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블록이 인상적인 퍼즐 스몰 키위 백, 퍼즈 키위 참 모두 LOEWE.
뒷면을 컷아웃한 테일러드 재킷과 팬츠, 따뜻한 색감의 퍼즐 엣지 스몰 랜드스케이프 백 모두 LOEWE.

오늘이 지구의 날이래요. 마침 푸른 식물과 자연 오브제들을 곁에 두고 <마리끌레르> 6월호 커버를 촬영했어요. 조금 전에는 부슬비도 촉촉이 내렸죠. 비 오는 날을 좋아해요. 비 덕분에 화보에 오묘한 분위기가 담긴 듯하고요. 오늘 로에베의 새로운 매력을 느꼈어요. 로에베와의 만남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드디어 해낸 것 같아 뿌듯해요.

로에베와 함께한 이번 화보의 테마는 ‘빨간 머리 앤’이에요. 주체적인 여성 서사의 주인공이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캐릭터죠. 외면이 아닌 내면에서 앤과 지젤의 닮은 점을 찾아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풍부한 상상력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앤처럼 머릿속에 이런저런 장면을 많이 그리거든요. 평상시뿐만 아니라 활동할 때도 상상을 자주 해요. 에스파가 초현실적 컨셉트를 많이 시도하는 팀이다 보니 무대에 서면 다른 존재에 빙의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우리만의 세계관이 있어 재미있어요.

에스파는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에 오르는 등 성과를 계속 쌓아왔죠.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갈지 궁금해요. 여름이 오면 에스파의 신곡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멤버들 모두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결과물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 컴백이 더욱 기대돼요.

에스파의 컴백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음악을 통해 강인하고 당당한 매력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에스파의 음악이 지닌 선한 영향력을 실감한 적이 있나요? 그럼요. 우리의 영향력을 실감할 때 이 일의 가치를 느끼고, 그게 제 동력이 되어줘요. 작업의 완성도나 결과도 중요하지만, 사람들한테 해방감과 행복을 주는 게 제일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영원한 행복이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잠깐의 웃음을 전한다면 저 자신한테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서요. 전 음악과 영화를 비롯한 문화 자체를 좋아해요. 제가 문화 안에서 힘을 얻은 적이 있듯이, 제 활동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복 받은 것 같아요.

문화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최근에 품은 화두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요즘이 트렌드가 없는 시기라고 느껴요. 특정 장르가 유행하기보다는 많은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무언가가 확 떴다가 갑자기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면 어떤 음악을 해야 하지?’ 싶어 막막하기도 해요.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주지 않을 것 같고, 저를 돌아봐도 리스너로서 꾸준히 찾아 듣는 음악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아요. 그럼에도 뮤지션에게 중요한 건 ‘진심’이라고 생각해 요. 일부러 자극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사운드로 임팩트를 주고, 마음이 느껴지는 가사나 그 사람만의 매력을 담아낸 곡을 선보이는 거죠. 그런 곡이라면 대중이 오랫동안 들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적 성장을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도 있나요? 제 목소리가 편안하게 들릴 수 있도록 노력해왔어요. 곡을 직접 만들고 불러 보면서 제 입에 잘 붙는 발음 등을 알아가는 거죠. 작업해둔 곡이 꽤 있어요. 지난가을에는 집에서 혼자 작업할 수 있는 장비도 샀는데, 해외까지 갖고 다니면서 하루에 서너 곡씩 쓴 적도 있어요. 언젠가 기회가 생기 면 꼭 들려드릴게요.(웃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저에게 어울릴 거라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목소리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예요.

음악뿐 아니라 지젤이라는 사람 자체의 개성도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지젤의 매력을 줄여 ‘지젤력’이라 일컫기도 하죠. 지젤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웃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테니 제가 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팬들이 만들어준 매력에 가까운 듯한 데, 그 덕분에 정확한 피드백을 얻고 있어요. 반응이 오는 제 말이나 ‘짤’ 들을 살피면서 사람들이 제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파악해가는 거죠.

