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다코바가 자연을 향한 인간의 무심함과 부끄러움을 담은 2027 S/S 컬렉션을 파리 패션위크에서 공개했습니다.
- 호다코바의 2027 S/S에서는 어망, 밧줄 등 이미 존재했던 소재를 새로운 옷으로 재구성하며 인간이 자연에 남긴 흔적을 컬렉션 곳곳에 담아냈습니다.
- 모델들의 눈 위에 붙인 또 다른 눈은 우리가 외면해온 환경 문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호다코바의 2027 S/S로 다시 마주하는, 자연을 향해 외면해온 시선들.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자연을 향한 호바코다의 선언
파리 패션위크가 시작된 첫날은 대개 차분하게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보통 손꼽히는 메종들이 둘째 날부터 등장하거나, 마지막으로 흘러갈수록 더 화려하고 강렬한 쇼들이 펼쳐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호다코바는 2027 S/S 시즌 파리 패션위크의 문을 도발적이고 초현실적인 시선으로 열며 현장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밴 듯 연출된 바닥 위로 낡았지만 아름다운 옷을 걸친 모델들이 등장했고, 관객들의 발은 먼지와 가루로 더럽혀졌죠. 몇몇의 스칸디나비아 출신 디자이너들이 그러하듯, 호다코바를 이끄는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Ellen Hodakova Larsson) 역시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컬렉션 또한 그런 그가 자연을 향해 느끼는 부끄러움으로 시작되었는데요. 그 부끄러움은 거창한 사건이 아닌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마주하고도 애써 외면해온 장면들에서 비롯됐습니다. 인공지능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는 전 지구적 환경 문제와 자연 파괴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단 몇 초 만에 완성되고 버려지는 옷들을 사고, 우리 안에서 갇혀 자란 동물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사 먹습니다.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산림을 깎아내기도 하고, 단순한 재미를 위해 플라스틱 장난감을 사고 버리기도 하고요. 자연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느껴야 할 부끄러움, 그리고 물음을 그는 파리의 정원 위에 펼쳐보였습니다. 모두가 알지만 외면해왔던 그 진실들이 옷으로 하나둘씩 모습을 바꾸며 태어났죠.
인간이 남긴 흔적들로 채워진 룩
호다코바의 이런 성찰은 소재 곳곳에서 구체화됐습니다. 튼튼한 왁스 코팅 원단으로 만들어진 보우 포인트 드레스와 트렌치 코트 뒤로 돛에 쓰였던 천을 업사이클링한 룩들이 이어졌고, 팬츠를 뒤집거나 재조합해 만든 독특하면서도 심플한 미니 드레스가 등장했습니다. 이후로는 어망과 굵은 밧줄 같은 낚시 도구로 만든 룩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는데요. 여기서 어망을 통째로 활용한 드레스나 머리 위까지 덮는 탑은 등장만으로도 현장의 분위기를 압도했고, 그물로 만든 스커트에는 부표를 웨이스트 라인에 둘러 벨트처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또, 각기 다른 컬러의 어망을 늘어뜨려 프린지처럼 활용한 드레스는 밑단에서 해초같은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만물의 근원, 물로 흠뻑 적셔진 드레스와 셋업까지. 자연 그 자체와 인간의 손길,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룩들이 서로 다른 결을 이루며 완성됐습니다.
현장 관객들에게 낯선 충격을 준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눈 위에 붙여진 또 다른 눈. 실물과 다름없는 극사실적인 눈 스티커로 호다코바는 그동안 눈을 감고 모른 척했던, 자연을 향한 우리의 무심함을 직관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모델들이 걷기 위해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이질적인 장면들이 펼쳐지며 현장을 깜짝 놀라게 했죠. 룩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이번 컬렉션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새로 쓰지 않는다, 호다코바라는 철학
스웨덴의 한 농장에서 자란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은 재봉사였던 어머니와 군인이었던 아버지 곁에서 옷과 사물을 고쳐 쓰는 법을 익히며 자랐습니다. 이후 그는 조각과 회화를 공부하고, 스웨덴 국립 텍스타일 학교를 거쳐 스톡홀름에 할머니의 성을 딴 호다코바를 설립했죠. 브랜드가 지닌 철학은 단 하나, 아무것도 새로 쓰거나 만들지 않는다는 것. 버려진 가죽 벨트와 부츠, 첼로, 침대 시트, 숟가락 그리고 그림에 이르기까지, 이미 존재하다 버려진 사물만을 재료로 삼아 독창적인 피스들을 완성해냅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기도 하죠. 그의 이런 대담한 시도는 2024년 열린 제11회 LVMH 프라이즈에서도 결실을 맺었는데요. 전 세계 약 2500명에 달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해, 스웨덴 출신 디자이너로는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100% 폐자재만으로 완성된 아방가르드한 작업들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브랜드의 이름을 세계 패션계에 각인시켰습니다. 버려졌던 것들에 새로운 쓰임을 주는 그의 방식은 지금도 럭셔리를 다시 정의해나가고 있죠.
이번 컬렉션이 전한 것은 화려한 룩 한 벌이 아니라, 그동안 지나쳐온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이미 존재했던 것들이 다른 얼굴로 다시 태어나 곁에 남듯, 그가 남긴 메시지 역시 쉽게 잊히지 않고 마음에 남을 듯하죠. 자연과 인간 사이 불편한 관계를 향한 이 솔직한 이야기는 브랜드의 다음 페이지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