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커버를 위해 샤넬 룩을 입고 한옥에서 자유롭게 노는 듯한 모습을 담았어요. 우연이 맞아떨어진, 반가운 촬영이었어요. 한옥을 배경으로 샤넬 화보를 찍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거든요. 해외 브랜드와 한국의 전통미가 조화를 이룰 때 참 아름답더라고요. 한옥의 청록색과 붉은색이 오늘 입은 화려한 색감의 옷들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최근 <무빙> 시즌 2 촬영이 한창이죠. 작품과 맺은 인연이 한 번의 만남과 이별에 그치지 않고 이어지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시즌 1이 사랑받은 덕분에 다음 시즌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벅차고 고맙죠. 첫 촬영일 기준으로 5년 만에 ‘(장)희수’와 재회했는데도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다가 다시 호흡을 맞추는 분부터 새롭게 합류한 분까지, 시즌 2의 멤버들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해요.
두 번째 시즌인 만큼 익숙한 지점이 있겠지만, 그렇기에 생기는 과제도 있을 거라 짐작 해요. 그렇죠. 촬영 초반에는 시즌 1과 똑같이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는데요. 막상 현장에 가보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이전 시즌과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순간에도 조금씩 다른 표현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제가 배우로서 요즘 가진 고민을 풀어줄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어떤 고민을 품어왔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어느덧 8년 차가 되었고, 10여 개 작품에 함께했더라고요. ‘아무리 경험이 많이 쌓이더라도 답습이 아닌 변화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으로 늘 임해왔는데요. 시간이 흘러 마흔한 번째 캐릭터를 만나면, 앞서 맡았던 캐릭터들과 겹치는 부분이 없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매 순간 새로운 모습을 지향하는 게 맞는지, 그간의 연기를 응용해도 되는지를 두고 고민이 생겼죠. 그런데 <무빙> 시즌 2 현장에서 느꼈듯이, 이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비슷한 말투나 표정을 쓰더라도 달리 보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사이 배우고 얻은 것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배우로서 성장한 면면이 표현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기를 바라게 되었어요.
부단히 성장하다 보면 색다른 연기에 도전할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까요? 최근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영화 <남벌>처럼요. <서울의 봄>과 <파묘> 등에 함께한 이모개 촬영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9인의 무사가 왜구에게 납치된 포로를 구하기 위해 대마도로 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라고요. 맞아요. 영화는 2022년에 개봉한 <헌트> 이후 두 번째고, 무협 액션을 다루는 사극은 처음이거든요. 어떤 현장일지 기대하고 있어요.
고윤정 배우의 향후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건 출연작 대부분이 큰 호응을 얻은 덕분이기도 해요. 작품을 선택할 때 무엇을 중시해요? 제일 먼저 보는 건 이야기의 재미예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서 빨리 읽히는 대본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다음에는 캐릭터의 쓸모를 살펴봐요. 서사를 탄탄히 이끌어가거나 어느 순간 감정을 터뜨리는 등 작품 안에서 어떤 장치를 맡는지를 중시하는 거죠. 그런데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비로소 끌리는 것 같아요. 그 매력이 돋보일 수 있도록 더 많이 연구하려고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변은아’,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차무희’,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오이영’ 등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치로 펼쳐내 며 그들의 일상을 몸소 겪어보고 있죠. 낯설면서도 귀한 경험이 되어줄 것 같아요. 엄청난 행운이죠. 제가 배우고 싶은 게 많고, 자주 바뀌는데요. 배우는 짧으면 몇 달, 길면 약 1년 동안 자신을 바꿔내잖아요. 산부인과 레지던트였다가 영화사 PD가 되고, 고등학생으로 되돌아오기도 하고, 신녀로서 혼이 바뀌는 경험도 할 수 있죠. 이렇듯 변화를 필요로 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그 역량이 드러나는 일이 내 업이라니! 이 즐거움은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잠시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작업을 통해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세상에 없던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데서 오는 감동이 있어요. 최근에 임철수, 전미도 선배님이 출연하시는 연극 <갈매기>를 봤는데요. 그런 고전처럼 여러 버전으로 재탄생하는 작품이 아닌 이상, 하나의 캐릭터는 한 명의 배우만이 맡을 수 있잖아요. 아무도 구현해두지 않은 캐릭터를, 모방이 아닌 저만의 방식으로 그려갈 수 있다는 게 특별하게 여겨져요.
