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마리봇의 요점 정리
  • 레이 카와쿠보는 파리에서 열린 꼼데가르송 2027 S/S 쇼에서 데님 등의 평범한 소재를 과장되게 부풀려 왕실 예복 못지않은 위엄을 만들어냈습니다.
  • 드레스의 갈라진 틈 사이로 프릴과 헤어피스, 금빛 장식, 자카드 원단이 비집고 나오며 환상과 현실이 한 벌 안에서 기묘하게 뒤섞였습니다.
  • 가벼워진 왕관과 거대해진 데님을 나란히 세운 이번 컬렉션은 오늘날의 권위와 특별함의 기준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거대한 데님과 헐거워진 왕관 사이에서 익숙한 위계를 기묘하게 뒤집은 꼼데가르송 2027 S/S.

@marieclairekorea 마리끌레르 코리아 인스타그램

기묘하게 부풀어 오른 데님

지난 10월 3일(현지 시간), 파리에서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2027 S/S 컬렉션이 공개됐습니다. 실험적인 구조와 과장된 볼륨으로 위압적인 실루엣을 선보여 온 레이 카와쿠보(Kawakubo Rei)는 이번 시즌 화려한 레이스와 새틴, 브로케이트 대신 익숙한 데님으로 기묘한 왕실의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물론 평범한 청바지가 아닌,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삼킬 듯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데님으로요. 한껏 부풀린 볼륨은 눈사람처럼 둥글게 몸을 감싸다가도, 기타 케이스를 닮은 곡선을 그리며 예상치 못한 실루엣으로 이어졌습니다. 머리 위로는 천을 얼기설기 쌓은 왕관이 솟아 올랐고, 붉은 프릴과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이 틈을 비집고 쏟아져 나왔죠. 마치 꿈을 꾸는 듯 뒤틀려 나타난 듯한 이 낯설고 비현실적인 장면을 카와쿠보는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When royal life and everyday life become one(왕실의 삶과 일상이 하나가 될 때)”. 왕관과 청바지, 궁정의 장식과 평범한 옷감이 엉킨 이번 컬렉션은 바로 그 두 세계가 맞닿는 순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렇듯 대담하고 모험적인 런웨이는 의외로 일상적인 소재와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작업복에 사용될 법한 굵은 스트라이프 데님과 코튼 캔버스, 개버딘처럼 옷장에서 쉽게 엿볼 수 있는 원단이었죠. 한편 낯설게 부피를 키운 옷 안에서 낯익은 형태를 발견하는 것도 이번 쇼의 묘미였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데님 팬츠에서 보이는 스티치와 절개선, 트렌치코트와 봄버 재킷의 형태, 패딩을 닮은 구조가 녹아있었으니까요.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옷을 권위 있어 보이게 만드는 건 정말 값비싼 천일까요? 적어도 이번 꼼데가르송 컬렉션 속 데님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몸을 압도할 만큼 크게 부풀리고 왕관과 궁정의 장식이 더해지자 왕실의 예복 못지않은 위엄을 갖췄거든요. 카와쿠보는 가장 평범한 소재를 가장 낯선 옷으로 바꿔놓으며 당연하게 여겨온 권위의 기준을 가볍게 뒤집었습니다.

틈 사이로 새어 나온 위트!

이번 컬렉션의 재미는 압도적인 크기의 볼륨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부푼 원단을 비집고 파격적인 컬러와 소재가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위아래로 이어 붙인 거대한 구 모양의 드레스에서는 새빨간 프릴과 튤이 껍질을 깨듯 솟아났고, 옷 사이로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마치 얼굴 없는 존재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묘한 섬뜩함을 남겼습니다. 브라운 폴카 도트 드레스의 굽이치는 가장자리를 따라 금빛 프린지가 출렁이는가 하면, 쿠션처럼 부풀린 핀스트라이프 사이로는 선명한 핑크 프릴이 파고들었죠. 한편 투박한 카키 컬러 사이로 번쩍이는 골드 자카드 원단을 내보인 드레스는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피스였는데요. 거친 겉감 안쪽으로 궁정의 커튼과 가구를 연상케 하는 고급스러운 직물을 부자연스럽게 끼워 넣으며, 일상적인 옷감과 왕실의 장식을 한 벌 안에 겹쳐 놓았습니다. 이렇게 런웨이 곳곳에 등장한 금빛 프린지와 술, 브레이드는 파스망트리(passementerie) 기법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과거 궁정복과 군복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사용되던 장식이 평범한 소재와 나란히 놓이며 왕실의 삶과 일상의 경계를 허문 셈이죠. 다만 그 만남은 자연스럽게 융화되기보다 아름다운 것과 기이한 것이 서로 밀어내고, 비집고 나오며 묘한 불편함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왕관을 쓴 사람들

이처럼 왕실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진 건 옷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런웨이에 나타난 왕관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자르고 남은 듯한 천 조각을 높이 쌓아 올리고, 금색 포일을 뒤집어쓴 듯한 형태로 등장하며 특유의 근엄함을 덜어냈습니다. 반대로 가장 평범한 데님은 갈수록 몸집을 키웠죠. 쇼의 피날레에는 과장된 데님 쇼츠와 둥글게 부푼 배럴 팬츠, 바닥을 쓸 만큼 넓어진 청바지가 연달아 등장하며 위압감을 드러냈는데요. 가장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왕관이 가볍고 허술해지는 동안 데님 팬츠는 오히려 왕실 예복 못지않게 위풍당당해진 셈입니다. 이처럼 가벼워진 왕관은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권력과 화려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호화로운 삶과 막강한 영향력은 더 이상 왕실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셀러브리티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드러내고, SNS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근사하게 연출해 보여줄 수 있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한 번쯤 왕관을 써볼 수 있는 시대. 이번 컬렉션에서 레이 카와쿠보는 그 왕관이 여전히 특별한지 조용히 되묻는 듯합니다.

Q&A
AI 마리봇의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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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카와쿠보는 오래전부터 옷을 단순히 몸에 입는 물건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실루엣에 과장된 변화를 주고, 때로는 조각이나 오브제처럼 보이게 만들며 옷을 정의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죠. 이런 작업 방식은 201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전시는 ‘옷과 옷이 아닌 것’, ‘오브제와 몸’처럼 서로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개념의 경계를 그가 어떻게 흐려왔는지 담아냈는데요. 이는 1983년 이브 생 로랑 이후 메트 의상연구소가 현역 디자이너를 단독으로 조명한 첫 전시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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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드레스와 스커트의 볼륨을 키우기 위해 옷 안에 착용하던 구조물입니다. 파니에는 18세기 유럽에서 허리 양옆을 넓게 벌려 납작하고 넓은 실루엣을 만드는 데 사용됐고, 크리놀린은 19세기 중반 철제 후프를 이용해 스커트 전체를 둥글고 풍성하게 부풀리는 방식으로 유행했는데요. 이번 시즌 카와쿠보는 이 역사적인 실루엣을 훨씬 불규칙하고 과장된 형태로 비틀어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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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로 1997 S/S ‘Body Meets Dress–Dress Meets Body’ 컬렉션이 있습니다. 배와 등, 엉덩이처럼 예상치 못한 부분에 패드를 넣어 불룩하게 부풀리며 익숙한 신체 비율을 완전히 뒤바꿨죠. 당시 울퉁불퉁하게 솟아난 형태는 ‘Lumps and Bumps’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는데요. 옷을 몸에 맞추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몸의 형태를 만들어낸 이 기발한 실험은, 30년 가까이 지난 이번 2027 S/S의 과장된 실루엣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