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마리봇의 요점 정리
  • 불가리는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에서 중국의 사유와 현대미술을 결합한 불가리 칼레이도스 전시를 개최하여 메종의 색채 유산을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 이번 전시는 색채의 과학, 색채의 상징성, 빛의 힘 등 세 가지 챕터를 통해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탐색합니다.
  • 지슬랭 오크레망 디렉터는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과 문화적 만남을 통해 현재의 정체성으로 진화한다고 전했습니다.

로마에서 피어난 불가리 1백 년의 색과 헤리티지가 상하이에 상륙했다.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를 따라 되짚은 여정과 헤리티지 큐레이터 디렉터 지슬랭 오크레망(Gislain Aucremanne)과 나눈 대화.

진주와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를 촘촘히 엮고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골드 네크리스.
BVLGARI HERITAGE COLLECTION, 1991.

“하나의 혁신이 메종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고 나면,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얼마나 파격적인 시도였는지를 잊기 쉽다.” 지슬랭 오크레망(Gislain Aucremanne) 헤리티지 큐레이터 디렉터는 오늘날 불가리를 상징하는 컬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메종의 정체성이 된 불가리의 컬러 역시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유럽 하이 주얼리 신에서는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 주얼리가 여전히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 불가리는 에메랄드와 루비, 사파이어뿐 아니라 애미시스트와 튀르쿠아즈 등 다채로운 젬스톤을 자유롭게 조합하며, 보석의 전통적 가치나 위계보다 함께 놓였을 때 만들어지는 색의 효과에 주목했다. 오늘날 너무나 익숙한 불가리의 색은 당시의 관습에서 벗어난 선택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렇다면 1백여 년에 걸쳐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온 불가리가 그 역사를 다시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무대로 왜 상하이를 택했을까. 지난 9월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Power Station of Art)에서 막을 연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 (Bvlgari Kaleidos: Colors, Cultures and Crafts)> 전시에서 선보인 상하이 에디션은 그 답을 불가리의 아카이브 안에서만 찾지 않는다.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과 세계 각 지의 주요 프라이빗 컬렉션에서 엄선한 3백여 점의 작품에 중국의 오행과 오색에 관한 사유, 중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놓았다. 로마에서 시작된 불가리의 색을 상하이라는 또 다른 문화적 배경 안에서 바라보기 위한 선택이다.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Power Station of Art)에서 펼쳐진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색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문화에 따라 어떤 의미를 지니며, 빛에 따라 어떻 게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불가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색채의 과학(The Science of Colors)’, ‘색채의 상징성(Color Symbolism)’, ‘빛의 힘(The Power of Light)’이라는 3개의 챕터로 풀어냈다.

첫 번째 챕터 ‘색채의 과학’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서로 다른 색을 한데 놓는 불가리의 방식이다. 1989년작 네크리스에서는 아쿠아마린을 중심으로 애미시스트와 루비, 다이아몬드가 한데 어우러진다. 색과 투명도가 각기 다른 젬스톤을 함께 놓았을 때 생기는 예상 밖의 조화가 이 챕터를 관통한다. 이러한 색의 조합을 특히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1991년에 제작한 골드 네크리스로, 양식진주와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다이아몬드처럼 색과 성질이 각기 다른 젬스톤이 한 작품 안에 대담하게 공존한 다. 각각의 보석보다 서로 만나 만들어내는 색의 관계에 주목한 불가리의 방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는 불가리가 색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조합하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 챕터 ‘색채의 상징성’에 이르면 질문은 같은 색을 서로 다른 문화가 어떻게 바라보는가로 옮겨간다. 색은 눈에 보이는 현상인 동시에 각 문화가 오랜 시간 의미와 기억을 쌓아온 대상이다. 같은 붉은색도 어떤 곳에서는 사랑과 열정을 떠올리게 하고, 중국에서는 행운과 번영을 상징한다.

이번 상하이 에디션은 서양의 색채 이론과 함께 중국의 오행과 오색에 관한 사유를 전시 안으로 끌어들였다. 1993년에 제작한 골드 네크리스의 루비 역시 중국 문화에서 붉 은색이 지닌 생명력과 번영의 의미와 연결된다. 그런데 상하이에서 불가리의 아카이브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중국을 비롯해 다른 문화와의 만남이 불가리에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불가리는 오래전부터 다른 문화에서 발견한 소재와 모티프를 자신들의 주얼리 안으로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1973년에 제작한 소투아르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골드에 산호와 오닉스, 다이아몬드를 세팅하고 중심에 중국의 인그레이빙 제이드 장식을 배치한 작품이다. 수십 년간 개인 컬렉션에 머물다 지난해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으로 돌아왔으며, 이번 상하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지슬랭 오크레망 역시 이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았다. 서로 다른 문화의 창조성을 결합해온 불가리의 오랜 관심이 중국의 제이드 장식과 로마 하이 주얼리의 장인정신이 만난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73년 로마에서 만들어진 주얼리가 반세기가 지나 상하이에서 처음 공개됐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방향은 달라졌지만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방식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루비와 옐로·핑크·블루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골드 네크리스.
BVLGARI HERITAGE COLLECTION, 1993.

