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과 바다, 예술과 건축, 그리고 샤넬이 만난 시적인 순간. 샤넬의 2024/25 크루즈 컬렉션이 빚어낸 청량한 전경은 모두가 진심으로 마르세유를 꿈꾸게 했다.

마르세유로 향하다

매번 크루즈가 향하는 곳은 샤넬의 새로운 여행지가 된다. 이번 시즌 샤넬은 프랑스의 푸르른 항구도시, 현대 문화의 교차로이자 지중해의 심장부인 마르세유로 향했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가 2024/25 크루즈 쇼를 위한 장소로 ‘마르세유(Marseille)’를 선택한 이유는 표면적이지 않다. 단지 하늘과 바다와 요트가 어우러진 휴양도시 같은 외면적 매력만이 아닌, 마르세유가 갖춘 깊이 있고 매혹적인 문화적 그리고 예술적 함량 덕분이다. 마르세유는 문화와 예술의 면면에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다. 우선 건축부터 살펴보면, 마르세유는 근현대 건축사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시떼 라디외즈(Cite′ Radieuse)를 꼽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무너진 도시의 주택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재건 노력의 일환으로 1947년부터 1952년 사이에 지어진 건물이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가 지은 첫 공동주택으로 혁신적 주택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전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이 공동주택이 이번 샤넬 크루즈 쇼 베뉴로 선택되었다. “마르세유는 내 감정과 소통할 수 있는 도시다. 마르세유의 매력, 신선한 공기를 포착해 그곳을 지배하는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런웨이 쇼의 배경으로 시떼 라디외즈만 한 곳이 없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일명 ‘수직 마을’ 혹은 ‘살아 있는 기계’라고 부른 주상 복합의 이 공동체 건물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으며, 이 신선한 건축양식은 1920~1930년대의 모더니즘 스타일을 계승한 실용적인 접근법을 선보인다. 유명 디자이너인 샤를로트 페리앙과 장 프루베가 디자인한 아파트의 인테리어 역시 미학적 이목을 끈다.

마르세유의 영감이 담긴 크루즈 쇼

버지니 비아르는 마르세유가 안겨준 이번 샤넬 2024/25 크루즈 컬렉션의 영감에 대해 언급했다. “태양, 건축, 음악, 춤. 마르세유는 자유분방한 분위기 또한 강하다. 라이프스타일, 즉 일상생활의 코드와 움직임을 유도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이곳의 바다와 바람 때문에 웨트수트를 한번 활용해보고 싶었다.” 시떼 라디외즈의 옥상과 실내에서 독창적 건축 요소를 배경으로 지난 5월 2일, 두 차례 펼쳐진 크루즈 쇼. 오프닝은 아름다운 아니스 그린 색감의 샤넬 수트로 시작해 1960년대가 연상되는 미니드레스, 프레스 스터드 장식의 다이빙 후드로 연출한 캐주얼 룩이 흥미롭게 연이어 등장했다. 마르세유의 바다가 준 영감을 바탕으로 버지니 비아르는 심해로 향하는 모험가적 기질을 발휘했다. 사랑에 빠진 작은 물고기와 어망, 조개껍데기와 조개가 수놓인 자수 장식이 드레스와 수트 재킷, 조끼, 블라우스, 티셔츠, 베스트에 두루 등장했다. 클래식한 스웨트 셔츠에 물고기 프린트의 시폰 소재를 더한 룩 또한 신선한 분위기를 더했다. 여기에는 캥거루 포켓이 달려 있는데, 이는 후드가 달린 슬리브리스 체크 드레스와 시스 드레스에도 등장한다. 수면에 햇빛이 닿아 반사되는 섬광과 굽이치는 물결이 환상적인 여름날을 형상화한 수영장에서 보낸 추억. 이 같은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저지, 트위드, 시퀸 소재 재킷도 쇼에 등장했다. 마르세유 건물의 색감과 시떼 라디외즈 건축물의 특징적인 격자 모티프에서 영향을 받은 감미로운 컬러 팔레트와 기하학적 패턴의 자수 장식 주머니가 돋보이는 롱 드레스나 튜닉도 특별한 분위기를 더했다. 또한 자수 브레이드로 트리밍한 러닝 버뮤다 팬츠, 트위드 소재 사이클링 쇼츠, 오버사이즈 베이스볼 재킷으로 역동적 움직임을 포용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화이트 플라운스 스커트와 플로럴 자수 시스 드레스에서도 자유로운 바람결이 느껴졌다. 여름 무드를 물씬 전하는 스윔수트, 높은 플랫폼 솔의 테리 소재 플립플롭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에 등장한 수영복은 블루머, 퀼로트, 사이드 오픈 드레스와 더불어 와플 조직 패브릭 스커트, 페티코트, 아이보리 레더 레이스와 브로더리 앙글레즈 패치워크를 적용한 보디스를 등장시켜 한층 우아한 동시에 캐주얼한 한여름의 무드를 풍겼다. 반면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스트랩이 달린 저지 뷔스티에와 작은 꽃 장식이 달린 수영복의 톱으로 재해석되어마르세유의 무드를 더한 신선한 스타일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