지젤을 중심으로 구성한 ‘Whiplash’ 파트도 큰 반응을 얻었죠. 지난 2월 에스파가 ‘빌보드 위민 인 뮤직’에서 올해의 그룹상을 수상하며 그 무대를 또 한번 선보였어요. 세계적인 여성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였을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뮤지션마다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저 자신을 다시 일깨운 듯한 기분이 들어요. 내 세상에만 갇혀 살다 보면 놓치거나 잊어버리는 것들이 생기잖아요. 다양한 뮤지션의 음악과 무대를 접하고, 어워드와 투어 등을 통해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제 주변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뮤지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젤이 좋아하는 여성들을 떠올려본다면 누가 있나요? 음… 어릴 때 본 영화 속 캐릭터가 떠올라요. 강하게 자라고, 총칼을 다루거나 무술을 익혀 위험한 세계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여성들이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멋있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여성 캐릭터들의 강인함이 어린 지젤의 마음을 사로잡았군요.(웃음) 그럼 지금의 지젤은 어떤 사람이 제일 멋있다고 느끼나요? 솔직한 사람이요. 누군가의 거짓된 말이나 행동이 밝혀지면 그 순간 이후로 멋있어 보이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 앞에서 떳떳하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으려면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노력이 필요하겠죠. 대부분의 멋진 사람들이 노력을 기반으로 자신의 멋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솔직한 태도는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두텁게 하죠. 한 인터뷰를 통해 관계를 대하는 지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어요. “의리가 중요하고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외로움을 느끼고, 가족처럼 본능적인 유대감을 느끼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게 드문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사랑하는 감정이 있어 야 진정한 의리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사는 의미 중 하나예요. 그래서 삶의 여러 순간 속에서 의리와 사랑을 느끼려고 해요. 저를 아껴 주는 팬들과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제 마음 등을 통해서요.

평소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쿨하면서도 다정한 면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를 대할 땐 어떤 편이에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만약 제가 제 인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사랑하기 힘들 것 같고,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래서 저를 사랑할 이유를 직접 만들려고 해요. 아침 일찍 일 어나 무언가를 하거나,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 등 하루의 다짐들을 지키는 식으로요. 그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노력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단단한 내면을 지녔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려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고요. 언제부턴가 사고방식이 스위치를 누른 듯 단번에 바뀌면서 멘털도 단단해졌어요. 흔히 “힘들어도 견뎌”라고 하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스스로를 가엾이 여기게 만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힘듦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자주 찾아서 보는 영상이 있는데, 지구를 비추던 화면이 점점 멀어지면서 우주까지 나아가요. 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일 거예요. 그러니까 어렵게 느껴지는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작은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허무할 때가 있지만, 작은 나이기에 오히려 삶의 소소한 가치에 주의를 더 기울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내가 만약 우주만큼 큰 존재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왜 나보다 크게 느껴지는 저 사람처럼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하는데요. 고민한다고 바뀌는 건 없더라고요.(웃음) 그렇다면 내 삶을 좀 더 아껴줘야겠다 싶어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나 물건도 소중하게 대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데 집중하면서요.

내 삶을 귀하게 여기면서 나아갈 때, 그 마음에 무엇이 꼭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요? 1~2년 전에 추가된 좌우명이 있어요. ‘귀엽게 살자!’ 귀여움의 힘이 진짜 크더라고요. 무언가를 미워하는 감정마저 풀어줄 수 있으니 사랑보다 센 것 같기도 해요. 단순히 자그맣고 예쁜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낯을 많이 가려서 어딘가 어색한 사람, 얼굴 살이 처진 강아지, 음식조차도 문득 귀엽게 여겨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순간마다 마음이 완전히 녹아버려요. 못 참겠어요.(웃음) 이렇게 다양한 귀여움을 알아보고, 더 많이 찾아내려는 마음을 계속 지켜가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제 인생이 좀 더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나파 레더 소재의 보머 재킷 LOEWE, 터프팅 오브제는 박현지 작가의 작품.
화이트 플라멩코 드레스, 블랙 트라우저, 램스킨 발레리나 슈즈, 버클로 장식한 퍼즐 스몰 바이커 백 모두 LOEWE.
비대칭 실루엣의 탱크 드레스, 골드 참으로 장식한 뮬, 플로럴 프린트를 더한 퍼즐 스몰 바이커 플라워 백 모두 LOEWE, 버선은 에디터 소장품.
부드러운 질감의 가죽 트렌치 재킷, 블랙 트라우저, 램스킨 발레리나 슈즈 모두 LOEWE, 버선은 에디터 소장품.
플로럴 프린트를 더한 퍼즐 스몰 바이커 플라워 백 LOEWE.
지형도를 모티프로 제작한 퍼즐 엣지 스몰 랜드스케이프 백 LOEWE.
뒷면을 컷아웃한 테일러드 재킷과 팬츠, 따뜻한 색감의 퍼즐 엣지 스몰 랜드스케이프 백 모두 LOE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