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월생입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6월생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제 탄생석에 대한 작은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나도 다이아몬드나 루비, 에메랄드처럼 화려한 보석이 탄생석이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 말이죠. 어릴 적 제게 진주는 지나치게 여성스럽거나, 조금은 먼 세대의 보석처럼 느껴졌습니다. 길거나 짧은 진주목걸이, 혹은 스터드 이어링 외에는 특별한 활용법도 떠오르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진주에 대한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진주는 보석 중에서도 꽤 특별한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보석이 땅속에서 채굴되는 반면, 진주는 살아있는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대부분의 보석이 광물인 반면, 진주는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유기질 보석이라는 점부터가 굉장히 특별합니다. 아름다운 광택을 지녔지만 비교적 경도가 낮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보석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동양에서는 지혜와 보호를, 서양에서는 순수와 정직을 상징하며 오랫동안 사랑받아왔죠.

어쩌면 제가 진주를 따분한 보석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의 엄마 나이가 이제 다 되어가는 탓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진주는 제가 알고 있던 진주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확실한 건, 오늘날의 진주는 더 이상 ‘엄마의 진주목걸이’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입견처럼 자리 잡은 진주에 대한 오래된 오해. 오늘은 그 오해를 풀어보려 합니다.


오해 #1. 진주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진주를 착용한 남성의 이미지는 제게 꽤 낯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핑크 재킷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한 방송에 출연한 배우 이정재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음…”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상하다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 뿐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모습을 한 번 받아들이고 나니 그 이후부터는 진주를 착용한 남성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스타일링도 보이기 시작했고, 낯설었던 모습도 점점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미 저스틴 비버, 티모시 샬라메 같은 해외 셀럽은 물론, 빅뱅 지드래곤, 올데이 프로젝트 타잔, 이동휘를 비롯한 패셔니스타들의 일상에서도 진주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네크리스와 레이어링해 화려하게 연출하기도 하고, 존재감 있는 한 점만 깔끔하게 착용하기도 하는 등 스타일링 방식도 다양합니다. 보다 보면 저도 한번 해보고 싶어질 정도죠.

이제 진주는 여성들만의 보석이라기보다 스타일을 완성하는 하나의 선택지에 가까워 보입니다.



오해 #2. 진주는 특별한 날에만 착용하는 보석이다.

졸업식이나 결혼식처럼 중요한 순간에는 늘 진주를 한 어른이 계셨고, 본인을 치장하는 데에는 인색한 여성 정치인에게조차 진주 목걸이만은 예외였습니다. 중요한 연설을 앞둔 날이면 더욱 그랬고요. 아마 그래서였을겁니다. 저는 오랫동안 진주를 일상과는 거리가 먼 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아하고 단정하고 아름답지만, 어쩐지 귀한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날에만 꺼내야 할 것 같은 보석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진주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같은 진주목걸이도 어떤 룩에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거죠. 진주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전체 스타일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때부터 저는 진주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진주를 보면 먼저 ‘격식’이 떠올랐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스타일’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셀럽들의 스타일링을 살펴보면 진주는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운 보석입니다. 트와이스 모모는 여러 줄의 진주 네크리스를 홀터넥 톱 위에 자연스럽게 레이어링하고, ITZY 유나는 진주를 발랄하고 소녀스러운 무드로 풀어냅니다. 김나영은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니트 위에 진주를 툭 걸쳐 제가 가장 따라 해보고 싶은 룩을 완성했고, 지지 하디드는 볼캡과 브이넥 티셔츠에 진주를 함께 매치하며 진주가 스트릿 스타일과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전의 저라면 진주는 딱 떨어지는 원피스나 스커트 투피스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진주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진주는 생각보다 엄숙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드레스가 아니라 티셔츠와, 펌프스가 아니라 스니커즈와도 충분히 어울리는 보석 말입니다. 그때부터 진주는 저에게도 조금 더 가까운 보석이 되었습니다.


오해 #3. 진주는 새로운 모습일 수 없다.

하지만 진주의 변화는 스타일링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클래식한 진주목걸이를 새로운 스타일로 착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진주 주얼리 자체도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에밀리 블런트가 올해 멧갈라 레드카펫에서 선보인 미키모토의 진주 바디 주얼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너무나 신선했습니다. 제가 알던 진주는 목걸이나 이어링의 형태 뿐이었는데, 이제는 룩의 일부로서 몸을 가로질러 보다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게 되었으니까요. 진주가 더 이상 목선에만 머무르는 보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룩처럼 느껴졌습니다.

퍼렐 윌리엄스가 티파니앤코를 위해 디자인한 티파니 타이탄 컬렉션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에서 영감을 받은 뾰족한 금속 장식과 진주의 조합은 제가 알던 진주 주얼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죠. 저는 안야 테일러 조이가 이 이어링을 착용한 모습을 통해 처음 이 컬렉션을 접했는데,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에 더해진 강렬한 디자인 덕분에 마치 신화 속 인어공주의 또 다른 얼굴을 보는 듯했습니다. 진주가 이렇게 강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제니가 무대 위에서 착용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진주 초커 역시 진주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원래도 존재감이 강한 제니인데, 볼드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ORB 모티브까지 더해지니 강렬함이 배가 된 느낌이었거든요. 진주에게도 이렇게 쿨한 면모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티파니앤코의 버드 온 어 펄 (Bird on a pearl)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컬러 스톤에 내려앉은 새 모티브로 사랑 받아온 디자인 위에 진주가 올라가자 전혀 다른 감정이 느껴졌거든요. 하얀 진주 위에 앉아 있는 새를 보고 있자니 마치 방금 낳은 알을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여 모성애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진주에게 너무 제한적인 역할만 맡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정한 진주목걸이, 우아한 진주 스터드 이어링 정도로요. 하지만 요즘의 진주는 훨씬 대담하고, 훨씬 유쾌하며, 훨씬 자유롭습니다. 진주가 변한 걸까요, 아니면 제가 진주를 보는 법을 새로 배우게 된 걸까요?


그렇게 진주에 대한 오해를 하나씩 지우고 나니, 문득 제가 요즘 가장 자주 착용하는 목걸이도 진주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전에 엄마가 물려주셨던 진주목걸이를 몇년 전 금고에서 다시 꺼냈거든요. 엄마는 원래 두 줄 짜리 소트와였던 진주목걸이를 언니와 저에게 나누어 물려주고 싶으셨는지 두 개의 짧은 두 줄 목걸이로 만들어 각자에게 선물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길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긴 소트와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딸이 둘인데 목걸이를 하나만 선물한 아빠가 잠시 원망스러웠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 끝에 쌀알처럼 작은 시드 펄(Seed pearl)을 길게 엮은 소트와를 구입해 두 목걸이를 함께 레이어링하기 시작했죠.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습니다. 프린트 티셔츠나 크루넥 티셔츠 위에 무심하게 걸치기만 해도 제법 근사했고, 이어링이나 링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룩 전체가 완성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거의 교복처럼 착용하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6월의 탄생석에 대한 만족도가 회복된 느낌입니다.

천연진주를 금고에 모셔두든, 양식진주나 담수진주를 특별한 날에만 꺼내 아끼며 착용하든, 모조진주를 여러 줄 겹겹이 레이어링해 매일같이 착용하든 그건 모두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고 진주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이라도 사라졌다면, 그리고 “나도 진주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6월생이자 탄생석이 진주인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