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의 발렌시아가, 그 눈부셨던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그는 지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렌시아가와 작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는 2015년부터 약 10년 동안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며 브랜드의 성장과 재정의를 이끌며, 현대 패션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통적인 하이패션에 스트리트 감성을 접목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이야 익숙한 스타일이 되었지만, 기존 베트멍에서 보여주던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과장된 어깨선, 과감한 레이어링 등을 발렌시아가에 도입하여 당시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발렌시아가에서 그가 남긴 족적은 확실하고, 또 대단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찬란한 연극이라도 커튼콜은 있기 마련. 지난 3월, 케어링 그룹은 뎀나를 구찌 하우스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대거 이동 중인 요즘, 그 역시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겠죠.

다가오는 7월 초부터 뎀나는 구찌의 수장으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합니다. 한 달여를 앞둔 지금, 뎀나는 발렌시아가와의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발렌시아가 2026 봄 컬렉션 ‘Exactitudes’

바로 어제, 뎀나의 마지막 발렌시아가 레디-투-웨어 컬렉션이 공개되었습니다. 2026 봄 컬렉션 ‘Exactitudes’은 지난 10년간 뎀나가 발렌시아가 하우스에서 구축해온 비전과 패션에 대한 탐구를 디자인 코드로 녹여냈죠. ‘발렌시아가’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상징적 요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이건 마치 뎀나가 자기 자신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 같기도 합니다.

발렌시아가 뮤직 | 브리트니 스피어스

해당 컬렉션과 함께 공개된 ‘발렌시아가 뮤직 | 브리트니 스피어스’ 시리즈도 흥미로워요.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가 패션과 음악을 동시에 아우르는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죠. 이 시리즈에는 발렌시아가의 리미티드 레디-투-웨어 및 액세서리 컬렉션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브리트니의 사인이 프린트된 티셔츠와 지퍼 후디, 실크 트윌 스카프 등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아이템은 빈티지 앨범 굿즈를 연상시키는 에이징 처리와 손글씨 스타일의 아트워크가 더해져, 오래 간직한 사인 기념품 같은 감성을 자아냅니다.

또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직접 큐레이션한 익스클루시브 플레이리스트도 공개되었습니다. 그녀의 아카이브 음악과 영감을 준 트랙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발렌시아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감상할 수 있어요. 발렌시아가의 모든 쇼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뮤지션, BFRND의 새 앨범 <Britney4ever>도 함께 발표되었는데요. 발렌시아가 2025 여름 컬렉션의 사운드트랙이었던 ‘Gimme More’ 리믹스의 공식 음원과 ‘Oops!… I Did It Again’ 발매 25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리믹스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회고전으로 남기는 피날레

한편, 파리 현지 시간 기준 6월 26일부터 7월 9일까지 ‘뎀나의 발렌시아가(Balenciaga by Demna)’회고전도 열릴 예정입니다. 뎀나가 직접 기획한 이 전시는 지난 10년 동안 그가 발렌시아가에서 그가 다듬어온 창의적 언어와 미학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들을 조명합니다.

그가 떠난 자리엔 긴 여운이 남을 겁니다. 뎀나의 발렌시아가는 하나의 시대였고, 감각이었고, 또 질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불편했고, 누군가에겐 혁명이었죠. 하지만 분명한 건 뎀나가 만든 발렌시아가는 단 한순간도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패션계는 늘 새로운 얼굴을 원하지만, 어떤 시대는 쉽게 반복되지 않거든요. 우리는 분명 오래도록 ‘뎀나의 발렌시아가’를 이야기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이름을 다시 떠올릴 때 이 마지막 컬렉션과 전시가 작은 전환점처럼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