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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끌레르> 6월호 커버 촬영을 앞두고 만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 공개를 앞두고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나? <광장> 공개 전 많은 이들에게 작품을 알리기 위해 여러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오전에도 촬영을 하나 마쳤는데, 이런 일정 이외에는 평범하게 운동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오늘 로에베 그리고 마리끌레르와 첫 만남인데, 우리가 어떤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새로운 경험 앞에서 마음이 설렌다.(웃음)

오랜만의 누아르 작품이다. 6월 6일 공개 예정인 <광장>에서 주인공 ‘기준’ 역을 맡았다. 이 인물을 연기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인가? 그의 처절함이 보이길 바랐다. 기준은 11년 전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끊고 조직을 떠났다가, 동생의 죽음 이후 복수를 위해 다시 그 세계로 돌아온 인물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원작 웹툰에서는 모든 과정이 과감하게 진행 되는데, 드라마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청자들이 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점점 더 공감할 수 있길 바라며 연기했다.

<광장> 안에서 품은 또 다른 고민도 있나? 극의 진행을 위한 수단으로서, 혹은 오락적 장치로서 액션을 활용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늘 액션도 대화라고 생각해왔다. 몸의 대화고, 서사의 일부라고. 작품 안에 의미 없는 대화가 존재하지 않듯 액션을 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감독님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액션에도 기승전결 이 있으니 계속 비슷한 액션을 만들지 말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디테일을 더해 다르게 촬영하자고 말이다.

비슷한 것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필모그래피에서도 느껴진다. 다양한 장르, 역할, 소재를 넘나들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늘 작품이 끝나면 다음에는 완전히 다른 걸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자기 복제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만 하면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는 사람도 질리기 마련이다.(웃음) 또 새로운 걸 시도해야 멈춰 있지 않고 스스로 더 많이 고민하게 되더라. 그게 내게 맞는 옷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나? 대중이 사랑하던 과거의 성취를 따라 안전한 선택을 할 법도 한데.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이 작품은 잘될 거야’ 해도 흥행에 실패할 수 있고, 그 반대로 ‘내가 이걸 왜 했지’ 했는데 사랑받을 수 있다. 결국 무슨 작품을 하든 다 도전이다. 안전한 건 없다.

배우가 대중에게 자신을 보여주어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그 도전에는 외부의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배우로 살며 대중의 평가를 마주하는 일에 익숙해지기도 했나? 아직 멀었다.(웃음) 가끔 익숙해지나 싶은데, 여전히 그 평가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배우는 작품마다 평가받지 않나. 아주 좋을 때도 있지만 완전히 바닥일 때도 있다. 오래 도록 지켜보고 여러 작품을 감상한 뒤에 판단하기도 어려운 직업이지 않나. 이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쉽지 않을 거라 느낀다.

그럼 스스로 만족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 편인가?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했을 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것. 외부의 평가는 그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이 끝난 뒤 후회한 적이 거의 없다. 그때의 내가 작품 안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아도 외부의 평가가 좋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별로 도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태도가 이 일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줬을 듯하다. 오랜 시간 연기 안에 머물러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여전히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시작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고, 하다 보니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도 몰랐지만, 그저 내 생각이 이끄는 대로 가봤다. 그러다 보니 계속 나아갈 힘을 얻었을 뿐이다. 그렇게 연기한 지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간다. 대중에게 익숙한 배우일 텐데, 이런 상황에서 매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 사람들이 내게 더 궁금한 것, 더 보고 싶은 면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왜 연기를 하고 있지, 뭘 더 해야 하지, 과연 무엇이 맞는 거지…. 요새 이런 고민을 자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돈이었다면 이 정도로 오래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연기할 힘도 나지 않았겠지.

연기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서 믿고 있는 것이 있나? 작품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내게 있다는 것.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웃음) 나를 선택해 주면 그 안에서 온 힘을 다 할 자신은 있다.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수입과 배급에도 관심을 가지며 행동하고 있 다. 수익성이 부족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일에 큰 힘을 더해오지 않았나. 이런 말도 있더라. ‘한국의 시네필들은 소지섭 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손사래 치며) 어휴, 그건 정말, 그런 말은 내가 아니라 영화 수입을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 해야 한다.(웃음) 그분들 이 없었다면… 다양성을 지향하는 영화는 지금 더 어려운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다소 조심스럽다. 사실 나는 발만 담그고 있으니.

그럼에도 꾸준히 영화 수입에 투자해온 이유가 있을 듯한데. 배우로 활동하며 지금껏 내가 받은 것을 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이다. 투자를 시작한 지도 10여 년이 되었는데, 아직 한 번도 수익금을 받아 나를 위해 써본 적이 없다. 받으면 다시 보태서 새로운 영화에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도 능력이 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프레임 안의 좋은 이야기가 프레임 밖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거라는 믿음도 있나? 물론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힘은 여전할 것이고,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배우로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OTT가 발전하며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알게 됐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국경의 한계를 넘어 개개인에게 가닿았을 때 분명히 어떤 힘을 전할 거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겠지.

문득 궁금하다. 배우로서 프레임 안에서 여러 인물로 살아오지 않았나.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아보며 프레임 밖 세상,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이라는 존재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했나? 늘 그런 배움을 얻고 있다. 기준을 연기할 때도, ‘이 사람 너무 원초적이고 위험한 거 아니야? 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작품의 설정이 존재하고 인물의 배경이 있으면, 그 사람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우리가 누군가와 싸우는 이유는 나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내 시선에 이상하게 보이니까 부딪치는 것이지 않나. 하지만 내 시선이 정답일 수는 없다. 모두에게 각자의 삶이 있 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다 이해가 되더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로도 들린다. 마지막 질문이다. 소지섭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그 안에는 최소한 무엇이 담기길 바라나? 일단 재미없어서 만들지 않을 것 같다.(웃음) 누군가에게는 내 인생이 흥미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도 만든다고 가정하면… 아직 미완성이라 잘 모르겠지만,(웃음) 앞서 이야기한 것을 담지 않을까? 만족의 기준을 나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는 태도. 그러니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이런 메시지가 관객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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