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르띠에의 팬더 주얼리는 여성 디렉터 잔느 투상의 대담한 시선이 담겨 대담하면서도 멋진 매력을 풍깁니다.
- 여러 하이 주얼리 메종은 실루엣의 디테일이나 고유의 움직임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동물의 매력을 표현합니다.
- 반려묘 팬더와 함께 생활하면서 주얼리 속 표범의 사실적인 골격과 세밀한 움직임 및 눈빛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동물 모티브 하이 주얼리들을 보면 사실 늘 “아줌마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때의 제가 본 것이라곤 광고에 등장하는 크고 임팩트 있는 주얼리 몇 점이 전부였습니다. 표범이나 뱀처럼 존재감 강한 동물을 보석으로 화려하게 표현한 모습은 어쩐지 카리스마 넘치는 중년 여배우에게나 어울릴 것 같았고, 어린 제 눈에는 일상에서 쉽게 착용할 수 있는 주얼리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꽃이나 별처럼 예쁜 것도 많은데 굳이 손가락에 표범을 감고, 목에 뱀을 두르고, 가슴에 새 한 마리를 앉혀야 하나 싶었죠.
그 생각이 처음 바뀐 건 까르띠에에서 일하면서였습니다. 그렇다고 입사하자마자 팬더 드 까르띠에 Panthère de Cartier 주얼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인 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팬더 주얼리가 제 취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먼저 마음에 들어온 건 주얼리가 아닌, 그 뒤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까르띠에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팬더를 메종의 상징으로 만든 사람, 잔느 투상(Jeanne Toussaint). 남성 디자이너와 장인들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그들의 우두머리로서 메종의 크리에이티브를 이끌었던 독립적인 여성이자, La Panthère(라 팬더)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그녀의 독립적인 애티튜드와 대담하고 자유로운 취향은 팬더를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스토리를 알고 나니 아줌마 같다고 생각했던 팬더 주얼리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였습니다. 남자가 봐서 예쁜 여자와 여자가 봐서 예쁜 여자가 조금 다르듯이, 한 여성이 맹수에게서 발견한 매력을 자신의 시선으로 주얼리에 담았다면 그 안에는 저 역시 공감할 만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남성 디자이너의 시선은 또 조금은 달랐을 테니까요. 그래서 작품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잔느 투상이 팬더의 어떤 점을 보고 매력을 느꼈는지, 그 시선을 따라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예쁘고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쉽게 길들여질 것 같지 않은 표범이라는 점부터가 저를 빠져들게 했고요. 그때 처음 팬더를 ‘예쁘다’보다 ‘멋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동물을 주얼리로 만든다는 건 꽤 재미있는 일입니다. 살아 있는 동물은 표정도, 습성도, 움직임도 모두 제각각인데 그중 어떤 포인트를 어떤 방식으로 가져와 어떤 주얼리로 구현할지는 결국 만드는 사람의 선택이니까요. 실제로 여러 하이 주얼리 메종의 동물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같은 ‘애니멀 모티브’라는 말로 한데 묶기 미안할 정도로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티파니앤코의 동물들은 먼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옵니다. 티파니앤코를 대표하는 스톤 위의 새부터 해마와 잉어처럼 전혀 다른 생물까지, 동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온전히 드러내 어떤 생물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 재미있는 건 그 다음부터입니다. 자개를 깃털처럼 잘라 하나하나 이어 붙이는가 하면, 진주에 눈과 부리를 더해 새의 머리를 만들고, 서로 다른 커팅의 스톤을 연이어 세팅해 잉어의 불규칙한 비늘과 지느러미를 완성합니다. ‘이 부분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싶은 디테일에서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입니다.




반클리프 아펠의 동물들은 반대입니다. 형태를 납작하고 단순하게 줄였는데 오히려 익살스러운 성격이 생겼습니다. 실제 동물 도감보다는 오래된 동화책의 삽화를 들여다보는 기분에 가깝습니다. 털이 보드라운 온혈동물이든 매끈한 등껍질을 가진 변온동물이든 표현법은 놀랄 만큼 한결같습니다. 대신 토끼의 긴 귀와 둥근 몸, 거북이의 등껍질, 고양이의 말린 꼬리와 수염처럼 ‘이 동물이라면 이것만은 있어야지’ 싶은 특징을 몇 가지만 골라 남깁니다. 덕분에 같은 방식으로 그린 한 가족처럼 보이면서도 저마다 성격은 또렷합니다. 하나를 가졌어도 자꾸 다른 한 마리를 더 데려오고 싶게 만드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겠죠.




