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종자들의 연애

공포의 카톡창

오랫동안 연애를 쉬었던 A가 지금의 남자친구를 소개팅도 아닌 우연히 (요즘 같은 시대에!)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진심으로 축하했었다. 그녀의 SNS에서 더 이상 인생은 혼자라는 감상적인 글을 볼 필요도 없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술 마시자는 제안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할 일도 줄었으니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쾌재를 불렀다. 연애를 시작하고 한 달 동안 A는 거의 잠수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A는 시시콜콜한 연애사를 카톡으로 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연애가 얼마나 특별한지 역설하는 내용이었다. 뭐, 들어줄 만했다. 하지만 “걔가 잘 때 코를 진짜 심하게 골거든. 근데 내가 그 소리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했더니 글쎄 며칠 뒤에 호흡법을 바꾼 거야~ 진짜 대박이지?”는 말을 들었을 땐 ‘소오름’이 끼쳤다. 나는 지금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남동에 사는 30대 남자가 태어나 처음으로 턱에 난 여드름 때문에 고민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A는 아직까지 둘의 섹스 라이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아직 섹스를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_E, 치위생사

 

#럽스타그램을 믿지 마세요

E는 길어봐야 8개월 정도 만나는 단기간 연애 전문가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게 연애를 하는데도 기어코 남친이 생길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일일이 남친을 태그하고, ‘오빠가 사다 준 브라우닝!’이라는 멘트며, 남친의 이니셜까지 빼놓지 않고 올리는 #럽스타그램의 달인이라는 거다. 반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데도 E가 아직도 6개월 전 만나던 그 사람과 계속 만나는지 헤어졌는지 인스타그램을 보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신기한 건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땐 깨가 쏟아지던 전 남친과 보낸 흔적을 일일이 지우고 마치 럽스타그램 따위 태어나 처음 하듯 부지런히 멘트를 쓰고 다시 새 남친을 태그한다는 것.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를 몸소 실천하는 E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야, 그냥 계정을 새로 파. _N, 대학원생

 

인생사랑 만나서 좋으시겠네요

일주일에 한 번 마사지를 받는 건 매일 야근에 찌든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 있다. 여러 명의 마사지사가 돌아가면서 부위별로 마사지를 달리 해주는데 등을 담당하는 마사지사는 무슨 말을 하든 늘 남편 자랑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사실 자랑도 아니다. 그냥 남편 얘기를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오늘 너무 덥죠?” 하는 그녀의 물음에 “아, 겨우 걸어왔어요” 하고 대답하면, “저도 어제 남편이랑 에어컨을 틀었는데 어쩌고저쩌고” 한다. 또 “주말에 뭐 하셨어요?” 그녀의 물음에 내가 “술만 마셨죠 뭐” 하고 대답하면 “저도 연애할 때 남편이랑 술을 진짜 많이 마셨거든요~ 한번은….” 한다. 그러니까 ‘기승전남편’인 거다. 내가 조금만 더 용감한 사람이라면 당신이 남편이랑 뭘 했는지 1도 안 궁금하다고 말할 텐데 쏘아붙일 용기도 에너지도 없어서 그냥 듣다 지쳐 잠드는 쪽을 택한다. _A, 디자이너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8개월째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는 모든 게 내 이상형에 가깝다. 딱 하나, 자꾸 내게 자신의 인기를 과시한다는 것만 빼고. 만난 지 3개월쯤 된 어느 날 그녀가 “올여름은 이상하네. 작년 이맘때는 한 달에 네 명 정도한테 ‘저기요’ 당했는데” 하기에, 저기요가 뭐냐고 물었더니 지나가던 남자들이 ‘저기요~’ 하고 다가와 번호를 묻는 거라고 했다. 처음엔 ‘올, 내 여자친구가 예쁘긴 예쁘지!’ 하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친구에게 하듯 “저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자꾸 쳐다봐” 하고 속삭이는 건 부지기수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회사 남자 선배가 둘만 빠져나가서 점심을 먹자더라고” 하는 말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런 얘기 좀 안 하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네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를 만나고 있는지 알아야지” 하는데 솔직히 정이 뚝 떨어졌다. 내 나이 30대 중반, 아직도 이렇게 에너지 소비 심한 연애를 해야 하나 싶다._M, 마케터