전시의 제목인 ‘칼레이도스(Kaleidos)’도 이 지점에서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아름다움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칼로스(kalos)’와 형상을 뜻하는 ‘이도스(eidos)’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만화경을 뜻하는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 역시 불가리의 역사를 바꾸는 대신 바라보는 위치를 바꾼다. 로마에서 시작된 주얼리를 상하이라는 새로운 배경에 놓자, 익숙했던 작품 안에서 이전에는 지나쳤던 흔적과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챕터 ‘빛의 힘’에서는 색을 만들어내는 빛으로 시선이 향한다. 젬스톤의 색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애미시스트와 시트린, 핑크 투르말린, 사파이어,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를 조합한 1991년작 골드 네크리스에서는 투명도가 각기 다른 스톤들이 저마다 빛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오크레망이 말했듯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던 젬스톤의 움직임과 빛에 따라 달라지는 표면을 직접 마주하는 것 역시 이번 전시에서 발견한 즐거움이었다. 주얼리 안에서 살펴보던 색과 빛은 전시장 전체로 이어진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 량만치(Liang Manqi)와 장딩(Zhang Ding)은 각각 색과 빛을 공간으로 확장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고, SANAA와 포르마판타즈마(Formafantasma)가 협업한 전시 공간은 주얼리와 현대미술, 건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쇼케이스 너머로 가까이 들여다보던 색과 빛을 이제는 공간 속을 걸으며 경험하게 된다.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 상하이의 색이 이어진다. 황푸강 건너편의 빌딩과 오래된 건물, 새로운 건축물 사이로 붉고 푸른 빛이 겹쳐진다. 전시를 보기 전에도 보았던 풍경이지만, 보고 난 뒤에는 그 색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라우라 부르데제(Laura Burdese) 불가리 CEO는 “색채는 국경과 문명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예술 언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불가리 칼 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에서 만난 주얼리도 달라진 것은 없다. 1973년의 제이드도, 수십 년 전의 에메랄드와 루비도 그대로지만, 어디에서 어떤 시선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크레망이 인터뷰에서 “전시장을 나선 뒤 일상의 색을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 또한 이런 불가리의 정을 대변한다고 할 것이다.

INTERVIEW WITH

Gislain Aucremanne
불가리 헤리티지 큐레이터 디렉터 지슬랭 오크레망

불가리에 합류하기 전 루브르, 그랑 팔레, 파리장식미술관 등 유수의 문화 예술 기관에 몸담았다. 박물관에 속해 일하는 것과 브랜드의 일원으로 그 히스토리를 다루는 일 사이의 간극이 꽤 클 것 같은데. 메종에 합류하며 가장 크게 와닿은 건 역사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정체성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맡는 역할은 작품을 보다 넓은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보존하는 데 있는 반면, 불가리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메종의 고유성이 형성되고 발전되는 과정 그 자체다. 이 고유성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진화하며, 각각의 아카이브 피스는 메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주얼리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나의 주얼리가 그 시대에 어떤 의미였는지, 불가리에 대해 무얼 말해주는지, 당시의 메종은 어떤 관습을 뛰어넘었는지,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가 시간이 흘러도 메종의 정체성 안에 남았는지를 살피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다루는 건 역사를 완결된 장으로 바라보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받아들이는 일 같다.

불가리의 정체성 그 자체인 로마에 관해서는 어떤가? 이전과 시각이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로마를 형태와 색채, 소재와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대하게 됐다. 이전이라면 지나쳤을 법한 디테일, 이를테면 트래버틴(travertine)의 따뜻한 질감, 고대 석재와 현대 건축양식의 대비, 도시의 색채, 기하학과 장식 사이에 관계성이 이제는 자세히 보인다.