부쉐론의 동물들은 의외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쉐론 하면 늘 우아하면서도 힘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인을 먼저 떠올렸는데, 동물 앞에서는 생각보다 꽤 다정해집니다. 특히 눈을 표현하는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실제 동물의 비율보다 눈을 크고 또렷하게 강조해 놓으니 단순히 ‘고양이 모양’, ‘사슴 모양’의 주얼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하게 빤히 쳐다보는 것 같고, 사슴은 조금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 것 같죠. 실제 동물과 얼마나 똑같은지를 따지기도 전에 “얘 지금 나한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레서판다는 눈썹의 각도마저 절 보고 웃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데 저걸 손가락에 한번 껴보고 어떻게 안 데려올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불가리의 뱀은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굳이 친근해지려 애쓰지 않죠. 비늘과 길게 이어지는 몸, 무엇인가를 휘감는 습성처럼 우리가 뱀에게서 본능적으로 떠올리는 특징을 적극적으로 주얼리에 가져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비늘입니다. 겹겹이 포개진 골드 플레이트부터 다이아몬드로 채운 날렵한 비늘, 작은 골드 비즈를 촘촘히 이어 만든 표면까지 표현법은 제각각이지만 어떤 방식이든 자연스럽게 뱀의 피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 뱀을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 뱀을 뱀답게 만드는 움직임과 고유의 질감을 불가리만의 주얼리 언어로 바꾼 셈이죠. 그리고 그 비늘 하나하나가 움직임과 각도에 따라 화려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불가리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연상하는 대담하고 화려한 여성상에 세르펜티가 왜 그토록 잘 어울리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쇼파드에 가면 동물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예상하는 것부터 포기해야 합니다. 마치 뭔가를 먹다가 딱 걸린 듯한 표정의 판다가 있는가 하면, 커다란 여의주를 아홉 꼬리로 꼭 끌어안은 구미호는 만화 속 캐릭터처럼 사랑스럽고, 커다란 블루 스톤을 등에 얹은 고래는 금방이라도 물줄기를 뿜어낼 것처럼 역동적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동물을 꽤 유쾌하게 바라보는 메종인가 싶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돌변합니다. 용과 호랑이는 서로 마주 보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한바탕 붙었습니다. 발톱을 세우고 상대에게 달려드는 순간을 그대로 붙잡아 놓아, 하이 주얼리에서 ‘용호상박’을 이렇게 문자 그대로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귀여울 때는 한없이 익살스럽고, 싸울 때는 굳이 점잖은 척하지 않습니다. 동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장 우아하고 예쁜 순간만 골라 보석으로 남겨야 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이렇게 여러 메종의 동물을 들여다보고 나니 같은 동물도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주얼리가 된다는 사실이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결국 중요한 건 ‘무슨 동물을 만들었느냐’보다 ‘그 동물에게서 무엇을 발견했느냐’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을 수많은 주얼리를 오래 들여다봐서가 아니라, 뜻밖에도 진짜 고양이 한 마리와 살면서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2020년 10월 10일, 회색 코트를 입은 2개월령 아기 러시안 블루 고양이 한 마리가 저희 집에 왔습니다. 당시에는 까르띠에에 대한 애사심도 잔뜩 묻어 있던 시절이라 이름을 ‘팬더’라고 지었습니다. 판다(Panda)가 아니라 까르띠에의 Panthère에서 따온 ‘팬더’입니다. 제가 그때까지 가장 오랫동안 들여다본 고양잇과 동물이 까르띠에의 팬더였으니 당연한 작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팬더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제가 수없이 봐왔던 팬더 주얼리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에서 코로 이어지는 골격과 코의 생김새, 수염이 나는 앙증맞은 주둥이와 입가에 움푹 패인 굴곡과 같은 디테일부터 몸을 움직이는 방식과 사용하는 근육의 모양까지요. 늘어져 있다가 지나가는 저를 앞발로 툭 붙잡거나, 창문 난간을 짚고 몸을 길게 일으켜 밖을 내다보는 팬더를 보고 있으면 주얼리 속 팬더의 동작도 전과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특히 팬더가 다이얼 위를 360도 회전하는 주얼리 워치를 보고 있으면 캣휠을 타는 우리 집 팬더가 겹쳐 보입니다. 단순히 ‘표범 모양의 주얼리’를 만든 게 아니라, 이 동물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며 무엇을 즐기는지 정말 오래 보고 연구한 사람들이 만들었구나 싶었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건 눈이었습니다. 아기 때 회색빛이던 우리 팬더의 눈에는 자라면서 조금씩 노란 기가 돌기 시작했고, 완전히 성묘가 된 뒤에는 선명한 초록빛을 띠었습니다. 그 변화를 매일같이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차보라이트 가넷이나 에메랄드 같은 초록빛 컬러 스톤으로 눈을 표현한 까르띠에의 팬더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전에는 그저 강렬한 눈빛을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고양이의 눈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우리 팬더가 겹쳐 보이며 새삼 제가 다니던 회사가 참으로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제 보석함에는 아직 팬더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가격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제는 (언젠가) 꼭 한 점 가지고 싶습니다. 우리 팬더가 건강하게 제 곁에 있을 때, 함께 보낸 시간을 기념하면서요. 주얼리에서 이름을 따와 고양이에게 ‘팬더’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 고양이와 살며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그 주얼리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그렇게 아줌마 같다고 생각했던 동물 주얼리를 이렇게 간절히 갖고 싶어질 줄은 그때의 저도 몰랐겠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 집 팬더는 제 무릎 위에서 또아리를 틀고 타자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숙면 중입니다. 요 녀석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저는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한 채 까치발까지 해가며 무릎을 수평으로 유지하고 있고요. 까르띠에가 언젠가 이런 자세의 우리 팬더를 주얼리로 만들어준다면 좋겠습니다. 이름은 제가 하나 지어둘게요. ‘Panthère sur les genoux’, 무릎 위의 팬더 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