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루브르 미술관의 유리 피라미드 뒤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 미술관 한편에 자리한 ‘쿠르 카레 뒤 루브르(Cour Carre du Louvre)’에서 패션위크의 마지막을 장식한 루이 비통의 2025 S/S 컬렉션이 펼쳐졌다. 쇼를 위해 수차례 쿠르카레를 변신시켜온 루이 비통은 이번 시즌, 건물 전반을 거울로 뒤덮어 주위의 르네상스풍 기둥과 역사적인 조각품 등을 비추며 공간을 무한히 확장했다. 쇼가 시작되자 다양한 모양의 트렁크를 퍼즐처럼 끼워 맞춘 형태의 거대한 런웨이가 바닥에서 드높이 솟아올랐다. 이를 보고 있으려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부임 초반에 하우스의 유산인 트렁크를 작은 가방으로 변형해 대중화한 ‘쁘띠뜨 말’이 떠올랐다. 하우스의 DNA를 집약한 베뉴는 올해 부임 10주년을 맞은 그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루이 비통 하우스에 바치는 헌사와 같았다. 이번 시즌 컬렉션 주제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 유연한 구조, 굳건한 가벼움, 날카로운 섬세함 등 서로 다른 것들의 충돌에서 오는 역설적 미학을 표현하고자 한 그는 이 추상적인 개념들을 교묘한 재치를 발휘해 컬렉션으로 구현했다. 특히 전통과 현대라는 대조적 요소를 결합해 동시대적으로 재탄생시킨 점이 돋보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남성복인 더블릿이 떠오르는 재킷에 스포티한 레오타드와 두꺼운 가죽 샌들이 조화를 이룬 오프닝 룩에 그런 시도가 함축돼 있었다. 이 외에도 어깨와 허리를 강조한 실루엣의 재킷에 바이커 쇼츠를 매치하는가 하면 호화스러운 자수, 풍성한 페플럼 밑단 등의 디테일을 활용해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왕이 21세기 LV 여왕으로 환생한 듯한 룩의 향연을 펼쳤다. 컬렉션 전반적으로 가볍게 나풀거리는 소재를 사용해 재킷은 블라우스처럼, 코트는 가운처럼 보이게 한 아이러니에서도 그의 의도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루이 비통의 핵심이 되는 가방은 그리니치 백, 상징적인 쁘띠뜨 말, 그리고 아카이브에서 탄생한 새로운 모델까지 다채로웠는데, 특히 서로 다른 형태의 백을 동시에 드는 더블 백 스타일링은 ‘대비’라는 키워드를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쇼의 대미는 아티스트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와 협업해 제작한 다섯 벌의 피날레 룩! 르네상스풍의 그림 속 여러 개의 달, UFO 같은 초자연적 SF 모티프가 녹아든 ‘Studies into the Past’ 시리즈를 프린트한 룩은 주제를 부각하기에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이렇듯 이번 컬렉션에는 전통과 현대가 공명하고, 패션과 예술이 자연스레 얽혀 있다. 제스키에르는 말했다. “매 시즌 미적 도전을 하지 않는다면 패션이라는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루이 비통에서 10주년을 맞이하고 두 번째로 선보인 쇼는 오랜 기간 녹슬지 않는 그의 창조 정신의 끝이 어디일지 기대하게 만드는 컬렉션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