘디아만테(Diamante)’ 라인에 가장 애정이 간다. MCM의 기존 패턴은 MCM 로고, 라우렐 엠블럼, 다이아몬드 모티프로 이루어졌다. 그중 로레토스 패턴에 포함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모티프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백이다. MCM은 패턴 활용에 능한 브랜드인데, 패턴 없이 셰이프만으로 브랜드의 시그니처를 드러내고 싶었다. 셰이프를 보고 한눈에 MCM의 제품이라 알 수 있는 새로운 아이코닉 백이 되었으면 한다.

어머니의 브랜드이자 경력의 토대를 닦은 우영미와 본인의 브랜드 청을 거쳐 현재는 전혀 연고가 없던 MCM을 이끌어가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세 번째 장을 여는 마음가짐이 여느 때와 다를 듯한데 어떤가? 이 일을 좋아하지만, 한 브랜드에 오래 머물다 보면 “내가 이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같은 구성원과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장래 희망을 고민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생각 끝에 론칭한 것이 내 브랜드 청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처음으로 혼자 고민하던 일종의 방황기였달까. 결론은 ‘나는 패션이 너무 좋다’로 나긴 했지만(웃음) 과정이 있어야 답을 내릴 수 있는 거니까. 그 후 지금 MCM에 들어왔다. 업무 내용은 비슷하지만 환경이 완전히 달라서 신선하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브랜드에서 이곳만의 방식을 배우고, 내가 외부에서 새로운 체제를 가져와서 두 세계를 조화시키는 과정이 재밌다.

MCM의 뉴 아이코닉 백 ‘디아만테’
MCM 청담에 설치한 헤리티지 스페이스
모던함이 돋보이는 케이티 정의 2024 S/S MCM 컬렉션

우영미와 청은 남성복 브랜드다. 여성복과 남성복을 분리하는 것이 의미 없는 시대지만, 여성복 기반의 브랜드를 이끌면서 어릴 때부터 패션을 체화해온 디자이너에게 참신하게 다가온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남성복을 디자인할 때는 마음속에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그 사람을 위한 옷을 고민하며 디자인했다. 여자인 내가 피팅해본다고 해도 상상과 현실은 어느 정도 괴리가 있었다. 그런데 여성복을 만들 때는 ‘내가 이걸 입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하려 해도 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세심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성복과 비교해 제품군이 다양해서 만드는 즐거움도 있다.

독일 디자이너 티나 루츠(Tina Lutz)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라는 점도 흥미롭다. 밀라노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그와의 공동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온라인을 통해 소통을 아주 많이 한다. 우영미에서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를 경험했기 때문에 나에겐 익숙한 작업 방식이다. 컬렉션 막바지에는 거의 매일 연락하다시피 한다.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에 트렌드나 사람들의 신체 조건 등 차이점은 있지만, 티나는 일본에서 브랜드를 운영했고, 나 또한 유럽에서 오래 활동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 의견 조율이 어렵지는 않다.

MCM 하면 콜라보레이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청룡의 해를 기념해 베이프와 두 번째로 협업한 ‘Lunar New Year’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번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콜라보레이션도 결국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와 비슷한 맥락이다. 어떻게 하면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베이프도 MCM처럼 그래픽으로 성장한 브랜드이니만큼 공통점이 많아 디자인을 협의하는 과정이 굉장히 원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패션계에 들어왔다. 만약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까?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한다. 하나를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라 어쩌다 보니 강사 자격증도 땄다. 드디어 이걸 활용해 강사 활동을 하지 않을까. 아, 다이빙 옷도 만들어야겠다.

결국 다시 패션으로 연결됐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디자인적 영감을 얻나?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는 아무 생각도 안한다. 마치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바다는 드넓고, 나라는 존재가 아주 작게 느껴지면서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심리적으로 위로를 받는다.

당신을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언가? 가족이다. 특히 어머니 이야기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사실 어릴 때는 어머니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초조한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더없이 감사하다. 변함없이 열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항상 보고 배운다. 동경의 대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어머니는 내게 페이스메이커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오래 축적된 아카이브가 있는 브랜드에 내가 참여하고, 그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는 건 큰 영광이다. 내가 만든 것들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하나의 아카이브가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그럼 본사 1층 아카이브 스페이스에 케이티 정의 업적이 한 구간 남겠다. 2024년이 밝았다. 새해 소망이 있다면? MCM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나의 첫 도전이 담긴 이번2024 S/S 시즌 컬렉션이 대박 나길 바란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