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미국을 되짚은 어드바이저리부터 자유로운 우회를 그린 콜리나 스트라다, 거대한 곤충 정원을 펼친 톰 브라운까지. 상상력으로 가득 찬 2027 S/S 뉴욕패션위크의 마지막 하루를 돌아봤습니다.
일곱 개의 쇼가 채운 피날레
9월 10일부터 엿새간 이어진 2027 S/S 뉴욕패션위크가 막을 내렸습니다.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 CFDA)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매 시즌 뉴욕의 주요 브랜드들이 다음 해 봄여름 컬렉션을 가장 먼저 선보이는 자리인데요. 이번 시즌에는 약 70개의 런웨이 쇼와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지며 뉴욕 곳곳에서 다가올 계절의 장면들이 한발 먼저 피어났습니다. 쉼 없이 이어진 런웨이는 마지막 날까지 예상하기 어려운 장면들로 이어졌죠. 1970년대 미국을 되짚은 컬렉션부터 애벌레와 나비가 등장한 동화 같은 무대까지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뉴욕다운 피날레를 완성했습니다.





50년 전 미국에서 미래를 바라본 어드바이저리
어드바이저리(Advisry)의 디자이너 키스 헤론(Keith Herron)은 지금의 미국을 이야기하기 위해 5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쇼의 객석에는 약 50년 전, 아버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가족 사진을 인쇄한 부채가 놓였는데요. 그가 선보인 2027 S/S 컬렉션 이름 역시 ‘America, Still’. 정치와 문화가 요동쳤던 1970년대를 통해 오늘날 미국을 다시 들여다본 것이죠. 키스 헤론은 “어느 세대든 자신들이 세상의 끝을 지나고 있다고 느끼기 마련이기에 50년 전의 시선으로 오늘의 미국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겹쳐 본 그의 시선은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된 런웨이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첫 장면에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의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을 연상케 하는 거친 워싱의 데님과 오버사이즈 코트, 몸을 옥죄는 형태의 재킷이 등장했죠. 이어 두 번째 막에서는 검은 수트와 체크 패턴, 각진 어깨의 실루엣을 선보이며 한층 경직된 분위기를 이어갔고요. 마지막에는 반짝이는 스웨터와 스팽글을 더한 쇼츠를 통해 앞선 긴장감을 걷어내고 화려한 피날레를 만들어냈습니다. 10여 년 전 그래픽 티셔츠와 후디로 출발한 어드바이저리는 이제 옷으로 한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불안을 되짚으면서도 낙관적인 결말을 택한 브랜드의 시선이 다음에는 어디를 향할지 궁금해지네요.





정해진 길 밖에서 자유를 찾은 콜리나 스트라다
때로는 조금 돌아가는 길에서 예상치 못한 재미있는 풍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콜리나 스트라다(Collina Strada)의 디자이너 힐러리 테이머(Hillary Taymour)는 2027 S/S 컬렉션 ‘Detour’, 즉 ‘우회’를 통해 익숙한 길을 벗어났을 때 마주하는 새로운 즐거움에 주목했는데요. 쇼가 열린 곳은 뉴욕 도심에서 한참 벗어난 허드슨 밸리의 스톰 킹 아트 센터. 드넓은 잔디와 거대한 조각 작품 사이로 모델들이 걸어 나오자 컬렉션 전반을 물들인 선명한 색감과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죠.
런웨이 위 옷들은 시대와 스타일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낭만적인 드레스를 연상케 하는 풍성한 러플부터 카고 디테일을 더한 실용적인 팬츠와 2000년대 초반의 반항적인 펑크 무드까지 한자리에 불러 모았죠. 여기에 데드스톡 원단과 오가닉 코튼, 재생 스팽글처럼 기존의 재료를 다시 활용하거나 환경 부담을 줄인 소재를 더하며 브랜드 특유의 지속가능한 방식도 이어갔습니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가벼운 드레스와 겹겹이 쌓인 레이어는 야외 풍경과 어우러지며 더욱 극적으로 살아났고요. 피날레에는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칼리 레이 젭슨(Carly Rae Jepsen)이 등장해 무르익은 분위기에 경쾌한 리듬을 더했는데요. 이어서 모델들은 잔디 위를 달리고 춤추며 쇼의 마지막을 유쾌하게 장식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번 컬렉션의 주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죠. 어쩌면 진정한 자유로움은 정해진 길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껏 헤매보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톰 브라운의 런웨이에 등장한 곤충 정원
개미 한 마리에서 출발한 상상력은 런웨이 전체를 거대한 곤충 정원으로 바꿔놓았습니다. 톰 브라운(Thom Browne)은 개미가 그려진 초대장으로 이번 시즌의 힌트를 먼저 건넸는데요. 이어진 런웨이에는 줄지어 걷는 개미부터 옷 위를 날아다니는 벌과 잠자리까지 다양한 곤충 모티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무당벌레의 둥근 몸과 딱정벌레의 단단한 껍질은 과감하게 부풀린 치마와 입체적인 실루엣으로 변주되었고, 벌 장식을 얹은 재킷과 개미 모양의 비즈를 촘촘히 수놓은 피스는 작은 곤충들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양봉가의 모자를 닮은 헤드피스와 커다란 나비가 내려앉은 듯한 펌프스까지 더해지며 톰 브라운만의 위트로 풀어낸 엉뚱한 디테일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죠. 1998년 픽사(Pixar)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A Bug’s Life)’의 세계를 다시 꺼내든 이번 컬렉션은 지난 6월 밀라노에서 공개한 2027 봄 남성복 컬렉션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는데요. 쇼의 시작과 끝에는 무용수들까지 등장해 런웨이를 한층 극적인 무대로 바꿨습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톰 브라운은 익숙한 테일러링에 엉뚱한 곤충의 세계를 겹쳐 보이며 이번 패션위크의 마지막을 가장 유쾌하게 장식했습니다.


50년 전 미국을 다시 들여다본 어드바이저리와 작은 곤충의 세계를 거대한 무대 위에 펼쳐낸 톰 브라운. 서로 다른 이야기를 과감하게 펼쳐낸 두 컬렉션은 뉴욕의 런웨이를 마지막 날까지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이번 뉴욕패션위크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오간 쇼들을 끝으로 막을 내렸는데요. 뉴욕의 바통을 이어 받아 다음 도시에서는 또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