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Fendi)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를 하우스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식 임명했습니다.

©Paola Mattioli

디올(Dior)을 떠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전격적인 복귀이자, 동시에 ‘귀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행보인데요. 로마 태생인 치우리는 1989년부터 약 10년간 펜디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몸담으며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 중 하나인 ‘바게트 백(Baguette Bag)’ 개발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죠. 그리고 이제 자신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이탈리아 하우스로 다시 돌아오며 또 한 번 커리어의 굵은 전환점을 찍었습니다.

사실 그녀의 복귀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업계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던 인사였습니다. 펜디는 지난해 10월, 킴 존스(Kim Jones)가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전담 디렉터 없이 시즌을 이어왔는데요. 그 공백은 창립자 아델·에두아르도 펜디 부부의 손녀이자 브랜드의 상징적 존재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채웠습니다. 기존에 맡고 있던 남성복 총괄에 여성복까지 더해 2025년 시즌을 이끌었죠. 그러다 지난달, 벤투리니가 디자인 실무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직으로 자리를 옮기자 자연스럽게 새로운 디렉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가장 유력한 인물로 점쳐졌던 치우리가 마침내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LVMH 그룹의 회장이자 CEO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오늘날 패션계에서 가장 뛰어난 크리에이티브 인재 중 한 명”이라며 “그가 대담한 패션 비전을 공유한 뒤 LVMH 그룹 내 펜디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자신의 창의성을 펼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전했습니다. 치우리 또한 “펜디는 언제나 재능 있는 인재들이 성장해 온 ‘인재의 용광로’이자,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비전과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출발점이었다”며 “창립자 다섯 자매의 지도 아래 경력을 시작했던 펜디로 돌아오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다”고 임명 소감을 전했습니다.

©Paolo Lanzi

이탈리아 출신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펜디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디딘 뒤, 발렌티노와 디올을 거치며 자신만의 뚜렷한 미학을 다져온 인물입니다. 2016년에는 디올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돼 하우스의 정체성뿐 아니라 패션계 전반의 흐름에도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만들었죠.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브랜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그의 디올은 매출과 브랜드 방향성 모두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로마에서 열린 마지막 쇼를 끝으로 디올을 떠난 치우리는 이제 자신의 여정이 시작된 펜디로 돌아와 또 한 번의 챕터를 써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치우리의 첫 번째 펜디 컬렉션은 2026년 2월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열리는 2026-2027 F/W 컬렉션을 통해 공개될 예정인데요. 커리어의 서막을 함께 열었던 하우스로 돌아온 그가 이번엔 어떤 미학으로 브랜드에 새로운 색을 입힐지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