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튀르의 거장을 떠나보내며

©Fondazione Valentino Garavani e Giancarlo Giammetti

오트 쿠튀르의 역사에서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해 낸 이름을 꼽자면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빼놓을 수 없죠. 절제된 화려함과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수십 년간 쿠튀르의 기준을 제시해 온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빛나는 명성을 뒤로 하고 향년 93세로 별세했습니다. 패션계는 한 명의 디자이너를 떠나보냈지만, 그가 남긴 미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탈리아 보게라에서 태어난 그는 17세의 나이에 파리로 건너가 에콜 드 라 샹브르 신디칼에서 오트 쿠튀르를 공부했으며, 이후 장 데세와 기 라로슈의 아틀리에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죠. 당시 파리는 쿠튀르의 중심지였고 이곳에서 가라바니는 옷이 ‘태도’와 ‘품격’을 드러내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했습니다.

©Fondazione Valentino Garavani e Giancarlo Giammetti

그는 1959년 그의 로마에 자신의 이름을 건 하우스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는데요. 이듬해 1960년,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연인인 지안카를로 지암메티를 만나며 하우스는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죠. 발렌티노는 초기 컬렉션부터 유행을 좇기보다 실루엣과 비례, 소재의 완성도에 집중했고 이 전략은 빠르게 국제적 주목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1970~8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교계와 왕실, 할리우드 레드 카펫을 넘나들며 조르지오 아르마니, 지아니 베르사체, 잔프랑코 페레 등과 함께 이탈리아 패션을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주역으로 자리 잡았죠.

발렌티노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는 단연 ‘발렌티노 레드’입니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레드를 사용해왔지만 그만큼 집요하게 하나의 색을 정체성으로 구축한 경우는 드물죠. 오렌지와 핑크, 카민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이 레드는 강렬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그 자체로 하우스의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레드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언어였죠.

컬렉션 전반에 흐르는 미학 역시 한결같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었죠. 과도한 노출이나 실험적 해체보다는 몸을 따라 흐르는 선, 균형 잡힌 볼륨, 섬세한 장식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드레스는 유행의 최전선에 서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해요. 그건 제 잘못이 아니죠.”

발렌티노 가라바니

가라바니의 커리어에 결정적인 장면을 남긴 인물 가운데 한 명은 재클린 케네디였죠. 그는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의 결혼식에서 발렌티노의 아이보리 조르제트 레이스 미니드레스를 선택하며, 브랜드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가라바니의 또 다른 중요한 동반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죠. 그는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으로 로마에 머물던 시절부터 발렌티노의 옷을 즐겨 입었는데요. 공식 석상과 레드 카펫에서 그의 드레스를 반복적으로 선택하며 디자이너의 미학을 가장 극적으로 구현한 인물로 남았습니다.

이후로도 발렌티노의 드레스는 수없이 많은 배우들과 함께 오스카 무대에 올랐으며 2001년 줄리아 로버츠가 발렌티노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순간은 지금까지도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회자됩니다.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지암메티는 2008년 1월 발표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죠. 수많은 모델들이 붉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그날의 피날레는 그의 미학과 커리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은퇴 이후 브랜드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아래 변화해왔지만, 그의 미학은 하우스의 중심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죠.

장인정신, 절제된 화려함, 그리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우아함. 빠르게 소비되는 트렌드의 흐름 속에서도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디자인이 계속해서 인용되는 이유입니다. 패션계는 거장을 떠나보냈지만, 그가 남긴 미학은 지금도 쿠튀르의 언어로 이어질 것입니다.

©Valent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