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mcmacumg11_01

처음으로 실사 영화를 만들어도, 그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기립 박수를 받아도 연상호는 의연하다. 다양한 감정이 스치기야 했겠지만 그는 돌아오자마자 칸에 출품하느라 급히 마무리했던 <부산행>의 후반 디테일 작업에 매진했다. 개봉 한 달 후인 8월에는 프리퀄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개봉하고 그동안 감독 연상호는 두 번째 실사 영화에 착수한다. 그가 입 밖에 낸 구상 중인 작품만 세 편, 아무래도 연상호는 도취되기보단 계속 달리는 쪽이다.

<부산행>은 전국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진 가운데 부산행 KTX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액션 스릴러물이다.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를 현미경을 들이댄 듯 확대해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돼지의 왕>, 진실과 믿음에 관해 수백 개의 날카로운 물음표를 던지는 <사이비>까지. 마주하기 싫은 사회의 현실을 불쾌하리만치 파고들던 전작들에 비하면 <부산행>은 잘빠진 상업 영화 같다. 7월 20일 개봉을 앞두고 작품에 관한 구체적인 말은 아꼈지만 들려오는 풍문보다는 직접 영화를 보고 그 안에서 좀비물 이상의 다른 의미를 찾고 싶은 게 사실이다. 왠지 연상호라서.

 

1607mcmacumg11_03

칸에서 워낙 좋은 평가를 받아서 국내 개봉을 앞두고 기대가 더 클 것 같다. 칸에 가기 전까지는 그냥 ‘영화 한 편 끝냈다’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긴장된다. 어제 나홍진 감독한테 전화가 왔다. 페이스북 많이 하지 말라더라.(웃음) 큰 영화이니만큼 리뷰가 많이 나올 테고 하나하나 보기 시작하면 못 견딜 테니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그가 영화를 본 건 아닌데 잘될 테니 걱정 말라더라.

당신은 상업적인 작품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실사 영화도 처음인데 그게 ‘작정한 상업 영화’일 줄이야. 처음부터 상업 영화를 만들겠다고 접근한 건 아니었다. <서울역>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작업하고 있었는데 작품을 실사 영화화 하는 데 대한 얘기가 잠깐 있었다. 그걸 굳이 실사 영화로 만들기보다는 따로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거다. 예산이 커지다 보니 당연히 상업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영 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영화들이 몇 개 있었다.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나 스티븐 킹의 <미스트> 같은 것인데, 이 작품들이 영화화된 것보다 더 상업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재난영화는 기본적으로 휴머니티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주제로 볼 수 있다. 보편적인 주제라는 건 그만큼 상업성, 대중성이 있다는 거니까. 작품을 만들면서 가상의 관객을 설정하곤 하는데 이전에는 그 가상의 관객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면 이번에는 1년에 영화를 한 편 정도 보는 분들,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연출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었나? 상업 영화라고 어떤 감정들을 억지로 받아 들이기 쉽게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워야 관객도 감정 이입 하기 쉽다. 배우가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영화 자체를 자연스럽게 뽑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대사도 배우 본인의 성격이나 원래 가지고 있는 것들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끔 열어뒀다.

대규모 감염자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고민이었을 듯하다. 맞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장르여서 이질감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큰 고민이었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님과 친분이 없는데 연출부 중 봉 감독님과 친한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을 통해서 조언을 좀 받았다. <괴물>도 한국에서 잘 다루지 않던 소재였으니 그런 소재를 한국적인 것과 어떻게 섞어야 하는지에 대한 팁이랄까. ‘감염자들’의 특수분장을 과하게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더라. 해외 영화처럼 심하게 특수분장을 하면 이질감이 더 크기 때문에 그들과 다르게 가야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 얘길 많이 참고했다.

펀드매니저, 야구 선수 같은 직업군 설정이 재밌다. 재난영화에서 꼭 필요한 역할이 그 직업적 특성에서 발현되는 것도 흥미롭고. 시나리오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열차 안 인물 간의 계급 차는 있되 전체적으로 소시민이면 좋겠다는 점이었다. 정부 요원이라던가 고위 관원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 주인공도 펀드매니저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론 회사원이다. 악역도 고속버스 회사 상무인데 아주 고위급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안타고니스트(적)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안에도 있겠지만. 그래서 예전에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에서 보여준 것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소시민들의 싸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극 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건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고.

 

1607mcmacumg11_02

그동안은 자신이 보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왔다고 했다. 나 아닌 대중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쓸 때 확신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랬다. 막상 들어가니 확실한 것들이 보였다. 영화는 현장 편집본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보니 어떤 게 더 필요하고 필요 없는지 명확히 보이더라. 영화는 그런 게 좋은 것 같다. 애니메이션은 쭉 다 만들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직관적으로, 현장 편집본을 보면서 빨리 수정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와 다르게 가야 할 것 같은 부분이 생기면 배우들에게 프레젠테이션 하듯 이야기했다. 다행히 배우들 대부분이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배우들과 ‘케미’가 좋았나보다. 배우들이 내 애니메이션들을 좋아해서 초반부터 많이 믿고 지지해줬다. 총 4개월 정도 촬영했는데 배우들이 자기 촬영 분이 아닐 때도 모니터 앞에 자주 있었다. 현장 편집본을 보면서 얘길 많이 나눴고 특히 마동석 선배는 액션 신에서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부산행>을 만들면서 작품을 만드는 태도나 습관에서 생각까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예산이 큰 영화다 보니 남의 의견을 많이 듣게 되더라. 애니메이션은 더 개인적으로 작업한다. 근데 다음에 애니메이션을 한다면 조금 더 개인적으로 하고 싶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은 실사 영화로 풀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하나를 풀었다면 그 반대되는 방식으로도 하는 게 좋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갈 건가? 놀면 뭐 하나. 실사 영화 두 편을 준비 중이다. 하나는 내가 각본을 썼는데 이제 될 수 있으면 작가랑 같이 쓰려고 한다. 내가 쓰면 하나도 빼기가 싫어서 수정하기 힘들고 고집 부리고 여기저기 관여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아주 잔잔한 작품을 생각 중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밋밋한. 그런 거 좋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다가 들린다>,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 같은 거.

상상이 안 된다. 연상호 그림체로는 더더욱. 내 생각도 그렇다. 뭔가 기괴한 게 들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