개인 컬렉터나 고객에게 이미 판매한 작품을 메종의 아카이브로 다시 돌려놓는 직무도 맡고 있다. 작품을 고를 때는 어떤 기준에 따르나? 주얼리 한 점의 중요도는 매우 다양한 요소에서 비롯되긴 하지만, 대체로 불가리의 창조적 역사 안에서 그 주얼리가 지닌 의미를 탐구한다. 또 메종의 디자인 언어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특정한 기법이나 소재의 사용 방식 측면에서 혁신을 이끌어냈는지, 혹은 메종에 의미 있는 시기에 탄생했는지도 유의미하고. 프로비넌스(어떻게 만들어졌고, 누구의 소유를 거쳤는지에 관한 이력)도 살핀다.

이런 법칙을 따르지 않는 사례도 있나? 어떤 작품은 그간 쉽게 드러나지 않은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정받는다. 실험적 시도를 내포하거나 이질적 소재의 조합으로 완성되고, 이후 확장하지 않던 디자인의 방향성을 기록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작품들은 메종이 지나온 세월을 이해하는 데 큰 단서를 제공한다. 이렇듯 불가리는 화려하고 뛰어 난 주얼리뿐 아니라, 역사를 온전히 대변할 만한 작품을 남기려고 한다.

작품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얻는 보석 이외의 가치도 많을 것 같다. 발견에는 언제나 큰 즐거움이 따른다. 때로는 사진 한 장이나 오래된 카탈로그, 아카이브 속 메모에서 출발해 한 점의 주얼리에 얽힌 이야기를 복원하기도 하는데, 메종을 떠나 있던 작품을 발견했을 때는 마치 한 권의 책에서 사라졌던 장을 되찾은 것처럼 기쁘다. 또 주얼리는 개인의 역사를 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컬렉터나 이전 소장자와의 대화를 통해 기록으로 남지 않은 장면들을 접하는 행운도 누린다.

무엇을 헤리티지로 남길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일에는 큰 책임이 뒤따를 듯한데. 수십 년, 때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 작품을 다루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렇다). 우리 팀은 스스로 긴 역사 속에서 이 작품들을 잠시 맡아 보존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언제나 엄정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시대에 따라 형태와 소재가 달라져도 불가리의 작품에는 일관된 정체성이 흐른다. 세르펜티 역시 끊임없이 변모했지만, 우리는 그 모든 모습을 단번에 ‘세르펜티’로 인지하지 않나. 이 힘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매우 강한 본질, 그리고 진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세르펜티의 경우 그 본질이 뱀이라는 존재의 특성에 기반한다. 유연한 움직임, 몸을 감싸는 방식, 변신과 재생 그리고 매혹을 상징하는 이미지처럼 세르펜티에는 단단한 중심이 있다. 그 덕에 메종은 세르펜티를 고정된 이미지로 다루는 대신 다양한 소재와 기법, 비율, 문화적 레퍼런스로 재해석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아이콘과 로고의 차이가 아닐까? 자기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모습일 필요가 없다는 대목에서 말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불가리의 헤리티지라 부르는 특징들 역시 처음 탄생한 순간에는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난 시도였을 터다. 그렇다면 하나의 혁신적 디자인은 언제 헤리티지로 분류된다고 생각하나? 한 작품이 메종의 거시적 역사 안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점하게 되는 때 비로소 헤리티지로 거듭나는 것 같다.

지금 만들어지는 주얼리를 보며 헤리티지로 남게 되리라 예감한 적도 있나? 그런 찰나가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신중을 기하려고 한다. 우리는 현재와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역사적으로 남는 작품이 될지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러나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습에 질문을 던지며, 소재와 형태를 메종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를 지닌 작품 안에서는 가능성을 엿보곤 한다.

