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르메스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는 브랜드 세계관을 담아 2026년 테마를 선보였습니다.
- 실험적 공연과 자연주의 미식 등으로 채워진 이번 여정은 참가자들의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 피에르 알렉시 뒤마 디렉터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도전을 뜻하는 올해의 테마를 발표했습니다.
올해의 에르메스 테마 트립이 안겨준 것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의 경계에서 느낀, 아직 만나지 못한 가능성과 미지의 감각. 그리고 창의적인 상상의 영역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용기였다. 그렇게 지난 7월 프랑스 툴루즈로 향한 길 끝에서 ‘Venture Beyond’라는 테마 아래 매혹적인 미지의 세계를 만났다.

패션 너머 문화와 예술이 맞닿은 지점에 늘 에르메스가 자리했다. 단순히 럭셔리 브랜드로서 예술을 후원하거나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것에서 나아가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매년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7월, 프랑스 툴루즈에서 열린 ‘Hermès Theme Activity’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마감의 끝을 붙잡고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올해의 테마가 무엇일지 상상해보았다. 매년 참신한 테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온 에르메스. 이 특별한 메종이 올해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에르메스는 해마다 ‘Theme of the Year’를 발표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테마를 통해 에르메스의 미학을 매년 새로운 시선으로 선보이고 신선한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2023년에는 ‘Astonishing Hermès’를 통해 익숙한 것 속에서 다시 놀라움을 발견하는 태도를 이야기했고, 2024년에 제시한 ‘24 Faubourg’는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24번지에 위치한 에르메스 부티크의 본질적 정신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한편 2025년의 테마인 ‘Drawn to Craft’는 새들 스티칭에서 연필 스케치까지, 에르메스의 모든 것은 드로잉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드로잉과 공예의 관계를 조명하는 쇼윈도 등의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이처럼 창조의 가장 순수한 출발점을 탐구하는 에르메스는 2026년, 우리를 한 걸음 더 멀리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파리에서 툴루즈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남짓한 거리다. 그러나 그 짧은 이동은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처럼 느껴졌다. 툴루즈 블라냐크 공항에 내려 차량을 타고 호텔로, 또다시 공연장과 디너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는 해를 향해 고개를 쳐든 해바라기와 운하가 이어졌다. 파리의 세련되고 빠른 리듬과 달리 툴루즈의 자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서정적이며, 한여름의 석양처럼 포근하고 감미로웠다. 남프랑스의 따스한 공기와 본연의 소박한 자연이 만들어내는 장면이 그 무대가 되었다. 왜 에르메스가 올해의 테마를 설명하기 위해 이 곳을 선택했는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시선을 빼앗는 도심의 소음을 벗어나 호젓한 자연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오롯이 감각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글로벌 프레스를 맞이한 첫 프로그램은 실험적인 공연 예술을 주로 소개하는 가론 극장(Théâtre Garonne)에서 펼쳐진 공연. 극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는 무대였다. 화려한 장치도, 여러 명의 출연자도 없이, 한 명의 여성과 재(ash)가 깔린 여백의 공간. 침묵이 흐르던 그때, 무용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무용수는 인도 고전무용 쿠치푸디(Kuchipudi)를 기반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며 점과 선, 원과 나선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의 몸짓은 인도의 전통 문양인 콜람(Kolam)을 연상시켰다. 매일 아침 쌀가루로 그려졌다가 바람에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는 문양처럼, 그의 춤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다. 움직임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흔적은 남겨졌다가 곧 지워졌다. 그 모습은 놀랍도록 압도적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눈부시게 빛나는 강렬함이 스며 있었다. 에르메스는 일부러 <aSH>의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차후에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ash’가 죽음 이후 남는 흔적이면서 동시에 순환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 강렬했던 순간을 되짚어보았다. 연출가 오렐리앙 보리(Aurélien Bory)가 인도 무용수 샨탈라 시발링가파(Shantala Shivalingappa)를 위해 만든 이 특별한 작품을 통해 과연 에르메스는 올해의 테마를 어떻게 연결하고자 했는지 호기심을 느끼면서.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미디 운하의 라 플랑크 수문으로 이동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운하는 17세기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토목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든 이 수로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과 풍경, 시간을 이어주고 있다.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연결 통로인 운하는 ‘Venture Beyond’라는 테마가 품은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아닐까. 아름다운 석양이 수면 위로 비칠 무렵, 운하를 따라 길게 마련된 테이블에서 만찬이 시작됐다. 프랑스 미식의 거장이자 자연주의 요리의 대가인 미셸 브라스와 실뱅 조프르가 준비한 요리는 남프랑스의 자연과 계절을 담아낸 풍경 같았다. 접시 위에는 자연의 생명력이 깃든 재료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흙냄새를 머금은 채소와 허브, 자연스러운 향과 질감이 미감뿐 아니라 오감을 깨웠다. 이어 툴루즈 출신 마누슈 재즈 트리오 더 재즈 비크라뵈르(The Jazz Bicravers)의 자유로운 리듬이 공간을 메웠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파두 가수 카르미뉴(Carminho)의 음색이 깊이 있는 울림과 함께 밤공기를 채웠다. 그의 깊고도 애잔한 목소리는 운하의 물결과 바람을 감싸며 게스트들을 매혹했다. 그리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올 즈음, 그날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멀리 수면 위에서 초승달을 띄운 배가 천천히 운하를 가로질러 다가왔다. 그리고 그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다름 아닌 에르메스의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였다. 모든 시선이 자연스레 그에게 향했다. 달빛과 물결, 밤공기와 정적이 함께 흐르자 그는 마침내 올해의 테마를 발표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십시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면서도 우리를 부르는 그 광대함에, 우리 자신을 벗어나 타인에게, 미지의 것에, 저 너머로 손을 뻗도록 이끄는 모든 것에 마음을 여십시오. 발견하고, 만나고,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경이로움을 안고 몇 번이고 다시. 이것이 바로 창조를 향한 끝없는 여정이자, 1837년 이래 에르메스가 한결같이 지켜온 ‘Venture Beyond’의 부름입니다.” 드디어 퍼즐이 맞춰진 테마! ‘미지의 세계로’가 소개되자 툴루즈에서 경험한 모든 장면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었다. 무대 위에서 하나의 의식처럼 춤을 추던 시발링가파의 몸짓도, 운하를 거닐며 인생의 애환을 담은 파두를 부르는 카르미뉴의 노래와 미셸 브라스의 자연주의 미식도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여행이 아닌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여정. 그 안에 깃든 도전과 모험!