스스로 만들어낸 캐릭터의 삶을 시청자와 함께 나누는 일도 뜻깊게 다가오죠? 그럼요. 작품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전사까지 알아봐주고, 그 삶에 몰입해주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마치 작품 속 세계관의 천재들 같아요.(웃음) 신기하죠. 그만큼 책임감도 크게 느껴요. 캐릭터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들어서 더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시청자 입장에서 사랑해 마지않은 캐릭터가 있다면요?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이요. 약 20년 전의 윤은혜 선배님이 그 캐릭터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할 정도예요. 실제로 고등학생 때부터 매해 여름마다 꺼내 보고 있어요.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붕어빵을 사 먹는 것처럼요.(웃음) 보고 있으면 10대 후반의 제가 이 드라마를 보던 순간들이 떠올라요. TV 앞에 앉아 있는데 거실 문이 살짝 열려 있고, 그 틈으로 매미 소리가 들리고. 이렇듯 계절을 느끼게 하고,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이 남긴 인상은 한 시절의 추억이자 기록이 되어주기도 하죠. 언젠가 고윤정 배우의 출연작을 그렇게 여기는 사람을 마주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그 순간에는 크게 실감 나지 않을 듯한데요. 이후의 삶 속에서 그날을 자주 되새길 것 같아요. 저한테 아주 큰 힘이 되어주겠죠? 그분에게 대본집이든 뭐든 꼭 쥐여줄 거예요.(웃음)
한 작품을 아끼면 캐릭터뿐 아니라 배우에게도 애정이 생기곤 하죠. 그래서인지 고윤정 배우가 출연한 콘텐츠의 반응이 뜨거워요. 수더분한 면을 좋아하는 분이 많은 듯한 데, 타고난 성향에 가깝나요? 그런 것 같아요. 벌어지지 않은 일로 괴로워하거나, 걱정을 오래 붙들고 있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 덕분인지 평소 스트레스 지수가 높지 않아요.
지난 5월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하며 “마음이 힘들거나 불안할 때 스스로 정리하는 편”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네요. 내면을 다스리고 다독이는 비결이 궁금해요. 목표가 생기면 오직 그것만을 바라봐서 그런가 봐요. 무언가를 향해 갈 때 잡념이 사라지더라고요. 돌이켜보니 대학 입시도, 체력 관리도 눈앞의 길을 열심히 나아가면서 잘해낸 것 같아요. 이뤄낸 순간의 뿌듯함이 아주 크더라고요. 그게 제가 요즘 레고에 빠진 이유이기도 해요. 설명서를 따라 조립하는 데만 매진하면 어느새 차 한 대가 완성되어 있거든요. 집 한편에 미니 주차장을 만들어놨어요.(웃음) 이런 식으로 한 가지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 머릿속을 깨끗하게 하고, 내면을 다스려줄 거라고 생각해요.
내면이 정돈되어 있을 때 비로소 주변을 헤아리게 되기도 하죠. 최근 고윤정 배우의 팬인 리센느 멤버들에게 선물을 전했다는 일화 등을 접하면서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어요. 누군가를 챙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어요. 선물을 준비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이 사람한테 뭐가 필요할까? 어떻게 포장해서, 언제 어떤 말과 함께 건네줄까? 이걸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저한테도 설렘과 행복을 안겨주더라고요. 선물을 주는 제가 오히려 받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타인을 사려 깊게 살피는 태도의 힘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대화할 때 그 힘을 크게 느껴요. 말은 생각을 거치기 마련이잖아요. 이 말을 할지 말지, 어떤 단어를 쓸지도 고를 수 있죠. 그 과정을 거쳐 입 밖으로 나온 언어가 자극적이지 않아도 상대에게 정확하고 힘 있게 도달할 때가 있더라고요. 필요한 말을 상냥하게 전할 줄 아는 사람을 보면 참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현명함을 좇고 싶어지고요.
물리적인 힘 없이도 무언가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이들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요즘 세상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칠 때, 힘으로는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것 같거든요. 결국 중요한 건 소통의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누가 봐도 지혜롭다 여길 만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그게 진짜 강한 사람의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지닌 강인함을 실감한 순간이 있다면요? 지금이요. 데뷔 이후 행보를 돌아보며 인터뷰하는 이 순간의 제가 강인한 것 같아요. 호기심과 흥미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초반엔 여유가 없었고 긴장도 많이 했어요. 여태껏 버티기만 했다면 스스로를 독하다고 여겼을 텐데, 긴장을 이겨내려 애쓰기보다 이 일을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가고 싶거든요. 돌아보면 스스로 즐기면서 성장해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는 꽤 강한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렇게 나아가는 본인의 인생을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이기를 바라요? 코미디였으면 좋겠어요. 코미디에도 나름 시련이 있지만, 그걸 웃음으로 승화하고 기승전결을 거쳐 해피엔드에 이르잖아요. 그 점이 제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닮아 있어요. ‘어떤 힘듦을 맞닥뜨려도 유쾌하게 풀어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고 믿어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머리를 싸매면서 슬퍼하던 순간도 언젠가 우스워지고,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금방 지나갈 일인데 왜 그토록 아파했지?’ 하면서요. 그래서 현재를 충실히 살되 마음만은 미래에 먼저 가 있으려고 해요. 그렇게 시트콤 같은 매일을 살아가고 싶어요.
그런 삶의 태도가 고윤정 배우의 나날을 한층 건강하게 가꿔주고 있겠어요. 그렇죠. 저 뿐 아니라 제 주변, 저를 한 번이라도 만났던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건강하면 좋겠어요. 물론 저마다 삶의 사연들이 있겠지만, 그 안에 깊이 빠지지 않기를 바라요. 그냥 편안하게, 푹 자고 일어나서 개운한 하루를 보냈으면 해요. 기자님도 잘 자고 계시죠? 마그네슘 챙겨 먹으면 좋더라고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