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언제나 시대의 언어와 공명했다. 그 언어 중에서도 ‘성별’은 가장 오래되고도 견고한 문법으로 받아들여진 동시에 가장 집요하게 해체되어온 규범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때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유니섹스’라는 용어부터 오늘날의 ‘코에드’에 이르기까지,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패션 계보는 단순한 트렌드의 변화를 넘어 사회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천사처럼 여겨졌다.

과거 1960~1970년대 탄생한 ‘유니섹스(unisex)’ 개념은마치 혁명에 가까운 선언이었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옷을 입는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으니까. 이후 1980~1990년대에 이르러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라는 감각이 부상한다. 더 이상 차이를 지우는 데 머무르지 않고, 남성과 여성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교차해 경계를 흐리는 중성적 미학. 이후 이 흐름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등장한 ‘젠더리스(genderless)’로, 2010년대에 접어들며 ‘젠더 플루이드 (gender fluid)’로 진일보했고, 오늘날 ‘코에드(co-ed) 패션’이라는 흐름에 직면하며 또 한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남녀공학(co-education)에서 유래한 용어 ‘코에드’. 이제 패션은 더 이상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무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경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것처럼 시스템을 재구성할 뿐이다. 코에드 흐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데뷔 무대인 2026 S/S 컬렉션 직후부터다. 이는 하우스의 유산을 재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일종의 선언에 가까운 일대 사건이었다. 그는 디올 하우스의 상징인 여성용 바 재킷을 남성 컬렉션에 기꺼이 차용했다. 그린과 블랙이 어우러진 이 재킷은 그해 10월, 다시 여성 컬렉션에서 마치 이란성쌍둥이처럼 닮은 듯 다른,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등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일한 코드가 성별에 따라 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로 확장되는 방식! 디올 CEO 델핀 아르노가 언급했듯이 그가 앤더슨에게 부여한 권한의 핵심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따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하나의 구조 안에서 동시에 설계하는 것. 이른바 ‘디올 커플’이라는 개념은 성별을 잇는 접점이 아닌, 동일한 언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는 관계성과 시스템에 대한 정의인 셈이다.

2026 F/W 컬렉션에서 포착한 코에드의 기류 역시 심상치 않다. 보테가 베네타와 펜디, 구찌, 버버리, 라코스테, 생 로랑, 구찌, 페라가모, 톰 포드…. 이처럼 수많은 하이패션 브랜드가 젠더 구분 자체를 무의미한 층위로 밀어냈고, 이는 거대한 흐름으로 번지고 있다.

결국 지금의 코에드는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설계’에 가깝다. 한마디로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 이는 지금 패션이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태도이자 언어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