디너 공간. 자연을 바라보는 일렬 테이블 배치로 특별함을 더했다.

돌이켜보면 에르메스는 언제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을,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오롯이 느끼는 깊이를, 창의적 상상의 힘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감각은 모두 올해의 테마인 ‘Venture Beyond’와 연결된다. 미지의 세계란 멀리 있는 장소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바라보지 못한 세계라는 것을 일깨우며. 어쩌면 그 지점이야말로 에르메스가 매년 테마를 발표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확장되게 하기 위해서. 일상의 모험으로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장인의 손끝에 담긴 시간을 보여주고, 창조가 시작되는 순간을 조명하며, 마침내 우리를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렇게 툴루즈에서 보낸 시간은 하나의 테마를 탐색하는 것에서 나아가 내게 특별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얼마나 새롭게, 그리고 얼마나 깊이 느낄 수 있는가. 달을 품은 배가 운하를 가로지르던 그 밤의 풍경과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음악,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낀 미각의 순간까지…. 테마를 설명하기보다 직접 오감으로 경험하고 깨닫게 한 그 순간은 색다른 기억을 아로새겼다. ‘Venture Beyond’라는 테마 아래 익숙한 세계를 넘어 미지의 감각을 발견한 에르메스 테마 트립의 여정은 막을 내렸지만, 그곳에 모인 이들은 새로운 세계로 한 발 나아가는 시작점에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