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시즌 아티스트와 교감하며 새로운 컬렉션의 실마리를 찾는 알버트 크리믈러. 그가 이번 시즌 주목한 아티스트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마르타 융비르트(Martha Jungwirth)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강렬한 색채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화면에 기록하고, 이를 독일어로 ‘감정의 색(Gefühlsfarben)’이라 칭한 융비르트. 크리믈러는 그의 작품에 대해 “눈으로 보는 만큼 마음으로 느끼는 색”이라고 말하며,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주제로 삼았다.

런웨이는 대담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을 연상시키는 디테일로 가득했다. 강렬한 스칼렛 레드에서 시작된 색의 여정은 라벤더와 피치를 거쳐 차분한 아이보리, 캐멀, 블랙으로 이어졌고, 이내 민트와 오션 블루, 옐로, 오렌지로 찬란하게 번져 나갔다. 여기에 오간자와 실크 코튼, 울의 유연한 텍스처와 나파 레더, 스웨이드의 풍부한 질감이 어우러지며 감각적인 대비를 이룬 것. 아크리스는 이를 통해 ‘조용한 럭셔리’에 생동감 넘치는 변주를 더했다.
크리믈러는 융비르트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사용한 ‘지진계처럼 기록한 일기’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땅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포착하는 지진계처럼, 크리믈러 역시 이러한 태도를 옷으로 옮겨 컬러와 소재, 디테일에 감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기쁨과 슬픔처럼 하루에도 수없이 교차하는 감정은 물론, 완벽하지 않은 순간마저 컬렉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옷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냈다.

예술을 옷의 형태로 옮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정을 형태로, 순간을 실루엣으로 변주한 아크리스의 2027 S/S 컬렉션. 정교한 테일러링과 절제된 우아함 위에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색을 입히며, 옷이 한 사람의 내면을 얼마나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