상하이에서 열린 이번 전시,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Bvlgari Kaleidos: Colors, Cultures and Crafts)>에서도 관습을 넘어선 시도들-특히 색채를 다루는 방식에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의 혁신이 메종의 언어로 자리 잡고 나면,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 얼마나 파격적인 시도였는지는 잊히게 마련이다. 오늘날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애미시스트, 튀르쿠아즈가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불가리적’이라 일컫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당시 유럽 주얼러의 관점에서 보면 컬러 젬스톤을 이토록 우아하게 조합하고, 보석의 값어치에 따른 위계보다 시각적 효과를 우선시해 배치한다는 발상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과거의 작품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실물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실물을 마주하는 경험은 작품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사진을 통해 디자인이나 색감을 알 수는 있어도 크기나 무게, 움직이는 방식, 표면이 빛에 반응하는 모습을 온전히 알기는 어렵지 않나. 장인의 손길이 남긴 흔적이나 소재 간의 관계, 세팅의 정밀도 같은 건 직접 보아야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의 설치 방식도 관람객이 작품 주위를 돌며 측면과 뒷면까지 면밀히 살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수십 년 전 만들어진 주얼리 앞에 서서 누군가 그것을 착용하고 삶의 일부로 여겼다는 감각을 떠올리는 때 작품은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가지게 되리라 믿는다.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해석하자면 하이 주얼리는 극소수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나 전시라는 형태를 통과하는 순간, 감상의 대상으로 그 지위가 전환되어 일종의 문화적 통로로 기능한다. 이처럼 하이 주얼리가 지닌 문화적·공공적 역할을 체감한 순간이 있나? 역사적 주얼리는 전시장에 놓이는 순간 미학과 사고방식을 확장하는 매개가 된다. 이 일을 하며 주얼리에 대한 사전 지식 없는 관람객이 작품에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처음에는 색과 형태, 작은 디테일처럼 시각적 요소에 이끌리다가도 어떻게, 언제 제작되었는지 궁금해지는 찰나가 있다. 이 장면은 주얼리가 물질적 가치 이상의 것을 운반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전시 작품 중 역사적으로, 조형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피스는 무엇인가? 먼저 역사적으로는 소투아르 네크리스를 꼽고 싶다. 서로 다른 문화의 창의성을 결합해온 불가리만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작품으로, 중국의 제이드를 로마 하이 주얼리의 장인정신에 접목한 점이 신선하다. 1973년 제작된 이후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지난해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에 편입됐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다. 서사적으로는 테이블 클록이 떠오른다. 로마 팔라초의 외벽을 연상시키는 이 진귀한 오브제는 궁전으로 치면 창문이 자리할 법한 위치에 다이얼을 배치했다. 뾰족한 뒷면을 앞으로 향하도록 세팅해 돌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하는 로마 건축의 ‘부냐토(bugnato)’ 마감 방식과 같은 질감을 표현했고, 양옆의 필라스터(납작한 사각기둥 형태의 건축 요소)로 이탈리아 건축의 미감을 드러냈다. 또 개인적으로는 부임 이후 헤리티지 컬렉션을 위해 매입한 초기 네크리스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대담한 색채 조합과 기하학적 디자인이야말로 1980년대 불가리의 창의성을 완벽히 표현하는 사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탈리아 밖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게 됐다.

지슬랭 오크레망이 헤리티지 컬렉션을 위해 매입한 초기 네크리스. 사파이어, 루비, 다이아몬드의 조화가 돋보인다.
BVLGARI HERITAGE COLLECTION, 1985.

그처럼 역사와 보물을 다루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주얼리에 헌신하며 보내는 시간이 지슬랭 오크레망이라는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역사를 깊이 의식하다 보면 시간 감각이 달라진다. 내가 만지는 작품들은 나와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바라건대 내가 떠난 뒤에도 영원히 남아 있을 테니까. 이러한 사실은 내가 더 큰 흐름의 일부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겸손한 태도를 갖도록 이끈다.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아름다운 삶에 대해 정의해본 적이 있나? 호기심을 잃지 않고, 무언가를 충분히 깊이 들여다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 아닐까? 큐레이터로 일하며 아름다움이 단지 눈에 보이는 데에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 장인정신, 창의성을 발견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아름다움의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여러 시대의 역사와 아름다움이 켜켜이 쌓인 로마를 걷다 보면 그 경이로움을 지키고 전달하는 것까지가 우리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를 보고 전시장을 나서는 관람객의 마음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찾아들기를 바라나? 색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 단순히 메종의 색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마의 일상에서 색 자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원한다. 빛에 따라 색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문화에 따라 어떻게 읽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감정과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기를 말이다. 불가리 칼레이도스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색을 경험하고 바라보는 방식을 열어주는 데 의의를 둔다. 관람객이 이 경험 이후 주변 세계를 더 세심하게 바라보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면 전시는 몫을 다하는 게 아닐까.

Q&A
AI 마리봇의 Q&A
A
다이아몬드 중심의 화이트 주얼리가 주류던 시절, 보석의 가격 위계보다 색의 조화에 주목해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애미시스트 등 다양한 젬스톤을 대담하게 조합했습니다.
A
전시는 '색채의 과학(The Science of Colors)', '색채의 상징성(Color Symbolism)', '빛의 힘(The Power of Light)'의 3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
중국의 제이드 장식과 로마 하이 주얼리의 장인정신이 결합되어 1973년에 제작된 '소투아르' 네크리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