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넬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며 코로만델 병풍을 관찰했다. 병풍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왠지 초기 영화 스크린이나 작은 이야기들이 잔뜩 등장하는 거대한 만화 같았다. 어디를 봐도 또 다른 일상의 모습이 펼쳐졌다. 내 모든 작품에서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장소다. 대부분이 내가 발견하고 사랑하게 된 특정 장소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는 그곳에 속한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여야 했다.”
영화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





지난 12월 3일, 해 질 녘의 매혹적인 풍광을 선사한 중국 항저우의 서호. 샤넬의 미감을 더한 룩으로 성장한 이들이 배를 타고 하나둘 이곳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항저우로 향하는 상상 속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특별한 공간에 초대받은 이들은 안개가 신비롭게 깔린 서정적인 서호의 풍경을 즐기며, 여정의 출발점인 가브리엘 샤넬의 깡봉가 31번지 아파트 작업실과 19세기 코로만델 병풍 속 이미지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시공간을 초월해 언젠가 꿈속에서 본 듯한 상상 속 꿈같은 여행을 만끽하면서. 공방 컬렉션 쇼의 장소인 항저우 서호를 배경으로 과거의 일상 속 풍경을 보여주며 매혹, 여행, 꿈을 주제로 펼친 이번 쇼에는 감독과 배우, 뮤지션 등 수많은 이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샤넬 앰배서더인 김고은, 틸다 스윈튼, 캐롤라인 드 매그레, 루시 보인턴, 샬롯 카시라기, 루피타 뇽오 등 다수의 셀러브리티를 비롯해 티저 영상을 연출한 빔 벤더스 감독,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이 함께했다. 틸다 스윈튼은 2024/25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고혹적인 자수가 놓인 그레이 트위드 코트와 울 저지 팬츠 차림이었다. 샤넬 앰배서더 김고은은 이날 2025 봄-여름 레디-투-웨어 컬렉션 룩인 화이트 글리터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셋업 차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캐롤라인 드 매그레는 2023/24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화이트 폴카 도트 블랙 트위드 코트를, 샬롯 카시라기는 2023/24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블랙 시퀸 트위드 코트, 스커트, 오간자 톱을 착용했다. 루피타 뇽오는 2024/25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그레이와 파우더 핑크 컬러가 조합된 트위드 고데(주름) 코트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힘찬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 쇼는 샤넬의 언어와 세계, 공간과 스타일, 영감과 연결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가 집중했던 요소들을 Le 19M에 모인 공방의 장인 정신을 통해 재조명했다. 르사주의 플로럴 모티프 자수는 샤넬 여사의 병풍을 직접적으로 연상시켰고, 제이드 그린과 핑크, 스카이블루는 옻칠의 광택을 구현한 듯. 빛바랜 블루 진은 호수 수면의 잔물결을, 블랙과 브라운을 비롯한 어두운 톤은 병풍의 목재와 밤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을 떠올리게 했으며, 일부에는 르사주의 아름다운 자수로 반짝이는 효과를 줬다. 구센의 메달리온과 커프는 꽃과 과일,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도자기 표면에 만들어내는 균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인 ‘여행’은 여행 백, 베니티 백 등 가방뿐만 아니라 니트웨어에도 반영되며, 수트 안에 코로만델 병풍 모티프의 아름다운 프린트가 마치 병풍처럼 펼쳐진 보디수트를 레이어링해 연출하기도 했다. 백과 재킷 앞면을 장식하는 여러 개의 그래픽 포켓은 봉투 같은 형태로, 밤이라는 관능적이고 로맨틱한 테마는 르마리에와 로뇽 공방이 제작한 아름다운 플리츠와 플라운스를 통해 표현되었다. 한편 베개 모양 실크 핸드백, 구름 형태의 펄 네크리스 또한 꿈의 세계가 선사하는 포근한 감각을 전했으며, 룩의 방점을 찍은 부츠와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백을 레이어링한 더블 백 스타일링도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고급스러운 소재, 샤넬 공방의 장인정신, 역동적인 레이어링, 세련된 로맨티시즘이 어우러진 순간! 가브리엘 샤넬의 코로만델 병풍을 모티프로 로맨틱하고 이국적인 여행을 펼친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은 모두의 기대감을 충족하는 황홀한 기억으로 긴 여운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